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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2018년 04월 23일(월) 09:38
이유선 교수 news@jejusori.net
[BOOK世通, 제주 읽기] (88) 미조구치 유조,  『중국의 공과 사』, 정태섭·김용천 역, 신서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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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조구치 유조, 『중국의 공과 사』, 정태섭·김용천 역, 신서원, 2006. 출처=교보문고.
1. 제어되지 않는 사적인 욕망들

서양인들에게도 근대 이전에는 사적인 개인이란 것이 없었던 것 같다. 개인은 있었으되 오로지 집단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개인이 있었을 뿐 자신만의 생각이나 자신만의 공간을 할당받은 개인은 존재하기 힘들었지 싶다. 제라르 드 빠르디외가 주연한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내탈리 제이먼 데이비스의 책 『마르탱 게르의 귀향』은 전쟁에서 돌아온 남편이 사실은 가짜 남편인데, 그 아내와 친구들이 그를 진짜로 인정하면서 전개되는 스토리를 다룬다. 16세기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진짜 마르탱 게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실하고 친절한 가짜 마르탱 게르의 사기극은 죽은 줄 알았던 진짜가 돌아오면서 막을 내린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모여 살고 있기 때문에 간밤에 누가 부부관계를 했는지조차 상세히 알고 있을 정도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가치가 있는지는 집단의 관점에서 고려된다. 나의 선호와 욕망은 집단의 선호와 욕망에 귀속된다.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연관에서 분리된 개인으로서 진짜 마르탱 게르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지극히 근대적인 물음이 되는 것이다.

서양의 근대는 어떤 의미에서 사적인 개인을 만들어 온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계약론자들은 국가 성립의 단초로서 개인들의 합의를 전제했고, 근대 인식론자들은 인식주체로서 개별적 이성을 상정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산업사회 및 자본주의의 등장은 개인적 욕망을 시장으로 끌어들였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 시스템은 개인들의 통치성을 보장할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개인의 사적인 욕망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타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될 때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시장은 그와 같은 욕망이 직접 부딪치는 장소이다. 시장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적 질서를 제어하기는 할지언정 각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근대 국가의 탄생은 그런 부정의를 시정하는 것을 임무로 부여받는다. 개인들이 사적인 욕망들을 실현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되 그것이 다른 사람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공적인 업무이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각기 제 자리를 찾을 때 근대 부르주아 혁명이 내세웠던 가치들이 실현될 것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몰아낸 시민들의 시위는 공적인 임무를 부여받은 정부가 사적인 이해 관계에 따라서 운영되는 것을 참지 못한 개인들의 시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공사구분의 경계가 무너지는 일은 일상의 영역에서 지속되고 반복된다. 공적인 직위에 있는 사람이 그 직위에 부여된 힘을 가지고 사적인 욕망을 실현하려고 하거나,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는 데 그 힘을 남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근대의 소산이라고 할 자유민주주의는 공공성을 내세워 사적인 욕망을 제어할 장치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우리로 하여금 자유민주주의를 유일하게 올바른 체제라고 믿게 하는 것이다. 

2. 중국의 공과 사

얼마 전에 중국의 국가주석 시진핑은 개헌을 통해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중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사태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쉽지 않다. 시진핑이 장기집권을 한다고 해서 1인 독재 시대를 열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국의 집단지도 체제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국이 자본주의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거대한 시장 속에서 개인들의 사적인 욕망들이 분출될 것이고, 국가는 그것을 제어함으로써 시장의 피해자들을 돌봐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사적인 것이 공적인 영역에 침투하여 희생자들을 만드는 것을 원칙적으로 국민들이 감시하고 제어하게끔 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그와 같은 일을 공산당이 하게 되어 있다. 공공성의 수호자로서 당은 그런 역할을 떠맡기에 충분한 주체가 될 수 있을까?

미조구치 유조의 책 『중국의 공과 사』는 동아시아의 근대를 연구한 저자가 일본이 어떻게 해서 동아시아의 소위 ‘모범적인’ 근대국가로 재탄생하여 중국과 한국을 침탈하는 제국주의적 범죄를 저질렀는지 고찰하는 데서 시작한다. 유조는 문예부흥, 종교개혁, 시민혁명, 산업혁명 등의 요소를 토대로 성립한 자본주의 사회를 서양의 근대가 가진 특징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중국이나 한국과 달리 유럽과 유사한 봉건영주제를 택하고, 세습신분제나 무사계급에 의한 ‘무(武)’의 문화 등을 토대로 자본주의화의 속도가 빨랐던데 반해, 중국과 한국은 상호부조에 의한 ‘문(文)’의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자본주의에 적응하기에 어려웠을 뿐이라고 진단한다. 유조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이 자본주의를 빨리 받아들였기 때문에 근대화가 빨랐다고 하는 우리의 통념이다. 그에 의하면 자본주의화의 속도는 결코 우열의 기준이 될 수도 없고, 근대화의 잣대가 될 수도 없다. 중국은 16~17세기에 독자적인 근대의 과정을 걸었다. 명말, 청초 시대의 지방분권은 황제의 중앙집권제에 대해 지방의 유력 민간층이 정치적인 역량을 키워나가는 토대가 되었고, 그것이 나중에 태평천국의 난이나 신해혁명의 형태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에 대한 개념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미조구치 유조는 중국의 고대부터 명말, 청초 이후의 시기까지 공과 사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를 겪었는지 보여준다. 전국시대와 후한시대에 공은 두 가지 용례를 갖는데, 첫째는 ‘평분’(平分)의 의미이고 둘째는 군주나 관부 등 지배기구에 관련된 의미이다. 그에 의하면 평분으로서의 공의 의미는 한, 당을 거쳐 송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공의 의미를 잘 나타내 주는 구절은 『예기』의 ‘천하위공’(天下爲公)이다. 이 구절을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의지할 곳 없는 노인, 고아, 몹쓸 병에 걸린 자를 서로 도와주며 혹은 남는 재물이나 노동력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요컨대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축재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일하지 않는’ 그러한 공동호혜의 사회를 천하공(天下公)의 대동세계(大同世界)로서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18쪽)고 해설한다. 중국의 역사에서 적어도 명말, 청초 이전 시기까지 공과 사는 선과 악, 정과 부정의 윤리성을 내포하는 개념이었다. 

유조는 명나라 말기의 황종희(1610-1695)가 “광대한 천하는 한 사람이 잘 다스릴 수 있는 바가 아니다”라고 하여 분치(分治)를 요구한 것이 공사 개념의 유의미한 변화라고 평가한다. 그런 요구 속에는 공과 사가 더 이상 이율배반적인 것이 아니라 “사를 내포하고 그 사를 황제 한 사람만이 아니라 ‘민’까지를 포함해서 함께 충족시키는 한 차원 높은 공”(33쪽)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왕선산(1619-1692)의 “리에 다하면 인간의 욕망에 합치된다. ‘욕’에 대해 자기를 미루어 나가면 하늘의 이치에 합치된다”(35쪽)는 주장에서 유조는 명나라 말기에 천리와 인욕으로 나뉘었던 공사 개념의 근본적인 변화를 발견한다. 천리는 사회적 욕망 상호간의 조리로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태평천국의 난을 거치면서 일종의 코먼웰스적인 공의 개념을 낳음으로써 중국은 독자적인 근대를 맞이한다는 것이 유조의 분석이다. 

중국의 근대는 자본주의화의 과정과는 별개로 사적인 개인의 욕망을 공의 개념에 포섭시키는 식으로 전개된 셈이다. 이렇게 해서 서양의 근대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근대 역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의 문제에 직면한다. 공이 민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늘 편사(偏私)가 될 위험이 있고 근대를 파탄으로 내 몰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조정․국가의 공은 권력의 자의를 공이라고 사칭할 위험성을 항시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천하의 공쪽에서 이 자의성을 사라고 규정하여 지탄할 수 있기 때문에 조정 국가의 공은 어떻게 하든 천하의 공 즉 공정(公正) 공도(公道)를 실질 혹은 명목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조정 국가의 공은 항상 천하의 공을 표방하지만 항상 그렇게 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실질과 명목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다.”(62쪽)
과연 시진핑의 중국이 실질과 명목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지 않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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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선 교수

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 철학박사
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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