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34) 서귀포시 서호동 통물과 주거물

서호동은 ‘호근머들(호근머흘, 호근뇌)’에서 분리되면서 호근리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호리라 했던 마을이다. 서호동은 통물에서 물허벅으로 식수를 길러다 먹었는데 마을에서 동산을 지나는 원거리라 너무 힘이 들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1927년) 시기에 각시바위 동쪽에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이 사용했다는 절곡지(절꼭지)물을 끌어 들여 마을 자체에서 간이상수도를 설치했다.

절곡지물은 영실에서 내려 온 산물로, 전에는 이 물로 벼를 재배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과수원이 되어 버렸다. 이 물을 이용하여 호근리와 공동으로 수도를 만들기로 했으나 물이 적어 수도가설 경비만 손해 볼 수 있는 이유로 호근동에서 포기하자 서호동 단독으로 시설했다고 전해진다. 그때 시설한 수원지 등 상수도 시설이 남아 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일부가 망가져 방치되어 있다. 이 상수도는 2000년 이전까지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상수도 보호구역이란 표석과 안내판만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고 있다. 절 한 구석에 있어 절곡지라 부르는 이 산물은 지금도 용천사란 절에서 생활용수로 사용한다. 불교에서는 바다를 대해수(大海水), 백성들이 마시는 물을 만인수(萬人水), 사찰의 물을 천인수(天人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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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곡지물 약수(절에서 사용).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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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곡지물 상수도 시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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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곡지물 상수도 시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호근리의 본향당 ‘돌혹 여드렛당’ 신은 고근산에서 바둑과 장기를 두고 있는 세 신선이 좌정할 것을 허가하여 호근리 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 당에서 사용했던 산물은 삼싱물(삼신물)로 서호초등학교 남쪽 500m지점인 길가에 있었다. 삼싱물은 삼신이 정해준 터에 좌정한 여드렛당의 물로, 당을 찾을 때는 삼싱물을 떠다가 삼신할망에게 임신할 수 있도록 빌었다고 한다. 삼신할망은 명진국 따님아기로 제주에서는 자식을 점지해 주고 출산을 도와주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보살펴 준다고 알려진 출산의 신(産神)이다. 잉태하고 출산하여 15세까지 크는 것은 이 할망의 소관이라 하는데, 삼승할망, 불도할망, 또는 인간할망이라고도 부른다. 

이 당 뒤쪽에는 일렛당이 있는데, 이 당의 신 하로산또는 삼싱물이 벼룻물로 쓸 만하고, 통물은 목욕물과 우마를 먹일 물로 충분할 만큼 물이 좋아서 좌정했다고 한다. 삼싱물은 주변에 과수원을 들어서면서 사라져 버렸다.

당 신을 좌정하게 만든 산물인 통물은 통물머리 동측 서호호근로 46번길 가에 있다. 통물 일대는 돌과 돌 사이 여기저기에 땅을 파면 물이 솟아날 정도로 지하수 노두(지하수면이 지표면으로 노출된 지역)가 발달된 지역이다. 이곳에 나무로 사각식수통을 만들어 사용했기 때문에 통물이라고 부른다. 예전에 물 오염을 막기 위해 물에 강한 단단한 나무로 통을 제작해 사용했는데, 지금은 계단식으로 만들어 다섯 개의 시멘트통에서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수되어 있다. 이 산물은 속골천으로 상류에 해당되며 서호주민의 주 식수원이다. 하류는 논농사를 했던 물로 지금도 농업용수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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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통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통물은 웃(위)당의 물이라 하고 주거물은 알(아래)당의 물이라 하여 마을에서는 서호리 삼본향이라고 부른다. 주거물은 수모르에서 법환동으로 가는 이어도로 10-66번길 용문사 경내에 있다. 주거물이 용출되는 곳은 망을 보는 연대가 있는 오름이라서 망밧(밭)이라 부르는 두 개의 오름 사이의 계곡이다. 옛날 제주목사가 섬을 순시하면서 이 물을 떠다 먹었다하여 주거물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 물은 일대 주민들의 식수 겸 빨래터였으며 절에서도 사용하였다. 이 산물은 두 군데서 솟아나는데, 사찰 안에 있는 산물은 사찰에서 생활용수로 쓰고, 사찰 위 과수원에서 용출되는 다른 하나는 사찰의 조경용수로 연못 등에서 사용하면서 동시에 인근 미나리 밭이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도랑을 만들고 시멘트로 단장했지만 형태는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 주거물(사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주거물(과수원).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주거물 미나리 재배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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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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