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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우회하기

2018년 05월 21일(월) 09:53
이유선 교수 news@jejusori.net
[BOOK世通, 제주 읽기] (92)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용경식 역, 까치,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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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용경식 역, 까치, 2017. 출처=알라딘.

1. 만들어지는 기억들

또 다시 5.18이다. 폭력의 당사자가 속죄는커녕 거짓된 내용의 회고록을 출판함으로써 상처 받은 사람들의 가슴에 또 다시 불을 지르는 2018년의 5.18이다. 제주의 4.3 및 6.25전쟁의 희생자들, 유신정권과 그 뒤를 이은 군사독재 정권의 희생자들, 그리고 가깝게는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근현대사는 제정신으로 견뎌낼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다양한 신들의 세계를 창안해 냄으로써 그 환상을 통해서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어 냈다는 점에서 칭송할 만하다고 말한다. 죽음과 고통, 파멸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는 디오니소스적인 종교적 제의가 환상 속에 사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쉽게 전파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탁월함은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던 디오니소스적인 욕망을 자신들의 아폴론적인 환상과 결합시킴으로써 ‘비극’이라는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이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직면한 나약하고 유한한 인간은 그러한 고통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며칠 전에 TV의 한 시사프로그램은 5.18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여중생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몇몇 여중생은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고, 지금까지 생존한 희생자는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아마도 그 희생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상처받은 인간은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환상을 만들어내고 기억을 조작해야 한다. 근현대사의 폭력적인 전개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인들은 불가피하게 많은 기억들을 만들어내야 했을 것이다.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은 폭력적인 시간에 얽혀든 가해자들과 피해자들 모두의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사건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전두환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자신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회고록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서북청년단의 폭력의 역사와 연관되어 있는 한국의 몇몇 개신교회는 반공을 통해 이룩한 자유대한민국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냈다. 고독한 삶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 태극기를 들고 나온 노인들은 행복했던 독재국가라는 공통의 기억을 만들었다. 

만들어진 기억들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이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충격으로 다가온 이유는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조작된 기억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핵 단추를 가지고 장난질을 하고 있는 전체주의 국가의 미치광이 국가 지도자가 “평양 냉면을 가져왔는데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수줍게 웃는 모습을 보였을 때, 나의 기억들은 마치 서로 맞지 않는 퍼즐 조각들처럼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 주지 못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기억을 붙들어야 하는 것일까?

2. 고통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거짓말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혹독한 전쟁을 겪는 어린 주인공들의 일생을 서술한 책이다. 헝가리 태생의 여성 작가는 루카스와 클라우스(Lucas와 Claus는 이름의 철자 순서만 다른 쌍둥이 형제이다)가 전쟁을 겪으며 성장하고 죽어가는 과정을 우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에서 루카스는 클라우스이기도 하고 클라우스는 루카스이기도 하다. 이들은 진정으로 두 명의 쌍둥이인지 아니면 정신분열을 일으킨 한 사람의 혼란된 기억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인지 명확하지 않다. 독자는 단지 주인공의 기억에 의해 서술되는 사건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기억은 일관되지 않으며 서로 모순되기도 한다. 작가는 독자에게 끝까지 어떤 기억이 진짜 기억인지 말해 주지 않는다. 그 혼란스러운 기억들은 모두가 거짓일 수도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가 사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제1부 ‘비밀노트’, 제2부 ‘타인의 증거’, 제3부 ‘50년간의 고독’ 등으로 이루어진 연작이다. 한국어판의 역자는 이것이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세 소설을 한꺼번에 번역하여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면서 벌어진 의도적인 기획임을 밝히고 있다. 작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이 어려서 겪은 전쟁의 체험을 기록하기 위해 세 편의 소설을 썼다. 1986년에 쓴 『커다란 노트』, 1988년의 『증거』, 1991년의 『세 번째 거짓말』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약간의 무리를 감수’하면서 이러한 기획을 시도했다고 고백하는 역자의 말씀은 이 소설들을 한꺼번에 읽었을 때 그런 무리를 감수할 만 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가장 우화적인 서술이 이루어지는 제1부 ‘비밀노트’ 혹은 ‘커다란 노트’는 클라우스와 루카스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은 전쟁 중에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동네에서 마녀 소리를 듣는 고약한 외할머니의 집에 맡겨진다. 아이들을 돌보기는커녕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할머니 밑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생존법을 터득해 나간다. 그들은 고통을 견디는 법을 익히기 위해 서로를 때리기도 하고, 배고픔을 이기는 법을 익히기 위해 일부러 단식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서는 스스로 현명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작문을 하고 셈법을 공부하고, 성경을 통째로 외우기도 한다. 숲 속에서 먹을 만한 것을 구하는 법, 텃밭을 가꾸고 가축을 키우는 법을 스스로 익힌 이들은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자립적인 인간이 된다. 이들이 그와 같은 초인적인 능력을 획득하는 과정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르침과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부에서 주인공은 ‘우리’이며 클라우스와 루카스는 분리되어 서술되는 법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과정을 노트에 기록해서 보관한다. 1부는 클라우스가 국경을 넘어가고 루카스가 홀로 남음으로써 막을 내린다.

제2부 ‘타인의 증거’ 혹은 ‘증거’는 홀로 남은 루카스에 관한 기록이다. 클라우스가 없는 루카스는 그에게 호감을 갖고 도움을 주는 신부, 서점 주인, 당 서기 등과 교류하며 성장한다. 루카스는 자기 아버지의 아이를 낳고 오갈 데가 없어진 야스민을 집에 들이고 돌본다. 야스민의 아이인 마티아스는 꼽추인데다가 다리가 기형적으로 가늘다. 특이한 종류의 가정을 이루었지만 루카스는 야스민에게 마음을 주기보다는 자신의 어머니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나이 많은 클라라를 쫓아다닌다. 루카스의 환경은 1부의 열악한 환경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루카스는 다락방에 자신의 눈앞에서 폭사한 어머니와 여동생의 해골을 메달아 놓고 살고 있으며, 클라라는 우울증 환자이고 야스민은 마티아스를 남겨 둔 채 집을 나간다. 루카스는 클라우스와 함께 기록한 노트를 자신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는 페테르에게 보여주며 클라우스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나 페테르는 루카스에게 형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독자로서는 클라우스라는 인물의 실존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2부는 루카스가 실종된 상태에서 쌍둥이인 클라우스가 루카스를 찾아서 마을로 돌아오면서 끝난다. 루카스가 페테르에게 맡긴 커다란 노트의 필체는 한 사람의 것이었다. 클라우스는 루카스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다.

제3부 ‘50년간의 고독’ 혹은 ‘세 번째 거짓말’은 루카스를 찾아 소도시로 돌아온 클라우스 혹은 루카스의 이야기이다. 이 세 번째 소설에서 앞의 두 소설이 보여주었던 설정은 모두 다르게 서술되고 있다. 클라우스의 어머니는 바람난 아버지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실성하여 정신병원에 감금당하고, 한 아이는 재활원으로 한 아이는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1부에서 국경을 넘다 지뢰를 밟은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모르는 남자로 묘사된다. 국경을 넘어간 루카스는 페테르의 후원으로 글을 쓰게 된다. 2부에서 등장한 클라라는 페테르의 아내로 등장한다. 독자의 혼란은 클라우스와 루카스가 재회하는 장면에서 극에 달한다. 루카스는 국경경비대 사무실에서 조서를 작성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클라우스(Claus)라고 말한다. 한편 클라우스는 클라우스 루카스(Klaus Lucas)라는 필명으로 시를 발표해 왔다. 국경을 넘은 루카스는 세 가지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국경을 같이 넘은 남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 그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 아니고, 열다섯이라는 것, 그리고 그의 이름은 클라우스(Claus)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루카스가 찾아오자 클라우스는 그의 서류상 나이가 세 살 차이 난다는 점을 들어 그가 자신의 형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클라우스와 루카스가 한 사람인지 두 사람인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작가는 아마도 그의 삶 속에서 한 사람이기도 하고 두 사람이기도 한 어떤 인물에 대해 있는 그대로 서술했을 것이다. 그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삶의 방식을 스스로 터득해 나간 초인이기도 하고, 자신이 평생 기록해 온 노트를 소중히 간직하고 형제를 찾아 헤매는 초라한 이방인이기도 하다. 그의 주변을 배회하는 불행한 유령들은 그가 감당할 수 없었던 상처들이 만들어낸 환상들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근현대사가 만들어낸 고통들을 견디기 위해서 만들어진 다양한 환상들이 주변에 맴돌고 있다. 모든 환상들이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환상들은 깨뜨려져야 하고, 어떤 환상들은 더 큰 희망적인 상상을 통해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 그러한 환상인지 가리는 일은 각자의 환상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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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선 교수

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 철학박사
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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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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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2018-05-22 12:48:58    
언론이라는 권력을 갖고
세상을 숨기려들다
너희들이 숨질지어니
초심으로 돌아가
진정한 언론인이 되거라
제주의 개소리들아
211.***.***.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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