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58) 하귀1리 군냉이 산물

하귀1리는 원래 귀일촌에 속했던 마을로, 동쪽에 있어 동귀라 불렀다. 바닷가에 해중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선서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추정된다. 옛 이름으로 군냉이(軍浪浦, 軍郞浦, 軍港洞)라고 했던 하귀1리는 삼별초 항쟁 시 항파두리성의 전초기지인 군항지로 이용할 만큼 주요 군사기지였는데, 그 이유는 이 일대에서 솟는 산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물에서 좋은 술이 나온다고 했던 것처럼, 이 마을에는 술을 만드는데 사용했던 양질의 산물이 있었다. 소주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고려 충렬왕 때로, 당시 몽골군을 통해서 소주가 도입됐다. 특히 몽골군의 주둔지였던 안동과 개성, 제주도는 제조법이 발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광복을 전후해서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 고망물의 황화소주,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와 옹포리를 경계로 흐르는 월계천의 명월소주가 있는 것처럼 애월읍 하귀1리 관전동에도 귀일소주가 있었다. 이 소주의 원천이 되는 물은 뜸북개물(관전동물, 공장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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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뜸북개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부르는데, 퇴비로 사용되는 해초류인 듬북(모자반)이 많이 밀려왔다고 해서 뜸북개물, 해안가에 있는 평평한 바위에 관에서 관장하던 염전(소금밭)과 관청(官廳) 소유의 땅인 공공농지인 관전(館田)으로 마을이 형성됐고, 그 마을에서 사용한 산물이기에 관전동물, 그리고 소주공장에서 주조용으로 사용했다고 해서 공장물이라 부른다.

뜸북개물은 물이 귀하던 시절에 한 방울의 물이라도 소중히 다루기 위해 여러 칸으로 구분해 이용했던 것처럼 네 개의 칸으로 나눠 사용했다. 첫째 칸은 제사용 또는 식수로만 사용됐다. 첫째 칸을 넘쳐 다음 칸으로 흘러간 물은 채소나 음식을 씻는 물이다. 셋째 칸은 여탕으로 피로를 씻어내는 목욕물로 사용되었으며 마지막 칸은 빨래터였다. 1997년에 개수할 당시 덮었던 슬레이트 지붕은 철거해 버렸으나 지금도 이 산물은 마을 주민들의 빨래터와 목욕 장소로 혹은 가뭄 시 농업용수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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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뜸북개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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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뜸북개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하귀 해안가는 거시린물(거슬린물), 괴난물, 새끼물, 소랑물, 팡물, 할망물, 선창물, 장지물, 하루방물, 호물 등 많은 산물이 솟아난다고 알려져 있다. 이중 대표적인 산물은 거시린물(거슨물, 거슬린물)로 고수동해안가에서 솟아난다. 서출동류하는 신령스런 산물로 고수동 식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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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수동 해안.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바닷가로 흐르지 않고 한라산 방향으로 거슬러 흐르는 역수(逆水)다. 호종단전설에서 물혈을 끊어 버리려는 힘에 저항한 ‘거슨물’이다. 또한 주변의 산물들과 상봉하여 서로 화합하는 물이라고 하여 마을에서는 신성시 여기고 있다. 예부터 이 산물을 먹으면 장수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마을의 행사 때 제수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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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시린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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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물로 가는 소롯길.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이 있는 궤앞원에는 산물로 가는 소롯질(작은길의 제주어)과 빨래터 등 여기저기서 또 다른 ‘거슨물 1·2·3’이 솟아난다. 특히 이 원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해안조간대 고인돌이 수천 년의 해풍과 파도를 이겨 내며 고수동을 지키고 있다. 무슨 까닭인지는 몰라도 바닷가에 선사시대 고인돌 유적이 있다는 것은, 섬의 상고시대부터 선민들이 이곳에서 터전을 마련했으며, 이곳에 정착하여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거스린물 등 산물들이 군락을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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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조간대 고인돌.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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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슨물 1.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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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슨물 2.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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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슨물 3.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외에도 거스린물 서쪽 160m 정도 떨어진 곳에 가린여원물이란 자그마한 산물이 물통 하나를 채우고 있다. '갈라진 여'란 뜻의 가린여 바닷가 큰 바위 밑에서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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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린여원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그리고 하귀10길에 있는 어촌계 잠수공동작업장 북측 검은 돌로 덮여 있는 검은여원에도 예전에 홍대기물(항아리물)라 했던 산물이 있다. 이 물은 홍씨 성을 가진 사람이 집을 지어 시용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물통의 형상이 항아리처럼 보여 항아리물이라고 부르며 두 군데에 크고 작은 돌담을 쌓아 이용시설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식수통 안에는 자갈들로 가득하다. 한 주민에게 물었더니 전에는 사용했었는데 지금은 물이 말라버려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없애버리지 않고 마을의 설촌 유적으로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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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기물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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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기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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