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70) 애월읍광령리 수칠성 산물

광령은 산이 아름답고 물이 맑아 ‘산주수청(山佳水淸)’하니 ‘광(光)’이요, 백성의 민속이 밝고 선량하니 ‘령(令)’이라 이름 붙인 마을이다. 광령리는 영산인 한라산의 정기가 뻗어 내린 산칠성(山七星)이란 일곱 개의 산봉우리와 수칠성(水七星)이란 일곱 곳의 맑은 산물과 조화를 이루었다는 마을이다. 곳곳에 맑게 솟는 물들과 도내에서 제일 크다는 하천인 무수천이 있기에 지금껏 마을 유지가 가능했다. 칠성은 수명장수와 길흉화복은 관장하는 하늘의 신인 칠원성군으로 북두칠성을 의미하며 칠성은 우물에 비친다고 한다. 광령리의 수칠성은 ‘거욱대물, 절물, 정연물, 자중동물, 독짓굴물, 행중이물, 샘이마를물’이다.

광령1리 마을 서단에 위치한 절동산의 절물(寺水)은 절에서 쓴 산물로, 옛적 절터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영천사란 절이 있었고 인근에 큰 석불이 묻혀 있다고 하나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큰 주춧돌 하나가 발굴되었다. 지금은 여기에 향림사가 있으며, 산물은 사찰입구에 있으며, 길가에 사찰경계를 따라 길게 만들어져 있다. 

이 산물에는 두기의 사수수선비가 세워져 있다. 지금 산물은 개수되어 바닥은 제주돌을 가공한 판석으로, 식수통과 수로 등을 콘크리트로 바꿔 옛 정취가 많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마를 줄 모르는 생명력을 과시하듯 물이 솟았는데, 관리가 허술한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이 산물은 예전에 호열자(콜레라)가 많이 발생했을 때도 이 물을 길어다 마신 주민들은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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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물 입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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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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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물 내부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샘이마를물은 지금은 애조로에서 사메기길로 들어서면 조그만 오름같이 보이는 동산 북측 기슭 콘크리트 도로 가에 자리한다. 이 산물이름에서 ‘마를’은 고개 또는 동산을 지칭하는 제주어로 이름 그대로 동산(고개) 밑에 있는 물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다. 

산물은 옛 모습 그대로 물통 하나만을 가지고 있다. 물은 바위 밑 궤에 고인 듯 스며들어 나와, 물을 둘러싼 바위의 기운을 받아 무겁고 물맛이 좋은 암물 혹은 약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웅덩이처럼 움푹 패인 물통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놓인 돌계단은 예전 그대로다. 물은 나무로 그늘져 있어 그 모습이 산골 새색시 같이 청량한 모습이다. 이 물은 예전에 사라마을 사람들이 주 식수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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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이마를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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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이마를물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독짓굴물은 무수천사거리 교차로 인근 과수원 굴속 암반 틈에서 용출되는 물이다. 지금은 과수원에서 사용하는데 ‘독짓’은 지세가 독자형(獨子形)이라서 붙여졌거나 군대의 군기인 독기(纛旗)의 변음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정확한 그 의미는 알 수 없다. 이 산물은 팽나무 고목 밑에 있는 수직으로 형성된 굴에서 산물이 솟아나고 있으며, 나무덮개로 덮어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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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짓굴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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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짓굴물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행중이물은 광령1리사무소에서 500미터 떨어진 무수천길에 있는 산물이다. 산물이 있는 지경을 행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각 식수통 하나만 갖고 있는 작은 물이지만 귀한 식수로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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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중이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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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중이물 내부 전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광령2리는 유목민들이 옮겨와서 설촌했다고 알려진 이싱굴 마을이다. '비신골'이라는 하는 정연(절연)동산에 '정연(井淵)'이라는 절굴물이 있다. 이 산물은 고려시대 묘련사(妙蓮社)란 절이 있어 절골물 혹은 정연동산이 매고할망과 관련하여 정연이라 부르고 있다. 산물은 제주관광대학교 건너편 평화로 남측에 있는 대각사란 사찰이 있던 길 입구의 큰 암반 밑에서 자연 그대로의 맑은 물이 솟아난다. 예전에는 물이 좋아 백중날 물 맞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으며, 이 일대에 논을 만들어 관개용수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 산물은 사찰에서 관리하다가 사찰이 폐절되고 난 후 한동안 방치되다가 원 식수통 밑에 말굽형 물통을 만들어 2014년 개수했다. 

매고할망 전설에 의하면 이 여인은 젊었을 때 전 남편이 죽임을 당한 뒤 혼자 살다가 재혼을 한 뒤로 일곱 아들을 낳고 살았다. 남편이 전 남편을 죽인 사실을 알고 남편을 관가에 고발하여 대살 당하게 한 후 자식들을 모두 집에서 쫒아내고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고 들어가 나오지 않으니 ‘매고할망’이라 하고 그 무덤을 ‘매고무덤’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대를 ‘비신골’이라 하는데, 이 같이 불미스런 일이 있고 난 후 비신골에 살던 사람들은 유신동으로 집단이주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긴 세월동안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정연동산의 정연은 마을의 집단이주와 설촌에 깊이 관련된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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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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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집단생활에 필요한 급수원 설촌의 중심이 되었던 산물로 거욱대물(높은욱대물, 거악대[去惡垈]물, 법악대물)이 있다. 이 산물은 물을 마시러 가던 송아지가 숲에서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 마을사람들이 주변을 넓게 파서 얻은 물이라는 전설이 구전된다. 산물 주변에 거욱대가 있어 거욱대물이라 부른다. 거욱대는 제주 섬에서만 풍수지리적 방법으로 세워진 상이다. 마을의 미곤방(未坤方, 서남방)이 비었을 때 마을 안에 질병이나 흉사가 들어온다고 하여 그 빈곳에 돌이나 나무로 따의로 형상을 깎아 세운 것으로 궂은 액을 막기 위해 세웠던 조형물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산물은 마을을 보호해 주는 신성한 물이다. 산물은 마을복지회관 왼쪽 길로 20m 쯤 떨어진 곳에 있으며, 원형보전이 잘된 몇 안 되는 산물 중 하나였는데, 비가림 시설 등 개수(2013년)하여 옛 정취가 많이 사라져 버려 애석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식수통과 수로는 그대로 놔둬서 천만 다행이다. 

이 산물은 물이 흐르는 쪽에 네모난 물통을 만들고 그 뒤로 빨래하는 장소와 채소 씻는 곳 등으로 구분해 놓았다. 마을에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광령2리 주민들의 식수로 활용되었으며, 이 물이 부족할 때는 정연의 물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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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욱대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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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욱대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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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욱대물 개수 전.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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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욱대물 개수 후.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자종이’라 하는 광령3리는 설촌시 확실치는 않으나 '자종'이란 사람이 삼형제가 목장 일을 보면서 만들었다는 산물인 '큰자종이물', '샛자종이물', '말젓자종이물' 등 3개의 산물이 있어 식수가 풍족했다고 한다. 

큰자종이물은 광령3리 사무소에서 250m 거리인 광령자종동길에 있으며 수질이 양호하고 용출량이 많아 자종동(自宗洞) 주민들이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했다, 이 산물은 마을 안 길가에 방치돼 오다가 2014년에 마을에서 개수하여 사각 식수통을 만들고 표석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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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자종이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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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자종이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셋자종이물은 큰자종이물에서 북쪽으로 240m 떨어져 있으며, 생활용수로 하귀 리 광동(廣洞) 주민들까지 사용하였던 물이다. ‘셋’은 ‘둘째’라는 제주어다. 이 산물 입구에는 치수기념비가 있으며, 원형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셋자종이물은 큰자종이물처럼 한울타리 안에 마시는 식수물과 야채를 씻거나 빨래하는 물인 생활용수를 구역을 나누어 사용하지 않는다. 담으로 칸을 나누어 마시는 물인 식수통은 돌담 안에 두고, 돌담 밖에는 야채를 씻거나 빨래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특징이 이채롭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라면 설촌과 관련된 마을의 유적인데 수풀로 뒤 덮어서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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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자종이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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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자종이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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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자종이물 빨래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말젯자종물은 마을 서북방에 위치해 있었으나 도로 확장으로 없어졌다. ‘말젯’은 ‘셋째’라는 제주어다. 대신에 배한이 저수지라고 하는 광령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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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령저수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광령저수지는 땅이 넓게 페인 움부리(굼부리)라고 하는 분지를 된 지대를 일제강점기 때 만든 소규모 저수지를 확장한 저수지다. 한라산 어승생의 물을 끌어와 배한이 드르(들판의 제주어)의 답에 벼를 경작했던 물로 연간 2000석의 쌀을 재배했다고 한다. 저수지 규모는 2만3000㎡에 5만1000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제주에서 세 번째로 큰 저수지다. 

저수지의 물을 농업용수로 농가에 무상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평상시는 물론 가뭄에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이유는 수질이 나빠 사용을 기피하여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수지의 수질 개선뿐만 아니라 활용도를 높일 방안을 시급히 찾아 섬의 귀한 생명수인 지하수를 보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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