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88) 가리가 커도 주젱이가 으뜸이다

* 눌 : 가리. 단(段)으로 묶은 곡식이나 땔나무 따위를 차곡차곡 쌓아 둔 큰 더미. 한데(노지)에 쌓아 둔 곡식 더미가 ‘노적가리’(露積)임.
* 주젱이 : 주지. 가리의 맨 위 꼭대기에 얹어 빗물이 스며들지 않게 덮어씌우는 것. 산도 짚이나 억새로 엮어 만든 삿갓 모양의 덮개를 말함.

 곡식을 벤 다음 비에 젖지 않게 밭에다 한데 모도록이 모아 쌓아 놓은 ‘가리’는 위 꼭대기를 잘 덮어 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큰비가 올 양이면 빗물이 속으로 스며들어 곡식알이 썩어 들기 때문이다. 애쓴 보람도 없이 수확한 곡식을 망치고 마니 이런 낭패가 없다. 빗물이 들지 않도록 막아 주는 게 ‘주젱이’다. 
  
옛날 농사짓는 사람이면 흔히 엮던 그리 크지 않은 것인데, 짚을 한데 뭉쳐 잡아 뒤틀고 꼬면서 만드는 과정이 힘들었다. 보기엔 쉬워도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단단한 목제 뚜껑 같은 걸 덮지 않았는데도 빗물이 한 방울도 스미지 않았으니 놀라운 손재주다. 지금은 곡식을 베면 바로 그 자리에서 기계로 탈곡하는 시대다. 주젱이 같은 게 필요 없는 편리함 속에 농사의 마무리가 이뤄진다. 하지만 옛날엔 주젱이가 중요한 몫을 했다. 눌로 눌었던 곡식 단을 하나씩 빼어내 홀태에서 홅아 집으로 날라다 멍석에 널어 말린 뒤 방앗간에 가 빻아야 양식이 됐다.

비단 농사일에 그치랴. 무슨 일이든 마무리같이 중요한 게 없다. 마무리가 잘 안되면 만사허탕이 되고 마니까. “눌이 커도 주젱이가 으뜸인다.” 옳은 말이다. 거둬 쌓아 놓은 낟가리가 크면 무엇 하나. 빗물이 들어 썩어 버리면 말짱 도로(徒勞) 아닌가.

일에는 반드시 핵심 요체가 있게 마련. 핵심을 놓치거나 부실하게 해선 안됨을 암시하고 있다. 제주의 선인들이 가난 속에 터득한 진리는 빛난다. 모든 일 처리에서 마무리가 중요한 것임을 되새겨라 힘주어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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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눌이 커도 주젱이가 으뜸인다. 1973년 제주 초가 모습. 추석 즈음 베어온 촐 더미, 눌(가리)가 집 인근에 쌓여있다. [편집자] 출처=제주학아카이브.

못지않게 귀띔하는 유사한 속담이 있다.

‘고래도 중수리가 잇어사 쓴다’ 
(맷돌도 중수리가 있어야 쓴다)

‘중수리’라 함은 맷돌 아래짝 한복판에 뾰족하게 나온 나뭇조각을 말한다. 이게 없으면 맷돌이 돌아가지 못한다. 맷돌은 위아래 두 개의 짝으로 돼 있는데, 아래 짝 한가운데는 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박아 놓은 중수리가 있고, 위짝 한가운데는 중수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그에 맞는 구멍이 나 있다. 그래야 맷돌질을 할 때, 위아래 짝이 아귀가 맞아 잘 돌아가게 된다. 중수리가 없으면 위 싹이 미끄러져 궤도를 이탈하므로 맷돌질이 안되는 것이다. 이치로 말하건대, 한마디로 ‘음양원리’다. 중수리는 그야말로 맷돌의 핵심이다.

맷돌에서, ‘눌’에 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는 ‘주젱이’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게 중수리다.

하나 더 있다.

‘구슬이 닷 말이라도 고망 엇이민 못 꿴다’
(구슬이 닷 말이라도 구멍이 없으면 못 꿴다)

익숙한 속담이다. 통용되는 우리 속담이 있지 않은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와 같은 맥락이다.
  
구슬이 다섯 말이 있으면 무엇에 쓰랴. 구멍이 나 있어야 실로 꿰어 제 구실을 할 게 아닌가. 그랬을 때 값어치가 드러남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구멍이 없어 꿸 수 없는 구슬은 닷 말 아닌, 더 많이 가지고 있어도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다.

비단, 구슬에 그치지 않고, 다른 것 또한 그것이 유용하게 쓰이려면 그럴 요건(구멍, 주젱이 같은)이 갖춰 있어야 한다는 이치를 일깨우고 있다. 요건이 돼 있지 않으면 제 기능을 전혀 못하니 아무런 가치도 없다.

얼마 전, 서울시가 ‘한복 입기 운동’을 발표한 적이 있다. 우리 전통문화를 보전하고 자랑하기 위한 운동으로 한복 차림으로 고궁과 미술관‧도서관을 찾는 시민들에게는 입장료를 할인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가 주관하는 국내외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한복 입는 것을 권장하고, 서울시 홍보대사들과 함께 한복입기 캠페인도 시작하게 될 것이라 했다. 하지만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는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유야무야로 끝났던 모양이다.

역시 ‘구술이 닷 말이라도 고망이 엇이민 못 꿴다.’ 맞는 말이다.

우리 한복이 날이 갈수록 퇴조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제대로 꿰기(차려입기)’가 복잡하다는 점이 꼽힌다. 또 제대도 가르쳐 주는 이도 없거니와 마땅히 배울 곳도 없다. 여고 시절 가정시간에 한복입기를 배운 지금의 어머니들조차 겨우 옷고름을 맬까 말까다. 그러니 남자 한복의 대님은?

매사, 순조롭게 성사되려면 핵심을 짚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행이 매끄럽고 그에 따라 성취도 있는 법이다.
  
‘눌이 커도 주젱이가 으뜸인다’, ‘고래도 중수리가 잇어사 쓴다’, ‘구슬이 닷 말이라도 고망이 엇이민 못 꿴다.’ 

표현을 달리 했을 뿐, 강조하는 바, 일깨우려는 의도는 결국 하나다. 매사에 요건이 먼저 갖춰 있어야 한다는 것, 핵심을 빠뜨려서는 근본적으로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겨들을 일이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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