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87) 구좌읍 종달리 물징거와 엉물

종달(終達)이란 명칭은 ‘통달함을 마쳤다’란 뜻이다.

옛 이름은 종다리 또는 종다릿개. 이 마을의 상징인 지미(地尾)봉은 ‘땅의 끝’, ‘땅의 꼬리’라 하여 제주목의 끝인 마지막 마을로 ‘종달’이라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종달리의 지세는 한라산을 등진 삼백예순여덟 개의 오름들이 이어져 오다가, 마침내 그 헤아림을 멈추게 한 지미봉과 두산봉의 독수리가 죽지를 활짝 펴고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는 형상이다. 마치 유성이 빠른 속도로 낙하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제주 섬의 물혈을 끊은 호종단의 단맥 전설이 시발점이 되는 마을로, 호종단(호종달)이 물징거에서 물혈을 끊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을 찾아 바다로 내려와 마을을 다시 세웠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달리가 물을 찾기 힘든 동네 중 하나로, 여기서부터 동쪽으로는 산물이 없다고 말한다. 종달리 외에도 한동리 등 일부 마을에도 ‘물징거’란 지명이 있는데, 물징거는 물의 흔적을 나타내는 말이다. ‘홍수 시 물이 불어 흘러드는 큰물이 이곳을 통한다’는 의미로 추정된다.

물징거는 마을에서 4∼5km 올라간 중산간 들녘(시흥리 할렐루야 농장 지경)의 지명이다. 옛날에 중국에서 위대한 인물의 출생을 막기 위해 탐라의 지맥을 떠서 첫 물혈을 막았다는 호종단전설의 시발점이다. 호종단이 제주에 와서 이 지역에 당도하고 보니 수맥이 대단하고 마을 이름도 자기 이름과 같은 ‘종달’이라서 괘심하다고 여겨 수맥을 떼어버림으로서 물줄기가 끊겨 물징거란 지명이 생겼다. 

그러나 호종단도 종달리의 산물을 모두 단혈하지는 못하였다. 그 증거로 종달논길 청강사 입구를 보면 ‘엉덕’에서 나는 물이라는 데서 연유한 엉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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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바다로 터진목으로 내리는 엉물 동네의 귀한 식수로, 빨래를 하고 남녀가 공간을 나눠서 목욕을 했던 물이다. 

엉은 바위그늘을 의미하는 제주어다. 청강사 입구 좌측에 연못같이 보이는 곳에 아직도 바위그늘집인 궤가 남아 있고 거기서 여전히 산물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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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물 용출지점(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 일대는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이 있던 곳으로 종달 염전의 생산량은 도내 최고라고 한다. 염전은 한국전쟁 후에 수답 사업으로 사라지고 논을 조성하여 벼를 수확했으나, 지금은 염전 일부가 습지로 남아 갈대가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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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달 습지(옛 염전).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땅의 끝‘ 제주 섬의 마지막 마을이라는 종달리는 종점이 아니라 섬의 생명수를 찾기 위한 출발점으로써 호종단과 맞선 마을이다. 이 마을 종달리에서 부터 시작된 물혈 전설은 호종단이란 술사의 책략에 단호히 맞선 제주 선민들이 섬과 마을을 지키고, 나아가 생명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담겨있다.

대자연에 순응하면서 지혜롭게 섬의 생명으로써 물을 귀하게 사용하여 척박한 땅을 개척하고, 제주의 섬이 결코 고립된 불모의 땅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전설이다. 호종달의 물혈 전설은 물이 귀한 섬에서 물을 찾고 지키려는 숭고한 의지의 표현이기에 섬의 물은 곧 생명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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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징거 (은월봉 일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물징거

이 지명은 물이 있었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시흥리 할렐루야농장 들녘에 있는 지명이다. 물징거는 호종단이가 제주에서 종달리 해안가로 제주에 상륙한 후 첫 번째로 물혈을 끊고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전설로 인해 종달리 사람들이 중산간지대에서 물을 찾아 해안가로 이주하여 설촌할 수밖에 없었던 식수 해결의 어려움을 물혈 전설화하여 물의 귀중함을 말하고 있지만, 이 전설을 확대해 보면 척박한 제주 섬에서 물을 생명수와 같이 귀하게 쓰고 지켰어야 하는 선조들의 물 지킴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교훈으로 남긴 것이다.

이 지명은 제주의 물혈 전설의 시발점으로 제주산물을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곳으로 비롯 전설로 전해지고 있지만, 척박한 자연에 순응하면서 섬을 지킨 선민들이 지혜는 이제 제주 섬의 물은 ‘생명의 물’로 승화하여 귀하게 쓰고 지키는 것은 후손인 우리들의 몫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역사의 메시지를 갖고 있는 중요한 장소다. 

그러나 물징거는 아쉽게도 목장언저리에 방치되어 있다. 지금이라도 제주 섬의 생명수의 시발점이 되는 이곳을 복원하여 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며 귀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기를 학수고대 한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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