제주4.3이 올해로 70주년을 맞는다. 70이란 숫자에는 생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흡사 마지노선의 감정이 스며있다. 사람은 언젠가 모두 떠나가지만 예술은 세대가 이어지는 한 영원하다. 제노사이드의 역사였던 4.3에 대한 진상규명과 기억의 복원에 집중된 ‘기억투쟁’에 있어서 예술이 중요한 이유다. <제주의소리>는 창간 14주년과 4.3 70주년을 맞아 주목할 만 한 4.3 미술행사를 <4.3과 미술>로 엮어 소개한다. [편집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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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인근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경. 오는 3월 30일부터 이곳에서 제주4.3을 알리는 전시가 열린다. 사진=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주의소리

[4.3 70 특집-4.3과 미술] (1)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전

서울 광화문 광장과 인접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개관 준비 단계부터 한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국내 최초 근현대사(1876년~) 전문 박물관으로 이명박 대통령 당시인 2012년 12월 26일 문을 열었지만, 줄곧 뉴라이트·극우 역사관을 대변한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개관 당시 건립추진위원 24명 대다수가 보수 성향 학자 겸 행정 관료로 채워졌고, 개관 당시 전시물 구성이 ▲경제개발 ▲새마을운동 ▲파독 광부·간호사 ▲베트남파병 ▲수출 경제 등에 치중해 있다는 문제가 잇달아 제기됐다. 

뿐만 아니라 식민사관 논란을 일으킨 특별전 <1876년 개항, 대륙에서 해양으로>, 4.3을 ‘무장 반란’으로 그린 청소년용 만화 <6.25 전쟁> 등 전시 운영 과정에서도 문제는 계속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11월 1일 새롭게 취임한 진보적 역사학자 주진오 신임 관장이 취임 인사말에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산업화와 경제개발의 역사뿐만 아니라 힘들었던 민중의 역사, 어둡고 아픈 역사도 함께 조명해 다양한 역사인식이 공존하는 공간이 되겠다”고 밝힌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공간에서 제주4.3을 숨기거나 외면하는 게 아닌 당당히 ‘대한민국 역사’라고 밝히는 전시가 4.3 70주년을 맞아 열린다. 

그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뉴라이트 역사관을 홍보해온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제자리 찾기인 동시에, 제주에서 4.3의 전국화를 위해 발벗고 나선 의미있는 시도라는 점에서 기억할 만하다. 바로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전이다.

▲ 박물관 전시실 내부 모습. 사진=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공동 주최하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가 공동주관하는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전이 3월 30일부터 6월 10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0여점에 달하는 자료를 통해 4.3의 흐름을 한 눈에 보여주는 일종의 아카이브 전시다. 

특히 국가기록원이 보유한 당시 정부 자료 원본도 12점 전시할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국가기록원 자료는 4.3 당시 계엄령 선포 문서, 1948~9년 군법회의에 등장한 수형인 명부, 마산교도소 수형자 신분증, 4.3 진압과 예비검속 관련 국무회의 자료 등을 포함한다. 

여기에 문학, 사진, 영상, 노래, 회화 등 예술 작품도 상당수 전시해 유연함을 더했다. 특히 4.3미술을 대표해온 강요배 화백의 연작, 일명 <동백꽃지다> 원화도 전시를 검토했지만, 대작인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협소한 전시공간 문제로 대형 LED 영상작품으로 대체 전시하는 방안을 유력히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제주출신의 강요배 화백은 국내 대표적인 민중미술작가로서 1989년부터 3년간 4.3 주요 과정을 그린 회화 50편 연작을 발표하며, 4.3 예술과 한국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작품들은 화집 《동백꽃지다 - 제주 민중항쟁사》로도 발표됐다.

▲ 강요배의 작품 <넘치는 유치장>, 60.0×97.7cm,종이·콩테, 1991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강요배의 작품 <피살>, 56.0×76.0cm, 종이·콩테, 1991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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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복의 작품 <침묵>, 192x256cm, 장지에 아크릴, 2014. 사진=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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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균의 작품 <그 총알들 어디로 갔을까>, acylic on canvas, 325×130cm, 2015. 사진=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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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지아의 작품 <스위치>, 315x266cm, 소가죽. 사진=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제주의소리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전시를 맨 처음 기획했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제주를 찾아 관련 기관·단체 협의, 4.3 기행까지 진행하면서 공을 들였다.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 역시 원활한 전시 진행에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4.3전시를 이곳에서 열리기까지 과정은 꽤 흥미롭다. 최초 유력한 전시장 후보는 공간 여건이 더 우수한 서울역사박물관이었다. 그러나 4.3을 국립 박물관이자 ‘대한민국’ 이름을 내건 박물관에서 소개하는 게 더욱 뜻 깊다는 의견이 힘을 얻으면서 계획이 바뀌었다. ‘촛불혁명’을 대표하는 광화문 광장과 가깝다는 점도 더한다. 전시 규모도 야외 마당과 1층 기획전시실, 3층까지 많은 공간을 할애한다. 

무엇보다 전시의 태동이 제주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 무척 고무적이다.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지난해 초부터 서울에서 여는 4.3 전시를 추진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부처와 만나 사업 내용을 가다듬었고, 전시 장소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선택하면서 그해 7월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했다. 당시만 해도 주진오 신임 관장이 취임하기 전이기에 70주년 기념사업회의 도전은 더욱 뜻 깊다.

때문에 이번 <제주4.3, 이젠 우리의 역사> 전은 70주년을 맞아 4.3을 더욱 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제주 안에서의 소망과 역량이 만들어낸 열매로 평가받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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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전시실 내부 모습. 사진=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

전시 구성은 ▲프롤로그 애기동백꽃의 노래 ▲1부 불안한 희망 ▲2부 흔들리는 섬 ▲3부 행여 우리 여기 영영 머물지 몰라 ▲4부 땅에 남은 흔적, 가슴에 남은 상처 ▲에필로그 너도 누군가의 꽃이었을테니로 나눠진다.

행사 공동 주최 기관인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를 대신해 전시 기획을 맡고 있는 이훈희 감독은 “남녀노소 누가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동시에 제주문화예술 운동은 곧 4.3운동과 동일하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4.3을 알리는데 노력한 예술인들을 함께 조명했다”고 설명했다.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도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역사다. 이번 전시는 4.3이 대한민국 전체의 역사인 동시에 평범한 개개인의 이야기라는 점 모두에 주목했다”라며 “4.3을 엄연한 대한민국 역사로 자리매김 시키는데 기획 의도를 맞추면서, 누구나 전시 안에서 ‘나라면 당시에 어떻게 했을까’라는 공감을 통해 4.3의 진실을 이해하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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