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70) 독장거리는 놈 벗 없다

* 독장거리 : 자기만 제일이라고 촐싹거리는 것
* 엇나 : 없다

자기가 세상 제일이라면서 촐싹거리며 안하무인격으로 좌지우지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도를 넘게 우쭐대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다. 그런 위인을 사람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아무 말 않고 지나치는 것 같아도, 실은 콧방귀 뀌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그 사람 상대 못할 친구라고 해코지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도 달갑잖게 여기므로 그런 사람에겐 가까이 정을 나누는 친구도 없다 함이다.

유아독존으로 사람들 대하는 잘못된 처신을 경계하는 말이다.

‘독장거리는 놈’, 한마디로 독불장군을 의미한다. 본디 혼자서는 장군을 못한다는 뜻으로,

① 남의 의견을 무시하고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
② 혼자서는 다 잘할 수 없으므로 남과 협조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
③ 저 혼자 잘난 체하며 뽐내다가 남에게 핀잔을 받고 고립된 처지에 놓인 사람을 일컫는다.

이른바 자신만 알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면서 막무가내한 자가 독불장군이다. 상대는 제쳐놓고 자기 고집대로 행동하는 사람 말이다.

사회의 규범이나 질서에 어긋나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 젊은 엘리트들은 자기 생각이 완벽한 논리라고 내세우지만, 인간은 관습이라든지 시대적 윤리관에 영향을 받게 돼 있다. 젊은 지식인층이 편향적으로 무슨 일이든 논리적으로만 해결하려 드는 것은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건전한 상식의 바탕 없이 자기 논리에 빠진 나머지 그것만이 옳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인간은 시대의 윤리관에 지배 받는다. 엄연히 사회의 규범이 있는데도 자기의 생각이 타당하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사회적 규범에서 일탈해 역행한다면, 뜻밖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 것이다. 규범에 어긋나는 논리는 사회적 여건에 의해 제약 받을 뿐 아니라 자신의 잠재의식 속의 건전한 양심에도 걸리는 일이다.

흔히 ‘독불장군’이라 불리는 사람들 또는 타고난 천재성을 지닌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 따위를 숫제 무시하려 오만 방자하게 행동하는 것을 본다. 고집스레 자신만의 울타리를 구축하려는 것으로 건전한 생활인의 자세가 못된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동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나만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것저것 분별없이, 그게 목표 달성을 위한 빠른 길이라 생각하다가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위험천만한 처지에 빠지고 말 것이다.

모름지기 사회적 규범을 따라야 한다. 또한 인정이나 관습 등도 고려해야 함은 말할 것이 없다. 학창시절에 배운 고전적‧철학적인 논리만 고집한다면 사회에서 성공적인 삶을 이뤄 낼 수가 없다. 학력이 덕망의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학력이 높다고 반드시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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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망이 있는 사람은 내 입장 이전에 상대를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려 한다. 사회생활에서 소중한 것은 서로 간에 신뢰를 쌓는 일이다. 사진은 6월 12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오마이뉴스.

‘독장거리’는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잘났다고 믿는 독선적인 태도다. 자칫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한 말로 착각할 수 있으나, 이와는 엄격히 구별돼야 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강림했을 때 처음으로 한 말로, 이 우주 안에서 내가 가장 높고 존귀하다 한 것이다. 여기서 ‘나’라는 것은 유심(唯心), 곧 깨친 마음과 우주의 근본을 의미한다. 자기의 육체가 가장 높고 존귀한 것이 아니다. 진리를 깨친 본성(本性)의 자리에서 보면, 성현이나 지금 태어난 자기나 다 같은 것이 되므로 그 ‘마음이 가장 높고 존귀하다’는 뜻이다.

교만해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을 일러 ‘안하무인(眼下無人)’이라 한다. 속담에 ‘고삐 풀린 망아지’라 함과 맥을 같이하는 말이다. 그만큼 무례하고 버릇이 없음을 비유함이다.

‘독장거리는 놈 벗 엇나.’
이 세상 어디에도 독불장군이 설 자리는 없다.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는 유아독존도 통하지 않으며, 교만 방자한 안하무인격의 사람도 상식적인 사람으로서 온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독불장군=유아독존=안하무인'으로 거기서 거기, 오십 보 백 보다. 사촌지간쯤은 되는 말들이다. 자기 생각만 제일이라고 고집스레 우기는 사람을 주위에서 인정해 줄 리가 있겠는가. 덕망이 있는 사람은 내 입장 이전에 상대를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려 한다. 사회생활에서 소중한 것은 서로 간에 신뢰를 쌓는 일이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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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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