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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를 만든 흥성하는 여자 산물

2018년 12월 12일(수) 14:52
고병련 news@jejusori.net
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88) 시흥리 큰물

성산읍 시흥리는 힘센 장사와 연관된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서북쪽에 위치한 두산봉(옛 이름 말미, 멀미, 각호봉)은 그 형상이 마치 범이 포효하는 모습이며, ‘성산에서 일출하면 비로소 일어난다’는 말처럼 풍수지리로 볼 때 성산일출봉의 맥이 마을로 뻗어가는 기운이다.

시흥리(始興里)는 정의현의 첫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글자 그대로 ‘비로소 흥성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옛부터 힘센 장사가 많이 나와 '심돌(力乭, 力石村)'이라고도 불렸는데, 일설에는 마을 곳곳에 '산돌(깊이 박혀 있어서 파낼 수 없는 돌)'이 산재해 있어서 자연 발생적으로 '심돌(力乭)'이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도 설촌의 중심이 되는 산물인 큰물이 있다. 이 산물은 크게 생수(生水)가 솟아나는 산물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마을 북쪽 시흥초등학교 앞 시흥상동로 68번 길에 위치해 있다. 상수도가 설치되기 전에는 이 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특히 여자들이 주로 사용하였다고 해서 ‘예조통(여자통의 제주어)’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 산물로 인해 큰물이 있는 곳이라서 큰물동네라 한다.

1. 큰물습지.JPG
▲ 큰물 습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큰물은 남자물과 여자물로 나누어 사용했었는데, 도로가 나고 수도가 보급되면서 남자들이 주로 목욕했던 물은 흔적도 없이 말라버리고 지금은 가시나무 등 잡목으로 뒤덮여 있다. 큰물 여자통이라 했던 산물은 시흥초교 길가 건너편 나무가 감싸듯 보호수가 되어 나무 밑에 소박하게 앉아 있는데, 주변에는 석창포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지금은 물통, 물팡, 돌담 모두 사라졌지만 아직도 산물이 솟아나고 이 일대는 생태계의 보고인 갈대습지로 변모되어 있다.

2. 큰물 여자통.JPG
▲ 큰물 여자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알고 보면 큰물, 소나이통(남자통), 예조통(여자통)은 모두 같은 곳에서 나는 물로서 돈물(단물)이라고도 한다. 이 일대의 물은 염분이 섞여 물맛이 짜고 수질이 안 좋은 편이지만, 반면에 여름에 차고 시원하며 겨울에 따뜻하다고 하여 돈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3. 큰물 남자통(멸실).JPG
▲ 큰물 남자통(멸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4. 멸실된 돈물 위치.JPG
▲ 멸실된 돈물 위치.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큰물과 관련하여 시흥리의 힘센 장사 전설이 전해온다. 

당시 한 부부가 대섬머세(멀믜[斗山峯] 뒤쪽)에 살면서 시흥리 입구에 있는 ‘큰물’이라는 샘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부부의 딸도 남과 같이 허벅으로 이 물을 져 날랐다. 그 길은 좁고 험한 길이었다. 어느 겨울, 설한풍이 몰아치는 날, 딸은 허벅에 물을 지고 그 길을 오르고 있었다. 몰아치는 눈발을 헤치며 가다 보니 내려오는 사슴 한 마리가 눈앞에 딱 마주쳤다. 그때는 인가가 많지 않은 때였으니, 한라산의 사슴들이 눈을 피해서 해변까지 흔히 내려왔다. 사슴은 사람을 보자 길을 꺾어 도망가려 했다. 딸은 허벅을 진 채 훌쩍 내닫더니, 뛰는 사슴을 앞질러 가서 두 뿔을 잡고 홱 돌았다. 사슴이 벌렁 쓰러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사슴을 잡아 둘러메고 들어가니 부부도 딸의 힘에 놀랐다는 전설이다. 

이처럼 마을이 힘이 세다고 전해지는 것은 전설처럼 큰물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여자통으로 사용했던 큰물은 원래 모습인 고목나무 밑에 좌정하여 자연으로 돌아갔지만 갈대습지를 벗 삼아 여전히 큰물동네를 지키고 있다.

# 고병련(高柄鍊)

▲ 고병련 교수. ⓒ제주의소리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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