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38) 도순·월평동 도순통물, 이첨장물 

도순동의 옛 이름은 ‘돌송이’다. 여기서 ‘송이’는 화산분출물(경석, 스코리아)로 화산재가 굳어서 돌멩이같이 잘게 부서진 돌덩이를 뜻하는 제주어다. 이 지역에 돌로 된 송이가 많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순(道順)은 부드러운 마을의 한자 표기다.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역행하지 않는 순리란 좋은 뜻으로 길(吉)과 복(福)을 의미한다.

도순동에서 마을 설촌 후 주민들의 생명을 지킨 식수로 사용했던 산물은 도순통물로 ‘물통’이라고도 한다. 이 산물은 도순초등학교에서 동쪽으로 160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며 말질로에서 도순천(강정천)으로 가는 소롯질(우마가 지나갈 수 있는 오솔길 같은 작은 길의 제주어)에 있다. 이 산물은 땅 바닥에서 물이 솟아나오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물을 쓸 수 있도록 통을 파서 만든 산물이라고 해서 통물이라고 한다. 물통은 울타리 안에 고랑형태로 되어 있었으며, 수도가 가설 된 후에는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다가 근래에 와서 제주식 물통 3칸으로 개수하였다. 초등학교에서 학습용으로 이용하고 있어서 관리는 잘되고 있으며 물통 안에는 금붕어를 풀어놓아 기르고 있다. 

가물어도 마르는 법이 없어 지금도 이 일대 농업용수로 사용된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입구에서부터 산물이 있는 곳까지 안내판이나 산물에 대한 설명 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소낭당에서 정화수로 사용했던 새통물도 있었는데 과수원이 되면서 매립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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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순통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마을 지형이 달 아래 별들이 따라간다며, 달처럼 넓은 벌판에 형성된 마을이라 ‘큰벵듸(돌(月)벵디)’라 했던 월평동에도 마을을 지킨 산물이 있다. 제주어로 벵듸(벵디)는 ‘넓은 벌판’을 뜻한다. 이 마을에도 당의 정화수로 사용한 통물, 바닥까지 작박(쪽박의 제주어)으로 박박 긁어다 먹었다는 헹기소 물, 이첨장이 농사에 이용했다는 이첨장물 등이 마을의 식수로 사용됐다.

이천장물이라 적힌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선반로로 들어서면 냇가에 있는 이첨장물(이천장물, 유첨장물, 동해물)을 만날 수 있다. 이 산물은 큰본향당이나 하늘에 제를 올릴 때 사용했다고 할 정도로 물이 좋고 강우의 영향을 다소 받지만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솟아나는 물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 의하면 제주로 귀향을 왔던 이첨장이라는 사람이 이 물을 이용하여 논농사를 하였다고 알려진 물로 전분공장에서도 사용했다. 

마을에서는 산물 주위의 모습이 바다 게와 같고 산물 형상은 게의 입에 물을 품는 형태라고 알려졌다. 이첨장물에서 북측 350m 윗부분 과수원 구석 모퉁이 할망당에 갈 때 정화수로 사용하기 위해 떠갔다는 게자리물은 게의 몸통이라고 부른다. 한편으로는 여기에 조선시대(세종21년) 동해 방호소가 있어서 동해물이라 부르기도 하며 동물내의 발원지이다. 이원진의 탐라지에서 동해성안에 샘이 있다 하였는데, 이 샘이 이첨장물일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 이 산물은 인근 밭이나 과수원의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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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첨장물(이천장물, 동해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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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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