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15) 이호걸, 《눈물과 정치: <아리랑>에서 <하얀 거탑>까지, 대중문화로 탐구하는 감정의 한국학》, 따비, 2018.

8998439506_f.jpg
▲ 이호걸, 《눈물과 정치: <아리랑>에서 <하얀 거탑>까지, 대중문화로 탐구하는 감정의 한국학》, 따비, 2018. 출처=알라딘.

과장 좀 보태서 말하면, 10∼30대들의 채팅을 보면 글자 절반이 ‘ㅠㅠ’다. 기뻐서 ㅠㅠ, 슬퍼서 ㅠㅠ, 노여워서 ㅠㅠ, 미워서 ㅠㅠ, 억울해서 ㅠㅠ, 하는 일마다 안돼서 ㅠㅠ, 시험 그르쳐서 ㅠㅠ……. 이들의 채팅창엔 그야말로 탄식과 눈물이 마를 날 없다. 

이쯤하면 ‘ㅠㅠ’ 표현 정도는 현대 한국인들끼리 ‘눈물 흘리는 정황’임을 알아챌 것이다. 하지만 ‘롬곡’ ‘롬곡옾눞’은 어떤가? 이를 바로 알아차린 40대 이상 분들이 있다면, 나름 쿨하고 젊게 사는 사람 축에 끼겠다. 흥미롭게도 ‘롬곡’과 ‘롬곡옾눞’은 ‘눈물’과 ‘폭풍눈물’을 거꾸로 뒤집은 한국어 신조어라 한다. 신조어라기보다는 거의 암호에 가깝다. 젊은 세대들끼리 어른들 몰래 나름 울고 싶은 감정을 토로하는 암호 말이다. 

어쩌면 젊은이들에게 채팅창이야말로 “좋은 울음 터로다. 한바탕 울어 볼 만하구나!”하고 외칠 수 있는 현대판 호곡장(好哭場, 연암 박지원《열하일기》)이 아닐까 한다. 

사실 연암의 호곡장론(好哭場論)에서 말하는 곡(哭) 즉 울음은 갓난아기의 울음에 비유된다. 오랫동안 태속에 갇혀 지내다가 드넓은 세상으로 나오게 된 해방의 기쁨이 극에 달하여 참을 수 없는 통곡으로 터져 나온 그 울음 말이다. 또 연암은 상례(喪禮)를 치를 적에도 억지로 짜내는 울음이 아니라, 갓난아기의 가식 없는 울음을 본받아 한바탕 통곡할 것을 권한다. 그의 통곡은 이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처럼, 좁은 땅에서 벗어나 광대한 세계 문명의 중심지로 나아가려는 기쁨과 해방에 맞닿아 있다.

하지만 현실은 ‘한바탕 눈물’에 인색하다. 바야흐로 눈물의 고갈시대라고도 한다. 대신 채팅창을 통해서 ‘ㅠㅠ’, ‘롬곡’ ‘롬곡옾눞’ 같은 알쏭달쏭 기호들로 자신들의 한바탕 눈물과 비애를 폭풍 표출하고 있다. 혹자는 이 현상을 ‘헬조선’을 저류하는 감정의 주된 표상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이전 세대들이 당시 대중문화와 정치에 세뇌되어 과도하게 신파적으로 울고 울었다면, ‘ㅠㅠ’ 세대들은 그 신파적 눈물을 넘어서 SNS와 같은 쌍방향 매체를 통하여 ‘한바탕 눈물’을 제대로 흘리는 기술을 모색하느라 여념 없다. 나아가 ‘ㅠㅠ’ 세대들은 눈물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삶의 여러 국면에 고르게 분배할 줄 아는 감성을 ‘쿨하게(이성적으로) 체득하고 있다고도 본다. 우리에겐 낯설어 보이지만 이러한 새로운 감성이 공적 실천의 장에 발현되어 안착하고 있는 조짐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책, 이호걸의 《눈물과 정치》도 이와 맥을 함께 한다. 책 전반에 걸쳐 전환기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새로운 정치와 감정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부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리랑>에서 <하얀 거탑>까지, 대중문화로 탐구하는 감정의 한국학’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한국대중문화(소설, 영화, 드라마 등)를 들여다보며, 1부에서는 눈물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2부에서는 민족주의, 파시즘, 사회주의, 자유주의가 눈물과 관계 맺는 양상들을 다루고 있다. 책 제목 부터가 함축적이면서 책의 초점 또한 신선하다. 이를테면 인간 정신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 기존 연구서들은 대체로 지성(이성)에만 관심이 쏠려서 감정을 무시했다면, 이 책은 이성에 비해 폄하되던 감정을 복권시키려는 기획 속에 20세기 한국의 문화와 정치, 감정과 이데올로기를 탐구하고 있다. 

요약하면 이 책은 눈물이 정치와 결합하는 양상에 주목한다는 점에서는 정치적 비평이다. 시대적 맥락에 따라 ‘ㅠㅠ’ 세대 이전까지 기술한다는 점에서는 역사적 눈물비평이다. 나아가 눈물을 통한 한국인의 감성을 다루고 있는 점에서는 미학적 시대비평이기도 하다. 

우선, ‘눈물’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긍정적이다. 눈물은 다양한 이유로 흘리지만, 그 중 저자가 포착하는 눈물은 고통스러운 불균형 상태를 고통 없는 균형 상태로 돌리는 과정의 일부다. 이를 위해서는 고통을 견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균형 상태는 좀 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즉 고통의 원인을 해소하는 실천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34쪽) 그런 의미에서 눈물에는 그런 실천을 추동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실천 과정에서 흐르는 눈물에는 실천 자체가 초래한 고통에 따른 눈물과,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최초의 고통에 따른 눈물이 뒤섞여 있다. 두 고통 모두 실천이 완수될 때에야 완전히 해소될 수 있으므로, 눈물은 계속해서 실천을 추동한다. 이 고통, 눈물, 실천의 알고리즘은 위기를 완전히 해소하는 순간까지 반복될 것이다.”(34쪽) 

한국사회는 20세기에 들어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과 전쟁 그리고 군사독재, 민주화운동, 경제성장기인 1990년대 중반까지 그야말로 눈물이 철철 흘렀던 이른바 ‘눈물의 전성기’를 보냈다. 그러다가 저자에 따르면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고생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 한국인은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눈물도 더 이상 그렇게 흘려지지 않는다. 고통의 절대량이 줄었기 때문이다.”(298쪽) 이 논리로 본다면 한국사회는 국민적 눈물이 완전히 해소되기까지 100년이란 시간을 필요했다. 

한편, 무수한 눈물 속 실천의 긴 세월 동안, 이성을 잃고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군중도 탄생했음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이른바 눈물의 ‘정치적 신파(新派)’가 그것이다. ‘신파(新派)’는 저자에 따르면 20세기 눈물의 흐름과 한국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다. 항간에 ‘신파’란 “통속적인 예술에 대한 통속적인 비평 용어이자, 가장 통념적인 의미로는 억지 눈물 짜내기”(57쪽)로 통용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신파’란 “눈물의 새로운 흐름”(56쪽)이라 보고, 그 대표적인 예로 가족적 눈물을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신파적 눈물은 대체로 본인 가족의 고통으로 인해 흘린 것이었다. 이 틀에서 세계는 가족을 위협하는 세력과 가족을 지키는 세력 사이의 투쟁의 시공간이다. 그 세계에서는 “가족을 지키는 행위, 즉 가족주의적 실천만이 윤리적이며, 이는 비합리적 윤리 특유의 강력한 실천력을 가진다.”(59쪽) 그 예로 저자는 수많은 눈물들 중에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주인공 홍도의 눈물(여성윤리)과 영화 <아리랑>의 주인공 영진의 눈물(남성윤리), 두 눈물을 들고 있다. 저자는 이 두 눈물을 한국 근대 특유의 가족적 눈물이라는 점에서 ‘신파’로 규정한다. 

이후, 이와 같은 가족을 위한 눈물겨운 실천은 민족을 위한 실천으로 이어져 민족주의에 활용되었고, 그것은 박정희의 파시즘 및 조국 근대화의 역군으로 동참하게끔 감정적으로 자극했다. 파시즘의 억압을 극복하려는 사회주의운동의 동력 또한 가족적 눈물이었다. 이처럼 가족적 눈물은 근현대 한국에서 고통의 출구이자 정치적 동원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이용되었던 셈이다.     

반면, 1990년대 들면서 고생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눈물도 마르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설파한다. 그 예로 2007년 MBC 드라마 ‘하얀거탑’의 주인공 장준혁(김명민 분)과 최근 방영한 tvN의 드라마 ‘비밀의 숲’의 주인공 황시목 검사(조승우 분)를 들고 있다. 전자는 유명 대학병원 외과의사로, 그는 가난했던 과거를 뒤로한 채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후자는 어린 시절 뇌수술로 감정을 잃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눈물보다는 공평무사한 법의 집행이 더 중요함을 역설한다. 

“자본주의의 고도화는 필사적 투쟁보다는 냉철한 책략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 또한 눈물이 줄어든 이유였다. 1990년대는 정치경제적으로 자유주의가 재편, 강화되었던 시기다. 그와 함께 신파적 눈물로 대표되었던 자유주의적 흐름도 변화했다. 눈물보다 냉정함을, 가족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다른 유형의 감정이 대두하고 있었다.”(298쪽)

저자는 이러한 태도와 감정의 발로를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영향으로 본다. 이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국인들은 신자유주의자가 됐다. 21세기 한국인은 합리적으로 자신을 기획, 추진, 관리, 평가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적어도 강자는 쉽게 냉정함을 유지하고, 약자는 적어도 눈물을 삼킬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눈물의 감소는 절대빈곤에서 벗어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대한 한국인들의 전면적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302쪽)

그렇다고 모든 고통, 눈물, 실천의 역사적 바퀴가 멈췄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무한경쟁 환경 속에서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감정의 사회적 배치를 어떻게 교차시킬 것인지를 이 책은 주문하고 있다. 

이왕이면 모든 접속에 열려 있는 눈물의 배치, 그 배치로 새로운 눈물이 생성되고, 그 결과 다양한 눈물들이 공감과 연민으로 연대되길 희망한다. 이것은 앞으로 ‘ㅠㅠ’세대들이 가진 커다란 감성적 무기일 수도 있다. 그들의 눈물 ‘ㅠㅠ’, ‘롬곡’ ‘롬곡옾눞’이 더 이상 옹색한 사이버상의 단순한 농담의 아니라 “사회적 연대를 이끌어낼 힘”(38쪽), 나아가 현대판 호곡장(好哭場)을 진두지휘할 힘이길 내심 바래본다.

▷고영자(미학자·번역가)

(사) 제주기록문화연구소-하간 대표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에서 미학(예술학)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 취득.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소(EHESS) 연구원 역임.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대학원 강사(미학) 역임.

현재, 근·현대 문화매체론, 제주기록·제주미학론. 제주도 ‘형태기록’ 생성 및 변천사 등을 연구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크리스틴 조디스 저 《미얀마 산책》(2008년), 데이비드 네메스 저《제주 땅에 새겨진 신유가사상의 자취》(2012년), 《서양인들이 남긴 제주견문록(1845~1926)》(2013년), 《서양인들이 남긴 제주도 항해·탐사기(1787~1936)》(2014년), 《구한말 佛語·英語 문헌 속 제주도(1893~1913)》(2015년), 데이비드 네메스 저 《新제주순력담》(2016년), 韓東亀 편저 《제주도: 삼다의 통곡사》(2017년)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