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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양보한 청량한 정화수 산물

2018년 09월 23일(일) 00:19
고병련 news@jejusori.net
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66) 금성리 남당 산물

금성(錦城)리는 곽지리에서 분향한 마을이다. 금성리가 해안가에 마을을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자천(亭子川)의 물과 남당산물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금성리는 정자천 하구를 중심으로 모슬리라는 모슬개(모살개, 모실개)포에 형성됐다. 금동산과 ‘잣를, 잣르’라는 잣모루란 지명에서 연유된 ‘잣담’이 성처럼 쌓여 있어서 비단같이 아름답게 성을 쌓은 마을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모슬, 모살, 모실은 모래(沙)의 제주어다. 그래서 금성리를 슬금지칭(瑟錦之稱)이라 하여 거문고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아름답다는 뜻이 담겨 있다. 아쉽게도 이 모슬개는 1959년 추석 명절날 새벽에 불어온 ‘사라호’ 태풍에 위해 정짓내가 범람하면서 냇물로 쓸어버려, 포구의 원형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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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짓내.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정자천은 정짓내라고도 하며 금성천 하류다. 1865년 대홍수로 하천이 범람하여 마을 저지대가 물바다가 되어 폐동되기까지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금성천과 연관하여 ‘개롱이’란 지명이 일주서로 남쪽에 남아 있는데, 이곳은 홍수나 해수의 침입으로부터 농토를 보호하기 위해 석축한 곳이다. 석축 이유는 정짓내에 홍수가 범람하고 그 때 맞추어 만조 시 해수의 침입으로 거센 물결이 몰아치면, 모살개의 배도 파손되므로 이곳 ‘개롱이’를 든든히 보호해야 마을이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금성천은 홍수에 취약하여 하천이 범람하곤 한다.

물과 관련하여 금성리는 모시포, 마포, 관용지, 유령문지(창호지)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종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산물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금성리는 물과 인연이 많은 마을이다.

남당물은 곽지리 경계가 되는 지경인 남당바위에서 솟는 물로, 당에서 사용한 물에서 이름이 연유됐다. 남당은 뱃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해신당이다. 사람들은 이 당집을 찾아 어선의 안전귀환, 풍어, 가족의 건강, 집안 번성을 위해 치성을 드렸는데, 이 물을 찾았다고 한다. 제례의식과 관련된 물을 성수(聖水)라고 하여 정한수로 신성시 해 온 것은, 물이 생명의 원천이자 낡고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으로 바꾸는 재생력과 정화력을 지니고 있어서다. 남당물 역시 신성시 여긴 물로서, 굿이나 치성을 드리기 위해 떠온 정화수는 기본 제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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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당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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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당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당에서 사용했지만 수세가 좋아 여름철 백중날에 물 맞으면 무병장수한다 하여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평상시 남당물은 마을의 여성들이 사용하였다. 지금은 정비하면서 바닥을 제주석 붙임으로 보수하고 옛 돌담 위에 다시 일미터 가량 더 높이 담을 쌓아 놓아 개수되었지만 다행이 옛 형태를 유지한다. 이 산물은 담을 쌓아 두 칸으로 나누고 들어가는 입구에 식수통, 그 안쪽은 빨래터를 만들어 사용한다. 

원래 남자 전용의 산물은 남당물이며 여자전용은 갯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갯물은 정짓내와 바다가 맞닿는 데 있어 잦은 하천범람과 하천바닥에서 나는 물이라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남자들이 자기들의 물인 남당물을 여자들에게 양보했다고 한다. 지금 남당물은 말굽의 징 모양으로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성처럼 산물을 조성해 놨다. 식수통과 빨래터가 담을 경계로 영역을 완전히 구분하여 이용할 수 있게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여자물이 된 남당물은 남자들의 양보의 미덕 속에 여전히 청량하게 솟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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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당물 입구(식수통 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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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당물 안쪽 (바다 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남자들은 남당물에서 동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큰 바위 밑에 한 사람 정도 들어갈 크기의 자연적으로 형성된 암반 웅덩이를 남자목욕탕으로 사용한다. 이 산물은 남당암수(南堂岩水) 하여 곽금5경 중 하나라고 자랑하는 산물이다. 이 산물의 입구 안내판에서는 “과오름 둘째 봉인 샛오름의 용암이 흘러 바닷가에 멈추어 용머리를 만들었다”며 이 용머리 부분에서 솟아나는 산물이라 소개한다. 

바다 쪽 암반은 무너짐을 방지하고 바닷물이 유입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시멘트로 덧칠했지만 그래도 원래 있던 그대로 구조가 남아 있다. 용은 우리 말로 ‘미르’이다. ‘미+르’는 물을 뜻하며 용과 물은 일체다. 그래서 물과 하나가 된 용은 승천하기 위해 입에서 토해내 듯 가장 기가 센 용물을 내뱉으며 웅크린 자세를 하고 있다. 그래서 여자들이 목욕을 허락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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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당암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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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당암수와 용머리 바위.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금성1길 정자가 있는 공터의 금성천 제방 서측계단으로 내려가면 엉물이 있다. 이 산물은 제주어로 ‘엉’이라 하는 ‘언덕’ 아래서 솟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언덕의 흔적은 사라지고 도로와 하천 제방이 있으며, 이 제방 굽(밑을 일컫는 제주어)에 있는 바위틈에서 용출된다. 

언뜻 보기에는 자연 상태로 용출되어 이용시설 없이 사용한 산물로 보이지만 금성천을 정비하면서 산물 보호시설은 없어졌다. 다만, 산물이 솟는 곳은 주민들이 반대로 없애지 못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없애버릴까 봐 징검다리나 빨래판으로 사용 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세 덩어리의 암석을 엉물 앞에 두어 수문장으로 삼고 산물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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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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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 바위 틈에서 물이 용출되는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 고병련 교수. ⓒ제주의소리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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