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82) 송낙 썼다고 다 중이겠느냐

* 썻젱 : 썼다고

제 멋에 산다지만, 겉모양 내며 행세하는 자들이 많은 세상이다. 외양은 영락없는 그 모습인데 속은 영 딴판. 이쯤 되면 여간 혼란스럽지 않다. 물건에만 짝퉁이 있지 않고 사람도 가짜가 있다는 말이다. ‘참 사람’이 그리운 시절이다.

절의 중은 산문 밖으로 외출할 때, 납의(衲衣, 가사)를 입고 머리에 송낙을 쓴다. 송낙이라 함은 소나무 겨우 사리나 댓잎으로 엮은 여승이 쓰는 송사립(松蘿笠, 송라립)인데, 중이 쓰는 모자로 고깔 같은 것으로 중을 상징하는 복색의 하나다.

송낙을 쓰고 나서면 언뜻 진짜 중으로 보기 쉽다. 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데도, 송낙만 머리에 얹어 중 행세한다고 결코 중이 될 수 없음을 빗댐이다.

정체를 위장하거나 본질이 왜곡되기 일쑤인 세태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우선, 송낙이 낯설 것 같아 사족을 단다. 승려 복식의 모자다. 소나무에 기생하는 송라(겨우사리)로 짚주저리 비슷하게 엮는데, 위로 촘촘히 짜고 아래는 15cm 정도 엮지 않고 그대로 둔다. 위는 뾰족한 삼각형 모양이나 정수리 부분은 뚫린 채로 남겨 두는 것이다.

‘송낙 썻젱~’이란 말의 행간에서 화자가 나타내고자 한 속뜻이 은근히 얼비친다. 중도 아니면서 중 행세를 한다거나, 행여 중이긴 하나 제대로 된 중이 아닌 사이비임을 넌지시 비꼬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땡중’, 그러니까 가짜 중을 끄집어내는 언외의 의중이 있어 보인다. 가짜 중이 염불이나 불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불교의식(법요식)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 말이 땡중이다. 무슨 일이든 잘못한 채로 얼버무리고 마는 사람을 비꼬아 하는 말이기도 하다. 땡추가 다름 아닌 땡중이다.

머리에 송낙을 썼다고 중 행세를 했다면 영락없는 땡중이 아닌가. 스님으로서 온전한 대우를 받을 수 없음은 말할 것이 없다.

세상이 험하고 그릇되다 보니 실제 땡중을 넘어 파계승도 없지 않다. 뜻 그대로, 성직자로서 계법(戒法)을 어겨 지키지 아니한 중이 파계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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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낙 썻젱 다 중이랴. 세상이 험하고 그릇되다 보니 실제 땡중을 넘어 파계승도 없지 않다. 지난 7월 17일 조계사 옆 우정공원 옆에 마련된 설조 스님 단식 농성장. 농성장 주변엔 조계종 개혁을 촉구하는 구호가 적힌 팻말이 놓여 있다. [편집자] 출처=오마이뉴스.

어떤 계율을 어겼을 경우, 해당 승려는 다른 승려에게 이를 고백하고, 벌이 정해져 있다면 이를 받아들여야 하며, 그 과정이 끝나기 전까지는 승려라는 신분은 인정받되 승려로서의 권리는 정지된다.

거듭 말하거니와 파계승은 계를 어겨 죄를 지은 승려를 가리킨다. 참회하거나 벌을 받는 과정을 모두 완수하기 전에는 여전히 ‘범계(犯戒, 계율을 어김)한 승려’ 가 된다. 범계한 승려는 청정함을 상실하며, 축출되거나 혹은 벌을 받거나 참회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청정한 승려’가 된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계율에 관해 지나치게 관대해서 참회하거나 처벌하는 과정이 없어 청정함을 잃었다는 세간의 비판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는 승려가 고기를 먹었다고 해서 파계승이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다만 승려가 술을 마시는 것은 파계다. 

산문을 깊숙이 들여다보지 못하지만, 흥미로운 부분들이 눈과 귀를 열게 하는 수가 종종 있다. 스님들의 은어는 이미 속세에 알려진 지 오래다. 술을 말할 때는 슬쩍 돌려서 ‘곡차(穀茶)’라 한다. 그것 말고도 스님들 사이에서는 본디 금지되는 음식을 일컫는 은어가 있다. 고기를 ‘도끼나물’, 생선을 ‘칼나물’이라 한다. 그것들을 가축(동물)을 잡거나 요리할 때 쓰는 도구(연장)과 평소 절에서 주로 먹는 채소를 버무려 만든 말로 보인다. 이런 음식을 즐겨 먹은 중들을 세간에서 땡추라고 부른다.

하긴 곡차라 해서 무조건 항간에서 마시는 그런 술이 아님도 알아야 한다. 본디 곡차란 특별한 것이다. 

원래 스님은 찬바람 도는 얼음장 같은 바위나 산마루에서 수행을 해 병이 쉬이 찾아들었다. 고산병, 위장병, 열병, 혈액순환장애…. 갖은 질병과 장애를 막고 치료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 송홧가루, 솔잎, 산수유, 오미자, 구기자 같은 좋은 재료를 넣어 술을 빚었다. 이를 곡차라 부르고 마시면서 기(氣)를 다스렸다. 같은 곡차라도 막걸리와는 사뭇 다르다.

조선시대 명승으로 작은 석가라 불린 진묵대사로부터 이어진 제조법이 수왕사 주지 스님에서 대대로 전수되는 가운데 오늘에 이른다. 대한민국 전통음식 제1호로 명맥을 잇고 있다.

“술을 금기시하는 사찰의 주지가 웬 술이냐 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제가 빚는 송화백일주는 말 그대로 소나무꽃을 주원료로 담근 후, 100일 동안 소나무 밑에 묻어 둔 보약입니다. 이 술은 350여 년 전부터 수왕사에서 제조해 왔고, 저는 12대째 그 비법을 이어 왔지요.” 조영귀 명인의 말이다.

알코올 도수가 38도. 보통 소주가 21도 내외이니 독한 술 축에 든다. 하지만 송화향이 아주 잘 잡혀 있단다. 그 향은 솔보다 더 짙고 색은 투명한 노란빛, 첫 맛은 쌉싸래하고 뒷맛은 달콤하다는 것이다. 한 모금씩 맛볼 때마다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지 않는가.

스님이 곡차 마신다는 말을 함부로 할 게 아니다. 스님을 의아해 하는 것도 불경한 일이거니와, 스님도 왜 그런 의심의 시선이 있는가를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참’ 행세하는 ‘거짓’이 용납돼선 안된다. 

‘송낙 썻젱 다 중이랴.’ 

백 번 맞는 말이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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