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84) 추석 전에 벌초 안 하면 덤불 쓰고 명절 먹으러 온다

* 자왈 : 덤불, ‘곶자왈’의 자왈임
* 썽 : (머리에)써서
* 맹질 : 명절, 여기서는 추석명절

벌초는 봄, 여름에 자랄 대로 자라 산소를 뒤덮은 잡초를 베어 깨끗이 하는 일이다. 그냥 두면 풀이 덤불숲이 되니 볼썽사납게 된다. 연년이 음력 8월로 접어들면 벌초를 시작해 추석 며칠 전까지 마치는 것이 풍속이 돼 왔다. 자손이 그렇게 벌초를 하지 않으면 조상(신위)이 추석 명절날 차례 때 덤불을 쓴 채로 명절 먹으러 온다는 것이다. 추석 전 벌초는 의당 자손으로서 해야 할 마땅한 도리로 알고 있다.

벌초는 추석 전에 하는 것임을 일깨우는 의도가 돋보인다. ‘자왈 썽 맹질 먹으레 온다’고 마치 영상을 보듯 극적으로 표현했다.

벌초와 비슷한 말로 소분, 성묘가 있어 대체로 혼용하는 사례가 많다. 구분해 쓰는 것이 좋을 듯해 본래의 뜻을 환기하려 한다.
  
소분(掃墳) : 조상 묘소에 가서 무덤을 깨끗이 하고 제사를 지냄. (‘掃’자가 청소의 뜻)
성묘(省墓) : 산소에 가서 인사를 올리고 묘역을 살핌. (‘省’자 살핀다는 뜻)
벌초(伐草) : 무덤의 잡풀을 베어 무덤 안팎을 깨끗이 치움. (‘伐’자가 풀을 벤다는 뜻)
성묘는 주로 한식에 하는 것이고, 소분과 벌초는 거의 동의어로 쓰이는데, 특히 우리 제주 지역에서는 같은 말로 당한 대로 쓴다.

“추석 전이 소분 안 허민 자왈 썽 맹질 먹으레 온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가장 중요한 명절인 추석 전에 벌초를 해야 한다는 당위론에서 나온 말이다. 제주사람들의 조상숭배 사상의 단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울릉도에는 섬 고유의 풍습이나 전통이 없는 데 비해 제주도는 의식주에서 벌초풍습에 이르기까지 육지하고는 다른 독특한 특색을 지녔다. 예전에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외딴 절해고도라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음력 8월 추석 이전에 조상의 묘에 자란 잡초도 베고 묘 주위를 정리하는 오래된 풍속이 벌초다. 주로 백중 이후인 7월 말부터 추석 이전에 이뤄진다. 이는 전국적인 미풍양속으로 고향 근처에 사는 후손이나 외지에 나기 사는 후손들까지 찾아가 조상의 묘에 자란 풀을 제거하고 묘 주위를 정리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금초(禁草)’라 부르기도 한다. 풀이 나지 못하게 금한다는 뜻이니 벌초‧소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망종이 지나 처서가 되면 풀이 성장을 멈추기 때문에 이때 벌초를 하면 비교적 오랫동안 산소가 깨끗이 보전된다. 추석에 성묘하기 위해서도 추석 전에 반드시 벌초를 끝내야 한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이때가 되면 일가(一家)가 떼 지어 다니며 벌초를 한다. 역시 추석 전까지 끝내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이를 ‘소분한다’ 혹은 ‘모듬벌초 한다’고 부른다. 모듬벌초는 음력 8월 초하루부터 왕래가 잦은 친족까지 하나로 무리를 이뤄 행하는데 보통 8촌 이내다. 이 벌초는 집안의 모든 사람이 참석하는 빼놓을 수 없는 친족공동체의 연례행사가 돼 왔다. 날짜가 일찍 정해 있어 정일벌초(定日伐草)라 고도 한다.

182084_208131_0443.jpg
▲ 추석 전이 소분 안허민 자왈 썽 맹질 먹으레 온다 이렇게 죽은 조상을, 살아 있는 사람처럼 예우함에 지극했다. 조상의 묘를 살피고 돌보는 일은 효행이자 곧 후손의 책무였다. 한데 벌초문화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설과 한식에는, 성묘는 하되 벌초는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설에는 벨 풀이 없고 한식에는 풀이 막 자라기 시작할 때라 바람에 건들거리는 것만 손으로 뽑아 준다. 그러니까 벌초는 봄과 가을, 두 번 하는 것이 상례다. 예로부터 선묘에 공을 들이고 정성을 다했다. 한식에도 풀만 안 벨 뿐 겨우내 봉분에 생긴 구멍(穴)이나 성하지 못한 떼(잔디)를 다시 입혀 주는 개사초(改莎草)를 하기도 한다.

추석 전에 벌초를 하지 않으면 보기도 흉하거니와 자손이 없는 묘로 여기기도 했다 또한 자손이 있음에도 벌초를 하지 않는 행위를 불효로 간주했음은 두말할 것이 없다. 오죽 했으면 ‘식게 안 헌 건 놈 몰라도, 벌초 안 헌 건 놈 안다’(제사 안 한 건 남이 몰라도 벌초 안 한 건 남이 안다)고 했을까.

이렇게 죽은 조상을 살아 있는 사람처럼 예우함에 지극했다. 조상의 묘를 살피고 돌보는 일은 효행이자 곧 후손의 책무였다. 오늘날에도 벌초 때면 도로가 차로 붐비는 현상을 목도할 수 있다. 한국은 어쩔 수 없는 유교의 나라가 맞다.

한데 벌초문화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마침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인데, 잡풀이 무성한 묘역에 들어서서 풀을 베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다. 예초기가 일을 수월하게 해 준다지만 벌초는 잡초와 사투(死鬪)를 벌이는 일이다. 이런 고역이 없다. 멋대로 웃자란 망초와 산딸기와 찔레의 밑동을 베어 내는 게 쉽지 않다. 더욱이 묘소 담장 안팎은 낫질로 해야 하는데 얽히고설킨 가시덩굴을 헤치는 일이라 불경하게도 조상 머리맡에서 한숨이 나올 판이다. 몸은 이미 땀으로 뒤범벅이 돼 있다. 나처럼 반세기를 해마다 벌초해 온 사람도 벌초 때만 돌아오면 근심이 태산이고 묘소를 향해 가는 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벌초대행업이 성행하는 요즈음이다. 사정이 있어 대신 맡기겠지만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찾기도 할 것이다. 장묘문화가 달라져야 한다는 데 힘이 실리고 있는 작금이다. 매장 방식에서 화장 쪽으로 많이 기울고 있는 추세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왕 화장 방식으로 할 것이면 납골당에 봉안하면 좋지 않을까. 굳이 벌초를 면하려는 것이 아니다. 벌초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도 하려니와 조상을 봉안하는 좋은 방법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함이다.

어쨌든 추석 전에 벌초를 말끔히 한 연후에 명절을 쇠야 마음이 편한 법이다. 안 그랬다간 조상님이 자왈 쓰고 올지 모른다. 마음에 걸리는 게 없어야 명절이 즐겁다. 그에 앞서 자신이 어디서 나왔는지 근본을 되뇔 일이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