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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지혜가 깃든 전설 속 산물

2018년 05월 23일(수) 15:51
고병련 webmaster@ohmynews.com
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33) 서귀포시 호근머들 용출수

돌무더기를 의미하는 ‘호근뢰리, 호근머들’이라 했던 호근동은 일설에 의하면 범섬에 가까운 마을이라서 ‘범 호(虎)’자를 쓰다가 후에 ‘좋을 호(好)’자로 쓰게 됐다고 한다. 호근동 마을의 서남쪽 ‘큰가름터’가 선인들의 거주지라고 알려져 있으며, 여우와 관련된 전설이 깃든 물도 솟는다. 우리나라에서 여우와 관련하여 물에 대한 의미는 대부분 여우가 마시던 물, 수량이 적어 찔끔찔끔 나온다는 뜻에서 잔꾀를 부리는 물로 알려져 있다. 제주섬에도 여우와 관련된 산물이 있는데, 호근동 태평로 해안 측에 있는 여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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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못 형태의 여의물(개발 전).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여이(여우의 제주어)물 또는 여의물, 여우물이라고 하는 이 산물은 서귀포여고와 삼매봉 중간 태평로변 ‘여의물’이라고 쓰여 있는 버스정류소에서 바닷가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 언덕 밑에 있다. 미나리밭 북쪽 구릉에서 용출된다. 예전에는 법환동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길손들이 갈증을 푸는 물로 이 지역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다. 한때 이 물을 이용하여 미나리 농사도 하였지만, 지금은 이 일대에 리조트와 온천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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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조트와 온천 개발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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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 후 사라질 위기의 여이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여이물은 산물 주변에 늘 여우가 나타나 지나는 사람을 괴롭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한 선비의 지혜로 여우를 잡아 죽인 후부터 여우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다. ‘여이물’ 전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위기, 지혜, 극복’이라는 의미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어떤 일이든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이물과 관련되어 법환 향토지를 보면 ‘아야기(귀)여…’, ‘무슨 기(귀)니…’, ‘강소장 벤 귀여’라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여이물에 나타나 사람을 괴롭히는 여우의 귀를 강소장이란 마을 어른이 베어 버렸고, 밤에 여우물 앞을 지나갈 때 마다 숲 속에서 흐느끼듯 가냘픈 울음 섞인 탄식 소리인 ‘아야기(귀)여…’가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것과 연결해 법환동에서는 재미있는 사연이 전해진다. 몸이 좀 아프거나 마음이 답답하거나 또는 일을 많이 하여 고달플 때 ‘아야기(귀)여…’하는 탄식 소리를 내면 옆에 있던 사람이 ‘무슨기(귀)여?’하고 묻고, 그러면 웃음 섞인 소리로 ‘강소장 벤 귀여’하고 대답해 근심을 풀고 고달픈 마음을 달랬다는 것이다.

‘아야기(귀)여…’가 들려오고 미나리농사를 했던 계단식 다랭이 밭은 휴양시설인 리조트와 온천공사로 없어져 버렸다. 일주도로변 언덕 아래 고여 있는 못에서 솟아났던 여이물은 이 일대가 관광지화 되면서 원 지형이 사라져 산물의 실체를 찾을 수 없게 됐다. 미나리밭과 여의물 생활용수(농작물 씻기)터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이처럼 개발의 영향으로 귀중한 섬의 생명수가 우리 곁을 떠날 위기라는 사실이 몹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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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져 버린 다랭이 밭(미나리밭).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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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이물이 만든 작은 폭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제주올레 7코스인 호근동 해안에도 벼랑 앞 바위틈 여러 갈래에서 돔베낭골물이라는 특이한 산물이 샘솟아 작은 폭포를 만든다. 이곳은 기나긴 세월 동안 바람과 파도가 빚어낸 해안절경 지대이다. 예전에 이곳에 돔베낭(동백나무의 제주어)이 많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도마(돔베)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큰 나무(낭)가 많은 골짜기(골)’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물골(수로의 제주어)을 만들어 이 물로 논농사를 하기도 했는데, 깎아 내린 주상절리 돌기둥과 그 틈새로 솟는 산물이 이색적이며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신성함까지 준다. 이 산물은 신경통 치료를 위해 여름철 백중날 물 맞는 곳이기도 하다. 이 산물이 내리는 해안가에서 동측 삼매봉 방향 리조트가 보이는 벼랑으로, 여이물이 만든 작은 폭포가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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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돔베낭골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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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돔베낭골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속골행기소물은 호종단 단혈전설과 관련 있는 거슨물이다. 돔배낭골에서 서쪽 600미터 떨어진 지점에 여기저기서 용출된다. 호근과 서호마을의 경계로 서귀포시 위생처리장 위 속골천에서 솟는 산물로 물이 좋아, 기우제 등 하늘에 제사를 드릴 때 제관들이 목욕을 하는 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해안가에 쉼터가 만들어져 있지만 속골 원류가 용출되는 지점은, 입구에 주차시설을 만들면서 동선이 차단되어버려 찾는 사람은 별로 없다.

소득창출을 위한 리조트 등 관광개발도 온천도 좋지만 온천이 원천이 되는 지하수가 보전되어야 만 온천도 살아남을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 개발해서 물만 쓰겠다는 이기적인 욕심보다는 우선적으로 전설이 깃든 여이물도 보전해서 공존할 때 제주 섬의 지하수는 지속가능한 물이 된다.

예전 TV프로그램 <전설의 고향>에서도 소개된 이 물은 산물이기 전에 전설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을 담은 역사이며 문화이고 유물이다. 지금이라도 그 원형을 찾아 반드시 보전시켜야 한다. 여이물이 사라지면 지명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역사, 삶의 전설과 함께 물이 준 생명마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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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골행기소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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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골행기소물 용출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바다로 가는 속골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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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병련 교수. ⓒ제주의소리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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