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82) 평대리 벵디 산물

한라산을 우러러 보는 평화로운 벌판이란 뜻의 평대(坪岱)리는 ‘평평한 들판(둔덕)’이라는 의미로 ‘벵디(벵듸)’라 했다. 벵디는 ‘돌과 잡풀이 있는 넓은 들판, 혹은 널따란 벌판’을 뜻하는 제주어다. 이 마을은 좌청룡 둔지봉과 우백호 월랑봉이 지키는 마을로 알려져 있다.

제주 산물의 특징 중 하나는 제주어로 ‘곱가른다(구분하다란 뜻)’라고 하듯 마을마다 여자용과 남자용 산물로 나누어 썼다는 것이다. 이렇게 물을 구분하여 쓴 물을 제주 섬에서는 ’곱가른물‘이라 했다. 이처럼 남녀를 구분하여 사용한 건, 물은 그 성질에 맞게 써야만 효능이 있는 것처럼 인식하고 반드시 음양을 가리고 배치하여 사용해야만 물이 끊이지 않고 조화를 이루면서 영구히 사용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평대리도 예외는 아니기에 대수굴물이 여자전용의 물이라면, 남자전용의 물은 대수굴물 아래 바닷가 쪽에 있었으나 아쉽게도 지금은 사라져 버렸다. 이 산물은 사용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 경계석을 쌓고 상단은 식수로 하단은 빨래터로 이용했다. 지금은 목욕할 수 있도록 하나의 목욕통으로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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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수굴물 (1차 개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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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수굴물 (2차 개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바위굴에서 나는 산물인 대수굴물은 해안도로 개설로 제주어로 ‘궤’라 하는 굴은 없어지고 굴을 상징화하여 씌운 지붕을 갖춘 현대식 구조물로 개조했다. 그곳에서 빨래나 목욕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지금은 나무그늘막 시설로 재 개수되었다. 

대수굴물은 서동 해안가에 있는 산물로 제일 용출량이 많다고 하여 ‘대수(大水)’ 혹은 ‘큰물’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이 산물이 있는 동네를 대수동이라 하는데, 홍수가 나면 비자림 일대의 산간지대로부터 내려온 물은 지형 상 대수굴물이 있는 바다로 빠져 나가 대수동리라 부른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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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수굴물 내부 (1차 개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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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수굴물 내부 (2차 개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대수굴물에서 동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감수동 마을 끝 지점인 바다로 진입하는 길 어귀에 우물 형태의 감수굴통물이 있다. 이 산물은 인력으로 판 물통이지만 이 지역에서 물맛이 가장 좋다고 알려져, 옛날 사또가 오면 이 물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이 산물은 바다의 영향을 받지 않고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물로, 특히 제수나 정한수로 자정이 넘으면 이 물을 떠다가 할망당에 올려 소원을 빌었을 정도로 신성시 하고 귀하게 사용한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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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수굴물 (1차 개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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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수굴물 (2차 개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감수굴 입구에 있는 수덕비에는 숙종28년(1703년) 이형상 제주목사가 사찰을 폐쇄할 무렵, 이곳 절터왓 부군에서 유생 강씨가 모래땅에서 샘을 처음 발견하였다고 쓰여 있다. 

1940년 지금의 원통형으로 우물로 만들었으며, 감수굴은 조상의 혼이 담긴 마을의 문화유산으로 전승하기 위하여 2007년에 평대리민들이 수덕비를 세워 스레트 지붕을 씌우고 보전해 오고 있다. 우물을 보호하는 돌담은 예전 그대로 두고 나무지붕으로 교체해 시멘트 통에 돌을 붙여 재 단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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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수굴물 우물 (1차 개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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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수굴물 우물 (2차 개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감수굴물에서 해안도로 건너편 바닷가에는 쉰모살개라는 평대리 백사장 동쪽 끝 암반지대가 있다. 이곳의 감수굴코지(곶)에 감수갈물이 있다. 이 산물은 사각 형태의 조그마한 물통으로 목욕물이다. 

사각울타리인 콘크리트 벽에 제주자연석 타일을 붙인 형태로 개수되어 있다. ‘쉰모살’은 ‘쉬는 모래톱’이란 제주어로 바다로부터 떠밀려온 모래가 잠시 쉬었다가 다른 데로 옮아가는 모래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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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갈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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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수갈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평대리 백사장에서 해녀탈의장 방면인 ‘옷벗는여’에도 앞빌레물이 두 군데서 솟아난다. 앞빌레물은 빌레(너럭바위) 앞에 있는 물이란 뜻으로 바다 쪽은 알물, 빌레쪽은 윗물이라 한다. 알물은 원형돌담을 안에 있고 윗물은 자연적으로 생긴 소(沼)같은 원형의 빌레에서 솟아나고 있다. 식수통 시설이 없는 것으로 보아 목욕이나 빨래용으로 사용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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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빌레물(바다 쪽 알물, 빌레 쪽 윗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산물은 같은 지역에 있으면서도 대수굴물은 홍수라는 자연의 조건을 최대한 그대로 살려 지혜롭게 사용했었던 물이라면, 감수굴물은 자연을 극복하고 자연을 다스리며 물을 귀하게 사용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우물 산물이다. 

‘대수’나 ‘큰물’ 혹은 ‘왕물’ 등의 이름이 붙은 산물은 제주 섬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데, 이것은 자기 마을의 물이 크다는 자랑이라기보다 물로 인해 마을이 크게 되기를 염원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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