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48) 조천리 제주자리물

조천리에는 특이한 산물로 제주자리물이란 산물이 있다. 이 산물은 조천3길 조천초등학교 뒷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섬 속에 섬에서 솟는 물로 매우 독특하고 신기한 느낌을 주는 아담한 산물이다. 올레를 막 빠져 나오면 산물로 가는 바다 둑길이 바다를 가르며 떠오르는데, 이 광경은 모세의 기적을 연상케 하는 환상을 연출한다. 이런 환상은 어떻게 바다 한가운데서 물이 용출될 수 있는지, 그 신비함과 함께 궁금증을 갖기에 충분한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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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자리물 가는 길.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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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물로 가는 올레.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제주자리물은 물이 솟아나는 곳이 섬 같은 암초다. 여기서 솟는 물로 넉두리(넋두리의 제주어) 하는데 주로 사용했다. 그래서 이 산물은 ‘자리(제주바다의 어류인 작은 돔의 일종)’와 같이 작다는 의미와 ‘제주’는 제사 등 의식을 행할 때 올리는 술의 의미가 합성되어 붙여진 이름으로 넉두리 할 때 제주를 올리는 작은 산물이란 뜻을 갖고 있다. 

넋두리는 불만이나 불평을 길게 늘어놓으며 혼잣말처럼 하소연하는 말로도 사용되지만 죽은 이의 넋이 저승에 잘 가기를 비는 굿을 할 때, 무당이 죽은 이의 넋을 대신하여 하는 말을 넋두리라고 한다. 그러나 제주 섬에서는 ‘넉들이다’라고 하여 무당의 힘을 빌려 환자의 몸에서 빠져나간 넋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빌어주는 무속행위이다. 그래서 “놀래엉 넉난 아인 내불지 말앙 넉들이라.(놀라서 넋이 나간 아이는 내버리지 말고 넋을 들여라)” 하여 할머니가 손에 물을 묻혀 아이 머리에 갖다대고 “아이고 우리 애기 넉두리라 넉두리라”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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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이 된 자리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어른 한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작은 암반으로 둘러싼 통에서 용출되는 물로 양은 그다지 크지 않으나 연중 용출된다. 자연을 그대로 돌담만 쌓은 옛 모습 그대로 보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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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물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산물이 솟아나는 원리는 유하(流下)하는 물의 압력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사이펀 현상’에 의해 바다 한가운데서 산물이 솟는 것이다. 이처럼 산물이 중력에 의한 U자형 사이펀 현상을 보인다는 것은, 물이 긴 시간 동안 장거리 여행을 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해저에서 용출되는 수중 지하수는 바닷물에 의한 강한 압력을 받기 때문에 바다 가운데 가장 압력이 낮은 경계지층에서 해수와 담수의 밀도 차에 의해 솟아난다. 

이는 한라산과 오름 등 산간지역에서 내린 강수가 땅 속 깊이 스며들어 지하수 유동방향에 대수층을 따라 지하의 강을 형성하며, 장거리 이동을 하여 바다 밑 깊은 곳까지 흘러 왔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를 증명하듯 제주자리물을 중심으로 이 일 때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산물들이 원을 그리듯 솟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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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펀 원리와 계영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계영배(戒盈杯)가 있다. 계영배는 사이펀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술잔 속에 관을 만들어 놓아 관의 높이까지 술을 채우면 새지 않으나 관의 높이를 넘치게 채우면 수압 차에 의해 술이 흘러나오게 된다. 

계영배는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피타고라스가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동양에서는 중국 춘추시대에 제환공이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만들든 ‘의기(儀器)’다. 공자는 이 잔을 항상 곁에 두고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여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고 한다. 이처럼 지나침이 없이 항상 일정하게 용출하는 제주자리물은 우리들에게 과욕을 버리라는 교훈을 주는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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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자리물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제주자리물은 제주 섬의 지하수의 형성과 유동, 그리고 용출현상을 명확히 보여 주는 학술적으로 중요한 산물이다. 이런 산물들이 있다는 것은 제주바다의 수중 해저 속에 다량의 물이 용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주자리물은 섬의 지하수의 부존과 유동특성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물이다. 그러므로 제주자리물에 대해 학술적으로 정밀조사를 할 필요가 있으며 관광적 가치도 크다. 

현재 이 산물은 맞은편 입구에 있는 집에서 개인적으로 관리하고 있는데, 산물과 주변의 산물들을 엮어 스토리텔링화하고 산물을 활용한 체험을 접목한다면 마을의 큰 관광소득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 고병련(高柄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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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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