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98) 요나하라 케이(원서:2016년)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 : 가마쿠라 요시타로와 근대 오키나와의 사람들》, 임경택 옮김(2018년),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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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나하라 케이(원서:2016년)《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 : 가마쿠라 요시타로와 근대 오키나와의 사람들》임경택 옮김(2018년), 사계절. 출처=알라딘.

올해는 제주 4.3 제70주년을 기리며 도내외적으로 굵직굵직한 추모행사들이 열렸다. 그럼에도 제주 4.3이 제주만의 아픈 섬의 역사가 아닌 대한민국의 역사로 자리매김하게 되기까지 왜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을까를 생각하면, 여전히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제주에 ‘4.3’이 있다면, 이웃 나라 섬 오키나와에는 ‘6.23’이 있다. 1945년 6월 23일은 오키나와전투 종전을 기념하여, 오키나와현이 제정한 ‘위령의 날(慰霊の日, Okinawa Memorial Day)’이다. 이 날은 오키나와현이 지정한 공휴일로 올해로 73주년을 맞이한다. 1945년 6월 23일은 다름 아닌 제32군 사령관 우시지마 미치루 등 사령부가 마부니(摩文仁, 오키나와 본도 남부 이토만시 소재)의 군사령부에서 자결한 날이다. 오키나와 전투의 종지부를 찍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 전투로 약 21만 명(오키나와 주민 약 10만 명, 일본군 전사자 약 9만 명, 미군 전사자 약 1만2500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매년 6월 23일,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마부니, 摩文仁)에서 대대적으로 거행되는 행사는 바로 이들 ‘1945년 오키나와 전몰자’를 기리는 추도식을 말한다. 약 보름 전에도 거행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평화와 진혼’을 테마로 한 국제 아트 프로젝트 ‘마부니 피스 프로젝트 오키나와 2018’ 행사도 있었다. 이번 행사에는 제주 중견 작가들도 작품을 출품하여 동아시아 평화예술 연대의 필요성을 공유하였다. 필자 또한 본 행사 심포지엄 발표자 차원에서 작가들과 함께 오키나와행에 몸을 실었다. 

오키나와(沖縄)는 동중국해와 태평양 바다 위에 흩뿌려져 있는 섬과 섬들로 구성된 일본 최서단 현(県)이다. 크게 오키나와 본도와 그 이외의 낙도로 나누어 말하여, 현민(県民) 9할이 오키나와 본도에 집중해서 살고 있다. 나의 오키나와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때 일본에 장기체류도 했고, 일본 여러 지역을 다니며 필드 조사도 하며, 일본을 안다고 나름 생각하지만 오키나와만은 예외였다. 그렇다고 그곳에 갈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곳 방문만은 내겐 늘 미루고 미뤘던 숙제의 땅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내 자신 섬사람의 운명을 타고 태어나서일까? 우리는 아직까지 섬의 역사를 온전히 가감 없이 전하는 기록이 거의 없음을, 설령 있다 하더라도 외부자(중앙권력)의 시각에서 입맛대로 뭉뚱그려 일반화·단순화 일변도로 그려져 왔음을 잘 알고 있다. 이에 섬사람들은 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다루어 온 역사, 섬이라는 이유로 이국정서를 조장한 싸구려 광고 홍보물에 낯설어 하고 때론 분노에 이의제기도 해왔지만, 한편으론 침묵 일변도로 식민지적 우월성의 규범들을 부지불식간에 내면화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 나이기에 세상 바다 위에 뜬 크고 작은 ‘섬’에 대한 접근(방문)에서만큼은 그냥 외부자(방문자·관광객)처럼 단순한 호기심과 이국취미(exotism)에 취해 마냥 즐거워할 입장이 못 됨을 본능적으로 때론 운명적으로 느끼곤 한다. 바로 이런 심정으로 이번 오키나와 본도에 첫 발을 내디뎠다.

사실, 오키나와는 관광객들에게는 아름다운 자연, 리조트 관광지를 연상케 하고, 이번 행사차 가는 우리 일행들에게는 오키나와 전투와 미군기지 철수, 반전·평화의 구호들로 넘치는 격전지를 자연스럽게 연상케 한다. 이것만보면 오키나와는 제주도와 친연성이 매우 강해 보인다. 또 이들 섬은 지리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표류와 표착의 역사 또는 해상무역의 번영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역사를 관통하여 군사전략상의 거점으로 주목받아 온 점도 공통점이다. 내가 듣고 알고 있는 오키나와도 거의 이 수준에 머문다. 그러니 내 자신 또한 그들의 섬에 대해 섣부르고 난폭한 정의를 내리는 외부자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러던 중에 요나하라 케이《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가마쿠라 요시타로와 근대 오키나와의 사람들》이란 책을 접했다. 올해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출간된 점도 그러하거니와 오키나와행을 앞두고 만난 지인이 우연히 건네주었던 점만 보더라도, 이 책은 내가 비로소 오키나와에 갈 때가 되었고, 그곳의 숨결을 깊이 느낄 때가 되었음을 암시하고 응원하고 있었다.

이 책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은 근대 오키나와를 무대로 가마쿠라 요시타로(鎌倉芳太郎, 1898~1983)와 근대 오키나와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풍부한 문헌, 필기노트, 사진, 증언들을 통하여 탐색·재구성하면서 ‘류큐·오키나와(문화)’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정면으로 묻는 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이 책은 기존의 일본·오키나와를 소개하는 책들과는 다른 깊이와 울림을 준다.

첫째, 이 책의 저자 요나하라 케이(1958년생)의 방대하고 치밀한 사료 수집을 통한 이야기 구성 방식에 탄성이 절로 일 것이다. 류큐·오키나와의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전반을 두루 다룬 학술서 품격을 지니면서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연신 흥미를 유발시키고 독서 삼매경에 빠트리는 마력이 있다. 그 힘은 저자 자신이 오키나와 출신 부모를 두어 평소 오키나와 등 섬에 대한 관심과 애정, 문제의식이 각별하고, 또 한편으론 그의 연구 및 관심 영역(일본 근대의 섬과 여성을 주제)에서 쌓은 내공도 가세했기 때문이리라.

둘째, 이 책의 주인공 가마쿠라 요시타로(鎌倉芳太郎)가 류큐·오키나와의 유·무형자원 취재, 수집, 집필에 바친 생애가 시대를 넘나들며 종합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마쿠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염직가(인간국보)이자 류큐·오키나와 문화연구자로 자리매김 되는 인물이다. 가마쿠라가 오키나와에 첫 발을 디딘 것은 다이쇼(大正) 말기(1921년 도쿄미술학교 졸업 후, 오키나와 본도 여학교 도화[圖畵] 교사로 부임)였다. 류큐왕국(1429~1879)의 건축물이 급속도로 사라져가던 즈음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왕성이 있던 슈리(首里) 일대를 걷다보면 누군가들에게는 왕국시대의 도자기나 기와 파편이 발밑에 걸릴 수도 있었던, 옛 왕국의 기억이 아직은 생생한 시기이기도 했다. 가마쿠라는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류큐·오키나와 문화 전반에 걸친 최고의 필드워커(현장조사자)’였다. 

“가마쿠라 이상으로 류큐와 대화하고, 관찰하고, 기록한 사람은 없다. 그는 오키나와 본도의 각지와 미야코·야에야마·아마미의 섬들을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니며 류큐의 모든 것을 파악하려고 했다. 가마쿠라가 조사의 주제로 삼은 것은 예술, 문화, 역사, 민속, 종교, 언어 등이었는데, 이처럼 폭넓은 현장조사의 예는 쉽게 찾을 수 없다.”
- 22쪽 
그의 업적 중 특히 류큐왕국 공예·예술의 기원을 추적한 활동, 즉 슈리 슈리 나카구스쿠우둔에 소장되었던 오고에(역대 류큐 왕국의 초상화) 촬영, 고문서 필사, 도기 및 염직물(빈가타) 등 조사·수집 활동은 사막으로 변해버린 전쟁 후, 그 빛을 발하여 류큐·오키나와인의 자긍심을 일으켜 세우고, 전통문화 복원과 전수에 디딤돌이 된다. 

1920년대~1930년대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민속학자들, 이를 테면 일본 민속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야나기타 구니오를 비롯하여 오리구치 시노부, 서민의 생활도구로서의 공예, 즉 민예의 가치에 착목한 ‘민예운동’의 대가 야나기 무네요시(한국에도 잘 알려진 민예운동가) 등도 오키나와를 방문·조사했다. 저자는 동시기 가마쿠라가 이들 연구자들과 교류를 하면서도, 이들 사이에는 류큐·오키나와문화를 둘러싼 인식과 접근방법에는 온도차가 극명했음을 지적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또 한 축으로는 오키나와 향토 연구가들 사이에서도 일본 ‘본토지식인’의 우월적인 태도에 대한 반감(혐오감)도 싹트고 있었다는 구체적인 상황 설명 대목들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이 책을 읽고 나서 제주와 오키나와 사이에는 단지 섬이라는 이유로 점령과 착취를 당해 온 운명공동체일지는 몰라도, 양 섬을 두고 같은 결의 ‘문화공동체’라 할 수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행해진 제주-오키나와 사이 학술교류 및 문화(예술)교류의 표피와 깊이를 냉정하게 짚고 넘어갈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제주-오키나와 간 지속가능한 문화교류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류큐·오키나와란 무엇인가’와 마찬가지로 ‘탐라·제주도란 무엇인가?’를 다각적이고 중층적으로 반복해서 물어야 할 것이다.

오키나와는 1945년 오키나와전투로 류큐왕국 시대의 건축물, 고문서, 회화, 공예품 대부분이 전화 속에서 사라졌지만, 류큐왕국을 살았던 산 증인을 비롯하여, 전쟁 전 이 책의 주인공인 가마쿠라 및 지역신문, 향토연구가들에 의해 취재·수집·기록된 자료들이 모여서 고증을 거쳐 문화재 복원(예, 슈리성 복원)과 전통문화(빈가타, 도예, 무용, 음악, 민요) 전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중에는 오키나와현립예술대학(1986년 설립)의 역할도 돋보인다. 오키나와현이 운영하는 예술대학으로 오키나와 문화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문화 이해에 앞장서려는 의지가 강한 편이다. 미술공예학부와 음악학부 두 축으로 나뉘어 현대예술에서부터 오키나와  미술 전반·음악·예능을 학생들에게 전수시켜, 전문예술인으로 지역사회에 배출하고 있다. 또 이웃 나라인 대만, 인도네시아, 타이, 베트남 등과 실기(음악·미술) 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무엇보다도 본 대학 ‘부속도서·예술자료관’은 특별컬렉션으로 가마쿠라 요시타로의 방대한 ‘류큐예술조사’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전 류큐의 사진>, <빈가타(紅型) 형지>,<기레지>, <고문서>, <조사노트>, <도자기> 등 7000여 점이 이에 해당한다. 가마쿠라라는 인물은 물론 그의 자료소장처 역시 이번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를 읽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러한 대학의 자료소장과 연계된 지역예술교육 활동에서 우리가 오키나와로부터 배워야 할 점들이 많다.

지난 호에 소개한 책 서평(91호) 제목 ‘여행은 검색어를 바꾼다’였다. 이 제목처럼 나의 오키나와 첫 방문은 검색어를 바꿨다! 어디 검색어만 바꿨겠는가? 국경을 넘어 섬과 섬을 누비며 해야 할 숙제도 더 늘었다. 앞으로 오키나와를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가게 될 이유다. 섬 곳곳에서 선조들의 지혜와 비원이 담긴 숭고한 생활사가 아스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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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자(미학자·번역가)

(사) 제주기록문화연구소-하간 대표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에서 미학(예술학)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 취득.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소(EHESS) 연구원 역임.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대학원 강사(미학) 역임.

현재, 근·현대 문화매체론, 제주기록·제주미학론. 제주도 ‘형태기록’ 생성 및 변천사 등을 연구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크리스틴 조디스 저 《미얀마 산책》(2008년), 데이비드 네메스 저《제주 땅에 새겨진 신유가사상의 자취》(2012년), 《서양인들이 남긴 제주견문록(1845~1926)》(2013년), 《서양인들이 남긴 제주도 항해·탐사기(1787~1936)》(2014년), 《구한말 佛語·英語 문헌 속 제주도(1893~1913)》(2015년), 데이비드 네메스 저 《新제주순력담》(2016년), 韓東亀 편저 《제주도: 삼다의 통곡사》(2017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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