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제주형 도시재생, 길을 묻다] (24) 대구 북성로 깨우는 훌라(HOOLA)
일제강점기 대구 최초의 공단으로 시작해 산업화 시기 호황을 누렸던 북성로 일대. 전성기를 품고 있는 공구상과 철공소는 이젠 쇠락한 원도심의 상징이 됐다. 200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도시재생 사업들의 난제는 이 기술생태계와 미래세대를 잇는 연결고리를 찾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다섯 청년이 뭉친 문화예술 기획팀 ‘훌라(HOOLA)’의 행보는 그래서 특별하다. 도시탐사, 지역자원발굴, 놀이 콘텐츠 제작 실험, 사운드큐레이팅, 비주얼디자인 등 유쾌하게 접근한다. 도시의 야생성을 깨우고 싶다는 생각에 슬로건을 ‘도시야생보호구역’이라고 정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북성로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모여 놀다가 만들어진 팀’이라고 소개한다. 팀명 자체가 함께 모여 자주하던 카드게임의 이름이다. 사회적경제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혹은 우연히 친구 집에 놀러갔다 낚여서, 이 곳이 신기해보여서 등 각자의 이유로 대구 원도심에 청년 다섯이 모였다.
처음 이들은 ‘업사이클링 밴드’로 존재감을 알렸다. 북성로 공구골목에서 공수한 PVC파이프, 알루미늄관 등 각종 재료를 재활용해 악기를 만들었다. 대구 중구청이 2016년 개최한 북성로 기술생태계 주민협업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제작에 도움을 준 북성로 사장님들이 함께 출연한 감각적인 뮤직비디오는 SNS에서 화제가 됐다.
평가절하된, 혹은 낡은 것처럼 보였던 자원들이 가장 트렌디한 퍼포먼스로 재탄생했다. ‘놀이적 재생’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고, 공연에 초청을 받는 등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어졌다.
기술장인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하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책을 펴내니 가족들로부터 좋은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행정의 언어로 담을 수 없는 다양한 실험들은 이제 변화의 흐름을 만들었다.
청년들이 직접 지역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자신만의 콘텐츠로 풀어내는 프로젝트 ‘대구청년 도시탐사대’, 자립기술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을 위한 안내서 ‘호모파베르’, 북성로에서 가족과 함께 소리를 찾고 만들어보는 ‘사운즈 오브 시티’ 등 활동은 훌라의 지향점을 잘 드러낸다.
“대구엔 재미가 없어”, “서울로 가야해”라는 젊은이들에게 “대구 원도심이 이렇게 힙하고 쿨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셈이다. 훌라는 누구보다 놀이가 자존감을 높이는 방식이라는 걸 잘 이해하고 있었다.
관은 뒤로 물러서고 지역청년들의 자발성이 중심이 된 이들의 움직임은 최근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본격화한 제주에도 시사점이 크다.
훌라의 프로모터 나제현(29)씨는 “놀거리를 통해 많은 청년들이 북성로를 접했으면 한다”며 “즐거움으로 북성로를 만나고, 이 물결이 이 곳의 기술장인들과 어우러졌으면 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될 순 없기 때문에 조금씩, 최대한 즐겁게 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