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69) 소금 먹은 쥐가 물을 찾는다

* 소곰 : 소금(鹽 ; 소금 염)
* 쥥이 : 쥐(鼠 : 쉬 서)

소금은 짜므로 먹을수록 목이 마르다. 물을 찾게 된다. 짠 소금을 먹은 쥐가 물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데 이 말은 쥐의 생태를 가리키면서 사람의 경우를 빗댐이다. 무슨 일을 저지르면,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쥐란 놈이 짠 소금을 먹어 목이 타는데 물을 찾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다. ‘결자해지(結者解之)’란 말을 되새기게 된다.

결자해지란 매듭을 묶은 자가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직접 나서서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누구나 자신이 일을 저질렀으면 책임지고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일을 해 놓고 일이 힘들거나 일을 끝마치더라도 자신에게 불리할 것을 계산해 그만 두거나,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사람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인조 때 학자 홍만종의 〈旬五志〉에 나온다.

“맺는 자가 그것을 풀고, 일을 시작한 자가 마땅히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結者解之 其始者 當任其終)
불교에서는 인과응보라 해서 나쁜 업(業)을 쌓지 말라 이른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자신이 해결하지 않으면, 그 업보가 다음 생으로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결자해지는 이렇게 자기가 꼰 새끼로 자신을 묶어, 결국 자기 꾐에 빠지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신세가 되지 말라고 경계한다. 자기가 한 일은 자신이 풀라 함이다.
  
참 이치 분명한 비유다. 매듭은 묶은 사람이 가장 잘 풀 수 있는 게 아닌가. 어떻게 묶었는지 그 과정을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매듭지은 장본인일 테니까. 그러니 무슨 일이나 문제도 매한가지다. 저지른 사람이 해결해야 가장 손쉬울 것은 더 말할 게 없다.

하지만 묶은 자가 매듭을 풀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세상이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결자해지란 말대로 하려다 낭패 보는 수도 있다.

사례 하나. 결자해지라는 거창한 말을 대입할 것은 아니지만 관공서에 가 보면, 우리 행정이 한심한 경우가 있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가족과 공동명의로 해 놓은 걸 내 명의로 바꾸자고 자동차 등록소를 찾아갔다. 서류를 준비했으니 별일도 아니라 금방 끝나겠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얼마 전 주‧정차 위반한 게 나와 있다 하므로, 일단락됐다 했는데 아니었다. 해당 관공서 전화번호를 적어 주며 확인해 보라고 하질 않는가. 전화 문의 결과, 범칙금은 냈는데 압류를 풀어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정차 위반한 것은 잘못이지만, 법정 금액을 납부하고 상당 시일이 지났는데도 압류된 것이 그대로라 전화로 풀어야 하는 세상, 어이가 없었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4차 산업 혁명으로 가는 시대다. 시민들은 주‧정차 위반 딱지가 붙은 범칙금을 납부하면 당연히 압류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게 돼야 할 것이다. 한데 그렇게 되지 않으니 문제다. 참 어중간한 노릇이다. 시민은 주‧정차 위반에 대한 범칙금을 물었으니 결자해지한 게 아닌가. 제가 저지른 일에 책임을 다했음에도 조그만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으니 이는 행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소소한 일이라고 간과할 것이 아니다. ‘족아도 아지망(작아도 아주머니)’ 아닌가. 작아도 민원(民願)이다.

인간관계의 크고 작은 매듭이 곧 인연이다. 사노라면 좋고 나쁜 인연들과 만난다. 또 그 인연이라는 게 변해 나쁜 인연이 좋은 인연으로, 좋은 인연이 나쁜 인연으로 될 수도 있다. 서로 간에 인연을 끊는 것이 결자해지하지 않은 데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일에 책임을 지려는 자세이고 성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그가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성공한 기업가’ 출신이라 경제를 잘 살릴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것이다. 우리는 성공한 기업가에 대한 환상이 있다. 그러나 풍토성인지,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가들이 범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성공한 기업가란 프레임을 잘못 설정한 국민들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성공한 기업가와 기업가 정신은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프레임을 잘 맞췄어야 했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결자해지는 물 건넌 것인가. 이런 답답한 일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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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한 기업가란 프레임을 잘못 설정한 국민들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출처=노무현 사료관.

유사한 말이 있다.

짐 진 놈이 팡을 촟나(짐을 진 놈이 팡을 찾는다)
‘팡’이란 짐을 올려놓거나 부려놓고 쉬는 곳을 이름이다. 팡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 찾아야 한다.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함이 바람직하므로 간섭하지 않는 게 좋다 함이다.

일을 한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듭을 맺은 자의 몫이다. 이 이치를 ‘소곰 먹은 쥥이가 물 촟나’라 해 실감이 난다. 자신이 풀어야 할 매듭을 남에게 전가시키는 자는 결국 주위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를 누가 믿을까.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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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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