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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넓은 숲으로 가요

2018년 12월 08일(토) 02:35
현택훈 traceage@naver.com
[영화적 인간] ⑬ 미여지 뱅뒤(Strangers In Paradise), 변성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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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여지 뱅뒤’의 한 장면. 제공=변성진 감독. ⓒ제주의소리

병호 삼촌은 거의 말이 없었다. 나이가 마흔을 넘었는데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그때는 놀라웠다. 내가 서른아홉에 결혼한 것은 어쩌면 병호 삼촌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어렸을 때 마흔 넘어서 결혼 안 한 사람은 병호 삼촌이 유일했으니까. 

병호 삼촌은 감귤 수확 철에만 일을 했다. 감귤밭이나 선과장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평소에는 감귤창고에 기거해 살았다. 술이나 담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가 감귤이 노랗게 익기 시작하면 돌아오곤 했다.

그의 고향이나 그의 가족에 대해서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가끔씩 술에 취한 아버지를 부축해 우리집으로 오곤 했다. 예전에 아버지랑 함께 사료공장에 다닌 적이 있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중언부언을 해도 병호 삼촌은 웃으며 다 들어주었다. 

병호 삼촌은 저글링을 잘 했다. 감귤 세 개로 묘기를 부렸다. 나도 따라 해보았지만 감귤을 잡지 못하고 놓치기 일쑤였다. 병호 삼촌은 하모니카도 잘 불었다. 목소리는 잘 생각나지 않아도 그 하모니카 소리는 귓가에 남아있다. 내게 자전거를 처음으로 태워준 사람도 병호 삼촌이었다. 

쉰 살 무렵에 결혼을 했지만 결혼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여자가 집을 나가버린 뒤 안 마시던 술이 늘었다. 그 무렵 수십 년간 모아둔 돈을 어디에 투자했다가 모두 날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상점 주인이 술에 잔뜩 취한 병호 삼촌에게 술을 팔지 않으려고 하자 병호 삼촌이 상점 주인의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병호 삼촌이 변했다고 수군거렸다.

큰 태풍이 불었던 해였던 것 같다. 여느 때처럼 병호 삼촌은 훌쩍 어디론가 떠났다. 여느 때처럼 다시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는 그후 돌아오지 않았다. 감귤이 다 익고, 수확을 하고, 다시 하얀 꽃이 펴도 돌아오지 않았다. 트럭을 몰다가 교통사고가 나 숨을 거두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는 소문도 들었지만 모두 확실하지 않다.

산길을 걸을 때 문득 병호 삼촌이 떠오를 때가 있다. 만약에 그가 아직 살아있다면 깊은 산중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회와의 인연을 끊고 산속 깊은 곳에 은둔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혹은 죽창을 들고 송전탑을 향해 돌진하고 있지는 않을까. 다른 사람이 발견하면 더 깊고 넓은 곳으로 들어가는 병호 삼촌의 뒷모습이 언뜻 보일 것만 같다. 미여지 뱅뒤 너머 저 넓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이 가벼워 보인다.

‘영화적 인간’은 보통의 영화 리뷰와는 다르게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바탕으로 영화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코너입니다.
이 코너를 맡은 현택훈 시인은 지금까지 
지구 레코드남방큰돌고래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등의 시집을 냈습니다. 심야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며, 복권에 당첨되면 극장을 지을 계획입니다. 아직 복권에 당첨되지 않았기에 영화를 보기 위해 번호표를 뽑아 줄을 서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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