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90) 온평리 열은이 산물

온평리의 옛 이름은 '열운이(열온이, 여을은, 영혼포)'다. 옛 이름으로 색시를 맞이하여 결혼한 마을이란 뜻이다. 

색시를 맞이했다는 것은 제주개벽신화인 삼성신화에서 나오는 벽랑국 세 공주를 말한다. 온평리에는 벽랑국 세 공주 이야기가 전해지는 ‘혼인지’와 세 공주를 맞이했다는 황루알이 온평포구 바닷가에 있다.

이처럼 유서 깊은 섬의 신화에 나오는 제주 여성의 시조가 도착한 온평리 마을 어귀에 인공적으로 판 내통(川桶)이라는 우물이 있다. 내통은 온평리 중동 마을에 있는 우물이다. ‘비가 오면 내가 찬다’는 냇가 옆에 있는 우물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웃(윗)동네와 알(아래)동네 중간에 위치해 있다.

1. 내통우물.JPG
▲ 내통우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예전 이곳에 조그만 내(川)가 있었는데, 지금은 매립되어 도로로 사용되면서 사라져 버렸다. 일제강점기 초기만 해도 인력을 이용하여 만든 10m 깊이 우물이 냇가에 있었다. 우물 내부는 사각형태의 돌로 석축한 후 시멘트로 덧칠한 구조다. 

웃동네 사람들은 ‘흰죽’이라는 봉천수를, 알동네 사람들은 펄못을 이용했는데, 가물어 두 물을 이용하지 못할 때 이 우물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2. 내통우물 내부.png
▲ 내통우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바닷가에 나는 산물인 가르메물, 부개늪물, 몰성개물 등은 밀물때 물에 잠겨 이용에 어려움이 많고, 물이 해수와 섞여 염분기가 많다. 그래서 마을 안 내륙 쪽으로 와서 우물을 만들었고, 새 우물은 수량이 풍부하고 밀물에 관계없이 아무리 많이 써도 마르지 않고 물맛도 좋아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 식수로 애용되었다고 한다. 이 우물은 예전에 두레박을 이용하여 물허벅에 물을 길어서 먹었던 식수로, 

지금은 지붕을 씌우고 정비하여 마을의 특화사업인 물허벅체험장으로 활용한다. 다만, 관리가 소홀하여 일부 시설이 훼손되어 있어서 아쉬움이 크다. 

이 우물에서 해안도로인 환해장성로에 가면 열은이개 온평포구에 남자물인 열은이갯물과 여자물인 가르메물을 재정비하여 ‘농촌건강장수마을 신비스러운 물 공원’ 쉼터를 조성해 놓았다.

3. 산물공원 쉼터.JPG
▲ 산물공원 쉼터.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여자용 물은 쉼터 바깥쪽인 동측에 있는 가르메물이다. 물맛이 달아 ‘도는물’이라고도 했다. 

이 산물은 일부 염분이 섞여 있어 바닷물의 염분을 가라앉혀 담수를 만들어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밀물 시작될 때에 담수의 수량이 풍부해지면 물허벅을 지고 줄 서서 기다리다가 길어다 사용한 물이다. 

4. 갈흐메물(여자용).JPG
▲ 가르메물(여자용).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과거 이곳 물통은 원형이었으나 새로 정비하면서 불규칙한 사각형 모양으로 만들고 옛 원형 물통이 있던 곳을 구분하기 위해 산물을 둘로 나누어 길게 돌담을 쌓아 보전되고 있다. 지금도 이 산물을 자세히 들어다 보면 옛 돌담 일부와 식수통, 그리고 물팡 일부가 남아 있다. 

쉼터 안쪽에 있는 원형 돌담으로 둘러싼 열은이갯물은 남자 물로 목욕을 하거나 가축들을 먹었던 물이다. 몽성개물(몰씬개물, 몰성개물)이라고도 한다. ‘몰’은 몰망이라 한 모자반을 의미하며, ‘씬’은 선(立)을, ‘개’는 포구를 의미하는 말로 모자반이 많이 나는 포구의 물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5. 열은이갯물(남자용).JPG
▲ 열은이갯물(남자용).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한편으로는 벽랑국 공주를 영접하기 위해 삼을라의 사신이 말을 타고 올라오면서 디딘 말 발자국이 남아 있는 데, 바닷가의 물결이 출렁대는 평평한 바위에 말 발자국처럼 패어 있는 곳의 물이라 해서 '몰성개물'로도 불린다. 

해안도로가 개설되면서 마을에서 이곳에 쉼터를 조성했지만 산물은 정체되고 녹조현상까지 나타나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