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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만든 물(水)이 문(文)이 된 산물

2018년 06월 23일(토) 08:28
고병련 news@jejusori.net
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42) 서귀포시 중문동 천제연 산물

중문은 예부터 교통의 요지로 중문원이 있었던 마을이다. 중문동의 ‘물’이 ‘문’이 되어 중문(中文)이라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중문동에는 물이 나오는 바위가 그릇의 덮개처럼 생겼고 두껑(두께) 혹은 물고기가 입을 크게 벌린 모습이라 해서 연유한 두어(두께)물, 중문마을의 배형국이고 이곳은 배꼽에 해당되므로 배꼽에서 나오는 물로 백여 마리의 소나 말이 한꺼번에 물을 먹을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백구물(다리확장 공사로 매립됨) 등이 있었다. 지금은 중문동을 대표하고 애용되었던 생명수는 군물(중물)로 보존되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칠선녀 전설이 전해오는 천제연 물줄기를 따라 물을 중심으로 살았던 중문동은 물이 풍부한 마을로 가뭄에도 마르는 일이 없었다. 더구나 산에서 내가 터져 흐르면 깨끗한 물을 받을 수 있었기에 생활용수로 이용하기에 편리한 동네였다.

군물은 현재 중문노인회관 바로 뒤편에 연꽃이 피어있는 원형 연못으로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주민들의 귀중한 식수였다. 이 물은 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사용되었는데, 일설에는 식수를 얻기 위해 처음 팠던 곳의 물에 철분이 많아서 먹을 수가 없어 다시 군물을 팠다고도 한다. 당시 이곳을 지나던 스님이 샘물이 솟을 자리를 가리켜주어 샘을 얻었기 때문에 ‘중물리, 승수동(僧水洞)’라 하다가 나중에 중문리로 바꾸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이 군물 인근에 당동물이 있었다. 이 물은 스님이 여기에 땅을 파면 물이 나올 것이라 하여 샘을 팠다가 큰물이 솟아나자 중문마을이 홍수로 물에 잠길 것이라 하며 놋대야로 덮어 버렸다는 전설의 샘이다. 1947년경 몇 사람이 이 샘을 찾으려고 군물 일대에 땅을 팠으니 약간의 물만 솟아나 찾지는 못하였다고 한다.

중문노인회관 뒤편에 있는 군물은 못 형태로 땅을 파서 얻은 물이나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는 일이 없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군물은 안통이라 하여 두 개의 통으로 나누어서 먹는 물통으로 사용했고, 노인회관 자리는 바깥통이라 해서 우마와 사람들이 손발을 씻거나 목욕을 하고 빨래하는 통으로 사용되었다. 지금 이 물은 관리가 허술하여 절반은 잡풀로 뒤덮여 있으며, 바람에 날아드는 쓰레기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점점 늪으로 변하고 메워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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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천제연 3단 폭포의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면 불교와 관련된 물이 있다. 속칭 '고래소' 동편 높은 언덕 중간쯤인 윗 논골에 천제사란 절이 있고, 그 곁에 사시사철 쉬지 않고 솟아나는 만지샘(마지새미)이 있었다. 예전에는 물이 컸다고 하는 것으로 볼 때 ‘만지’라 뜻은 “못과 같이 물이 차서 가득하다”란 뜻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만지샘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는 일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이 산물은 집안에 제사나 토신제, 조왕제를 지낼 때 떡을 빚고 뫼(밥)를 하고 신성한 물이며, 부처님에게 만 가지의 소원을 비는 불심이 가득한 정화수였다. 또한 이 산물을 이용하여 웃골, 알골, 섯골 등 3개의 논골에서 벼를 재배하기도 했다. 한때 사찰이 문을 닫으면서 물도 사라져 버렸다. 지금 산물을 에워싼 큰 바위에 불(佛)이라는 글자를 써서 산물이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물이 솟았던 바위 밑 토굴은 옛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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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지샘 입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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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실 전 만지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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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실 후 만지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천제연 주변에도 마을에서 이용했던 산물들이 있다. 천제연은 상·중·하의 3단 폭포가 있으며, 옥황상제의 연못으로 옥황상제를 모시는 칠선녀가 목욕을 하고 놀다 간다는 전설이 있다.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했다는 뜻으로 씻을 ‘전(湔)’을 써서 천전내폭포(天湔-瀑布)라고도 한다. 천제연 폭포를 만든 천제연 산물인 궷물(동굴속 물)은 웃소(1단폭포)의 주상절리 궤(동굴) 안에서 여러 갈래로 솟아나며, 일부는 중문수원지 상수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산물은 단애와 그 밑의 점토층 사이에서 용천수가 솟아나와 사시사철 물이 맑으며 제1폭포 웃소(웃은 위의 제주어) 동쪽에 있는 동굴천정에서 떨어지는 여러 갈래의 차가운 물줄기는 석간수여서 예전부터 마을에서는 식수로 사용했다. 소(沼)의 물색깔이 푸른 비취빛을 띠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신비감을 주는 청아하고 신성한 물이다. 지금은 목욕을 금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백중과 처서에 이 물을 맞으면 만병통치가 된다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던 담수욕장이었다. 이 궤물 입구 바위에 영영(永英)이란 글자가 암각화 되어 있다. 무슨 뜻인지 알 수는 없지만 “물이 꽃처럼 가득하다”란 의미로 본다면 웃소의 비취색 물빛을 두고 마애명으로 새겨 놓은 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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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제연 웃소.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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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제연 궷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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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제연 마애명.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제주는 화산섬으로 비는 많이 오지만 쉽게 땅속 지하로 스며들거나 지표에 물을 가둘 수 없는 지형과 지리적 독특한 특성으로 대부분의 하천은 물이 흐르지 않은 건천이다. 그래서 천제연 폭포의 낙수를 이용하여 천제연 일대에 논농사를 하려고 천제연 관개수로(西歸浦 天帝淵 灌漑水路)를 만들었다. 대한제국 시대의 수리시설로 2005년에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156호로 지정되었다. 논농사에 부적합한 제주의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천제연 폭포의 버려지는 낙수를 이용하기 위하여 인공적으로 개설한 총 연장 2㎞의 대규모 토목공사로 만든 수공구조물로 천연암반 관개수로이다. 지금은 정비복원 과정에서 일부분을 콘크리트로 개조하여 변형되기는 하였으나, 23만1000㎡의 불모지를 옥답으로 만든 당시 제주도민의 생활상과 농업환경을 전해주는 귀중한 자원이다. 

천제연 관개수로는 1905년에서 1908년까지 1차 공사, 1917년에서 1923년까지 2차 공사로 나누어 이루어졌다. 1차 공사는 중문천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수로를 통해 제1단 폭포인 웃소에서 만지샘을 거쳐 성천봉 앞의 답작지구에 물을 대어 논 5만평을 만들었다. 2차 공사는 천제연 제2폭포(알소, 알은 아래라는 제주어)에서 ‘너배기’라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까지의 구간으로 2만여평의 논을 만들었다. 이 공사로 강정마을에 버금가는 제주 섬에서 최대의 쌀 생산지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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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제연 관개수로.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관개수로 위 폭포 진입로에 있는 웃소먹는물은 물이 맑고 깨끗하여 청수물이라 하는데, 약수터로 만들어 탐방객들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이 물은 기우제나 할망당, 마을제 등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물을 차릴 때 사용했다. 특히 가뭄 시 이 물을 떠서 산물 위에 있는 기우제 터로 가 기우제를 드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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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소 먹는물(청수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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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소 먹는물(청수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두어물(두꺼물)은 색달천에 있는 물로 천제연의 줄기인 거른내(거른은 갈자지다의 제주어) 남쪽에 위치해 있다. 산물이 나는 바위궤(동굴)가 그릇의 덮개처럼 생겼거나 물고기가 입을 벌린 머리모습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먼내마을과 앞거리 부근 사람들이 식수였다. 이 산물은 하천바닥에서 솟아나고 있으며, 바위 위에 덮어 있는 수림은 함부로 접근하지 꺼리는지 물을 보호하는 지킴목이 되고 있다. 산물을 감싸는 그 자체만으로도 자연의 신비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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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어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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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병련 교수. ⓒ제주의소리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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