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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아름다움과 즐거움의 궁극

2018년 09월 24일(월) 09:19
김준기 news@jejusori.net
[BOOK世通, 제주 읽기] (108) 안잔 채터지, 《미학의 뇌》, P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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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잔 채터지, 《미학의 뇌》, PARC. 출처=알라딘
파브르 곤충기로 유명한 쟝 파브르(Jean-Henri Fabre)의 증손자 얀 파브르(Jan Fabre)는 안무가이자 설치미술가로 활동하는 전방위 예술가다. 뇌를 소재와 주제로 다룬 작품들로 큰 반향을 일으킨 그의 작품 중에는 이런 제목의 비디오클립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뇌로 느끼고 우리의 심장으로 생각하는가?(Do We Feel with Our Brain and Think with Our Heart?)”. 이 작품은 ‘뇌=생각, 심장=느낌’이라는 도식을 뒤집어서 ‘느낌 또한 뇌의 문제’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인류는 오랜 역사 시기에 걸쳐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낀다’고 알고 있었다. 이성과 감성을 두뇌와 심장이라는 두 개의 다른 신체 부위가 주관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심장은 다른 신체 기관들과는 달리 외부의 자극에 대해 뇌의 명령과 관계없이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독특한 기관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감성을 주관할 수 있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인간의 감성을 심장이라는 장기와 연결했던 막연한 생각은 이제는 문학적 수사에서나 등장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도 인류는 감성을 주관하는 신체 기관으로서의 뇌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한다. 이 책은 아름다움과 즐거움, 예술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감성을 주관하는 뇌의 진화를 이야기한다. 이 번역서의 원제 “에스테틱 브레인(The Aesthetic Brain)”은 ‘감성학적인 뇌’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에스테틱’이라는 말은 ‘미학적인’이라는 번역어로 쓰이고 있지만, 속뜻은 ‘감성학적인’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다루는 학문’보다는 ‘감성을 다루는 학문’이 제 뜻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에스테틱’의 번역어가 ‘미학적’이냐 ‘감성학적’이냐에 달려있지 않다. 핵심은 왜 브레인 앞에 에스테틱이라는 부사를 달았는지에 있다. 이 책이 말하는 ‘미학의 뇌’, 즉 ‘감성학적인 뇌’는 인간의 뇌가 주관하는 감성의 코드를 들여다보는 ‘뇌과학 기반의 감성학’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또 하나의 질문은 감성에 관한 인문과학 영역의 학문이 과연 뇌과학과 같은 자연과학의 영역과 잘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감성에 관한 학문으로서 미학이 자리잡은 것은 서양 근대기의 일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감성의 문제를 이성의 영역으로부터 분리하지 않은 채 이성학 중심의 철학에 묶어 두고 있었다. 감성을 체계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감성학으로서의 미학(Aestheics)은 논리학과 같은 이성적 인지의 문제와 분별하여 감성적 인지를 본격적으로 다룬 바움가르텐 이래에 완결체에 도달했다. 그 이후 ‘아래로부터의 미학’ 등의 변혁을 거치면서 예술에 관한 과학, 즉 예술학에까지 이르렀지만, 이 또한 어디까지나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의 범주 안에서의 일이었다.

이제 감성의 문제는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을 넘어 자연과학과 융합하고 있다. 감성을 온전히 과학적 탐구의 영역으로 삼는 분과학문으로서의 과학, 즉 감성과학(感性科學, the science of emotion & sensibility, affectivescience)이 그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정서와 감정을 연구하는 과학’으로서, ‘감성의 유발·인식·행동 등에 관한 제반 원리를 규명하고 활용하는 학문’이다. 그것은 자극에 대한 인간의 심리와 생리, 행동 등의 반응 등을 측정하고 분석하여 감성을 유발하고 인식하며, 경험하고, 행동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법칙을 찾는다. 이러한 감성과학은 인간 삶에 실제 적용가능한 감성공학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지능 발달 정도를 나타내는 지수인 IQ(지능지수, intelligence quotient)만큼이나 EQ(감성지수, emotional quotient)를 강조하는 바와 같이, 현대사회는 이성과 감성을 별개의 인지영역으로 보지 않고 상호작용에 따른 인지 영역으로 보고 있고, 이에 따라 인문사회과학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과 공학 영역에서도 인간의 감성적 인지 문제에 깊숙이 간여하고 있다.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감성적 인지 영역을 인문사회과학이 아니라 자연과학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신경미학(Nuro-aesthetics)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부제 ‘어떻게 우리는 아름다움을 욕망하고 예술을 즐기도록 진화했을까(how we evolved to desire beauty and enjoy art)’는 심미와 예술을 탐닉하는 인간의 감성이 진화의 산물임을 암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심미와 예술을 다룬다. 진화생물학은 오랜 과거의 일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인류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문제이다. 이러한 진화생물학과 신경미학의 만남을 주선한 이 책은 현생 인류의 감성체계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역자 심희정의 말을 들어보자. 

“이 책에서 소개된 신경미학은 학제적으로 미학을 주소지로 한 신생모델입니다. 과학적 방법론에 기댄 신경미학의 전망은 현재 인공지능, 뇌과학, 사물인터넷, 증강현실, 빅데이터가 삶에 들어서는 속도와 현황을 볼 때 그 응용과 활용이 기대를 모읍니다. 여기서 진화의 개념은 우리에게 두 개의 창문이 됩니다. 하나는 적응적 설계라는 의미에서 마음과 뇌의 발달 및 진화가 먼 조상들이 문제와 한계를 해결하고 뛰어 넘는데 적합한 최적의 구조를 산출했다는 점이며, 또 다른 하나는 적응을 이끄는 보이지 않는 선택과 환경의 중요성을 제시합니다. 뇌와 마음의 관계, 나와 연결된 환경은 떨어질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자연환경이 우리를 형성했으며, 우리 역시 인공화를 통해 환경을 변화시킵니다.”

이 책은 아름다움과 즐거움, 예술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파헤친다. ‘1부. 아름다움’은 매력적인 얼굴과 신체, 풍경에 대해 작동하는 뇌의 반응을 살피며 논리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의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2부. 즐거움’은 음식과 섹스, 돈, 선호, 욕망, 학습 등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의 논리를 이야기한다. ‘3부. 예술’은 예술에 관한 과학적 서술과 실증을 다루고 진화 속의 예술을 통하여 인간이 예술을 창조하고 소통하는 맥락을 다룬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심리기제는 즐거움이라는 쾌락기제와 맞붙어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다. 즐거움에 대한 판단 또한 개별적이다. 따라서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감성학적인 뇌는 인간 감성의 핵심을 아름다움과 즐거움으로 집약하고 그 심미성의 궁극을 예술에서 발견하고자 한다.

인간의 감성은 그의 경험의 결과이다. 미학의 선구자 칸트의 말대로, 미적 판단이 주관적인 이유는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은 각각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감성체계와 그에 따른 심미적인 판단 또한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문과학 기반의 미학이 일궈낸 근대의 위대한 성취다. 자연과학 기반의 미학은 그것을 과학적 데이터를 통해서 증명해낸다. 신경미학은 뇌활성화 과정에 대한 뇌과학적 데이터들을 분석하고 해석함으로써 심미와 예술 영역에 반응하는 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감성과학에서 인지과학으로 진화하면서 인간의 마음에 존재하는 비논리적인 코드를 해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나가가 그것은 선사시대에 태동하여 본능적 차원의 공포를 극복하게 해주었던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여 동시대 인류에게 정신성(spirituality)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는 예술의 역할을 알려준다.

저자 안잔 채터지는 인문사회과학 영역에서 말하는 예술의지나 예술의 보편성과 같은 해묵은 논제들을 단호히 부정한다. 아름다움과 즐거움, 예술에 대한 신경과학적 실험과 관찰은 인간의 인지체계가 태생적인 감각기관의 작동 단위를 넘어 학습에 의한 후천적 문화의 영역으로 확장하였음을 알려준다. 인간은 본능을 가진 생명체다. 모든 생명체에 부여된 이 본능의 단계를 넘어서 기억과 감각, 느낌, 생각에 이른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은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분별을 가질 수 있었고 그것을 표현과 소통의 영역으로 이어낸 문명의 일환으로 예술이라는 개념과 제도를 만들어 냈다. 뇌의 보상체계는 음식, 섹스, 돈, 마약 등과 같은 본능에 가까운 감각적 쾌락의 차원을 넘어서서 감정과 사유를 융합한 예술을 탐닉하는 존재로 진화했다. 인간의 진화는 본능적 감각을 문화적 코드로 전환한 데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가 들려주는 다음과 같은 말들은 인류문명에서 예술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준다.

“신경미학(neuroaesthetics)에 속하는 연구들은 우리 뇌에 아름다움과 예술을 위한 전용 모듈이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는 시각, 촉각, 후각 같은 특정한 감각 수용기를 갖고 있지만 특정한 미적 수용기를 갖고 있지는 않다. 또한 공포, 근심, 행복의 정서와 유사한 특별한 미적 정서를 소유한 것도 아니다. 나아가 기억, 언어, 행위를 담당하는 뇌의 시스템과 유사하게 아름다움을 담당한 특정한 인지 시스템도 없다. 오히려 미적 경험은 유동적으로 감각, 정서, 인지 시스템의 신경적 조화를 이끌어낸다. 조화를 구축하는 유연성은 예술에 대한 경험과 미적인 경험을 예측할 수 없도록 다양하게 만든다.”

▷ 김준기
미술평론가.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전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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