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다. 거침없이 상승 곡선만 그리던 제주 관광산업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다. 2017년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금한령(禁韓令)과 유커(游客)의 급감은 신호탄이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로 많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강원도로 몰렸다. 제주관광이 국내·외 변수에 흔들리는 모양새다. 다시금 제주관광의 질적 성장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2019년 기해년(己亥年)을 맞아 제주관광의 허와 실, 그리고 나아가야할 방향 등을 세차례에 걸쳐 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 관광1번지 제주 허와 실] ① 관광객 1500만명 시대 '제주관광'의 허(虛)

‘대한민국 관광1번지, 제주’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2005년 관광객 첫 500만명 돌파, 그로부터 8년만인 2013년 관광객 1000만명의 ‘메가 투어리즘 시대’를 연 제주다. 다시 불과 3년만인 2016년에 1500만명 관광객을 돌파할 만큼 제주는 무섭도록 내달려 왔다. 그러나 그것은 양적 성장일 뿐, 지속가능한 미래관광 키워드인 ‘질적 성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한민국 관광산업의 메카’라는 타이틀 아래 연거푸 터지는 샴페인에 취했던 제주다. 그러나 오늘 제주관광은 여기저기서 이상 신호가 울린다. 양적 성장에만 매몰됐던 제주관광은 최근 대부분 관광지표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제주관광의 ‘좋은 시절’은 끝났다는 혹평도 나온다.  

혹자는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한다. 소위 '사드 보복'으로 직격탄을 맞자 눈에 드러나지 않게 곪았던 관광산업의 부실한 구조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 대대적인 수술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지적이다.

▲ 제주의 자연을 만끽하는 관광객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지금도 힘든데 더 힘들어진다?

최근 제주관광업계 곳곳에서 ‘힘들다’는 울음과 곡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앞으로는 더 힘들어 진다는 목소리에도 이구동성이다. 양적성장에 매몰된 제주관광 생태계가 위험에 빠졌다는데 이견이 없다. 

제주시 연동에서 80실 규모의 비즈니스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K씨(63)는 “유커들이 끊긴 이후 빈방이 넘치고 있는데, 최근 수년간 숙박업소는 더 많아졌다.”며 “물론 내국인 관광객들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지만 그 마저도 많이 줄고 있고, 무엇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쳐나 가격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수익이 악화되는 것은 뻔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호남지방통계청 제주사무소가 12월 발간한 ‘통계로 본 제주의 어제와 오늘’에 따르면 2008년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582만2017명(외국인 관광객 54만516명 포함). 

이후 제주를 찾은 연간관광객은 해마다 평균 100만명 이상 늘었다. 

2013년에 제주를 찾은 연간관광객은 1085만1265명(외국인 관광객 233만3848명 포함)으로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열었다. 2016년에는 무려 1585만2980명(외국인 관광객 360만3021명)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전 세계적으로 관광객 1000만명이 넘는 도시가 흔한 사례는 아니다. 연간 관광객 1000만명을 상징하는 '메가 투어리즘(mega tourism)' 시대를 연지 단 3년만에 다시 1500만명을 돌파했다. 외형적으로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셈이다. 특히 내국인 관광객은 꾸준히 상승곡선만 그렸다. 

본격적인 이상 기류는 2017년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금한령(禁韓令) 이후다. 단체 중국인관광객을 뜻하는 유커가 급격히 줄자 제주를 찾는 연간관광객은 2017년 1475만명 수준에 머물렀다. 제주관광 상승세가 10년만에 꺾였다. 외국인 관광객이 전년보다 240만명 넘게 감소한 것이 컸다. 대부분 중국인관광객들이었다.

물론 2015년에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발병의 영향으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었던 경우도 있다. 당시 제주는 외국인 관광객이 262만명 수준으로 전년(약 332만명)보다 130만명 정도 감소한 바 있지만, 내국인 관광객이 200만명 넘게 증가하면서 빈자리를 채웠다. 

▲ 2017년 3월 중국의 금한령으로 중국인 관광객 발길이 끊긴 제주시 연동 누웨모루거리(옛 바오젠거리). 누웨모루거리는 당초 인센티브관광으로 찾아오는 중국인관광객들의 소속 회사 이름을 따 ‘바오젠거리’로 명명되어 오다 지난해 4월 ‘누웨모루거리’라는 제주어로 거리 명칭이 바뀌었다. 누웨모루는 이곳 지형이 누에고치 모양을 닮은데서 차용한 것으로 누에를 뜻하는 제주어 ‘누웨’와 언덕을 뜻하는 제주어 ‘모루’의 합성어다. 한때 중국인관광객들로 넘쳐났던 곳이다.
◇ 제주관광 정점 찍었다?  

제주도관광협회에 따르면 2018년 11월말까지 제주를 찾은 내국인 관광객은 1211만2549명, 외국인 관광객은 111만520명으로 총 1322만3069명으로 집계됐다. 

2016년 11월까지 누계 제주 관광객은 1467만7540명(외국인 337만6969명 포함), 2017년은 11월까지 1364만6239명(외국인 116만7382명 포함) 등이다.  

2018년 연간 관광객이 2017년 수준(약 1475만명)을 가까스로 채울 수 있을지 우려하는 상황이다. 3년간 내리 하향세를 면치 못하는 모습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관광 관련 사업체의 5.8%가 제주에 포진해 있다. 특히 제주 관광숙박업소 전국 점유율은 21%에 달한다. 제주경제 규모가 전국 1%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제주관광이 국내 관광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자명하다. 

세계적인 신용평가사인 무디스(Moody’s) 계열사인 한국신용평가의 2013년 분석에 따르면 제주 관광숙박시설 125곳 가동률은 78.2%를 기록했다. ‘가격 경쟁력이 수반되는 적정 객실 가동률’은 70%. 2013년 제주 연간관광객 1085만명을 기록했다. 숙박시설 가동률의 경우 각 업체에서 구체적인 자료 제공을 꺼려해 2013년 자료가 마지막 통계다.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2018년 도내 관광숙박시설 6곳이 경영난을 면치 못해 폐업했다. 그럼에도 객실수는 꾸준히 늘었다. 게스트하우스 등 농어촌민박 등이 급증한 이유가 컸다. 

제주도 관계자는 “제주 입도 관광객은 점차 줄고 있는데, 숙박업소는 지금도 계속 늘고 있다. 특히 민박 객실수 증가폭이 크다”고 말했다. 

2018년 11월30일 기준 도내 숙박시설 객실수는 총 7만1884실에 달한다. △관광숙박업소 415곳 3만2170실 △휴양펜션업 98곳 866실 △일반숙박업 653곳 2만556실 △생활숙박업 136곳 5645실 △농어촌민박 3875곳 1만1814실 △유스호스텔 18곳 833실 등이다. 

4년 전과 비교해 객실수는 2014년(객실수 4만1277실)보다 무려 74% 증가한 반면, 관광객 증가는 10% 수준에 불과했다. 방은 7.4개 늘어나는 동안 관광객은 1명만 늘어난 셈이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수는 2015~2016년 정점을 찍었고, 이미 많은 숙박업소가 적정 객실 가동률을 채우지 못한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 한국은행 제주지역 관광객의 지역경제 파급효과 분석 그래프.
▲ 한국은행 제주지역 관광객의 지역경제 파급효과 분석 그래프.
◇ 제주관광 진짜 위기는 ‘부가가치의 하락’

제주 관광 산업 부가가치 관련 통계는 많은 시사점을 안긴다. 이미 2015년부터 관광 산업 부가가치 감소세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제주본부는 2018년 7월 ‘제주지역 관광객의 지역경제 파급효과 분석’ 자료를 발표하면서 2010년 이후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관광 산업은 ‘외형적’으로 높은 성장을 지속했다고 판단했다. 

외형적인 성장이라는 평가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제주 관광 수입은 △2010년 2조4000억원 △2011년 2조9000억원 △ 2012년 3조2000억원 △2013년 3조7000억원 △2014년 4조2000억원 △2015년 4조7000억원 △2016년 5조5000억원 △2017년 5조6000억원 규모로 계속 성장했다. 

부가가치는 다르다. 

제주를 찾은 관광객 1인당 부가가치는 △2010년 10만1000원 △2011년 10만7000원 △2012년 11만 6000원 △2013년 12만2000원 △2014년 12만2000원 등으로 꾸준히 올랐다. 

그러다 △2015년 11만9000원 △2016년 10만9000원 △2017년 11만2000원으로 감소했다. 

제주 관광산업 부가가치율은 △2013년 35.6%로 최고점을 찍은 뒤 △2014년 35.5% △2015년 34.8%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 △2016년 31.3% △2017년 29.5%로 2010년(32.5%) 이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관광객이 많이 찾았다 해서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2014년 전년보다 15.7%나 성장하는 등 상승 곡선만 그리던 전년대비 제주 관광산업 성장률도 2017년 무려 6.1%나 감소했다. 

관광 산업 종사자 임금도 열악하다. 2017년 제주 건설업계 종사자 평균 임금이 3940만원 수준이었지만, 관광산업 종사자 평균 임금은 1680만원 수준에 불과했다. 제조업 종사자들의 평균 임금도 2420만원 수준이었다. 

한국은행은 제주 관광수입이 증가했지만, 최근 관광 부가가치율이 줄어드는 점 등을 감안하면 제주 관광의 질적 성장이 약화됐다고 판단했다. 온라인 시장에서 할인판매 급증과 동종업체간 과당 경쟁 등으로 업체마다 마진율이 떨어져 경영여건이 악화됐다는 얘기다. 
▲ 한국은행 제주지역 관광객의 지역경제 파급효과 분석 그래프.
▲ 한국은행 제주지역 관광객의 지역경제 파급효과 분석 그래프.

한국은행은 과도한 인센티브 지급은 관광산업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적용할 수 있어 가격 중심 마케팅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품 개발이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예비사회적기업인 김종현 (유)섬이다 대표도 제주 관광 산업에 대해 한국은행과 비슷한 의견을 냈다. (유)섬이다는 제주시 용담해안도로에서 제주 식재료 퓨전음식을 파는 문화카페 ‘닐모리동동’과 한림읍 성이시돌목장 인근에 ‘우유부단’이라는 로컬푸드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유)섬이다가 직영하는 닐모리동동은 ‘한라산 빙수’ 등 제주 식재료로 제주를 상징한 다양한 퓨전음식으로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또 한림읍 성이시돌목장에서 생산된 원유로 유제품을 생산하는 ‘우유부단’이라는 17평 남짓 카페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제주 대표 6차산업화 사례다. 두 곳 모두 제주를 담았고, 제주를 닮은 푸드가 주 메뉴다.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제주의 색과 이야기를 입혀 성공을 거두고 있다. 

김종현 대표는 “최근까지도 도시 삶에 지친 사람들이 휴식을 위해 제주를 찾기 시작했다. 올레길뿐만 아니라 제주 곳곳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했다. 사람들에게 여행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일상의 휴식’ 개념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인 관광객수는 국제적 외교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하더라도 내국인 관광객수가 주춤하는 상황은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라며 “제주 관광 산업은 수년간 소위 돈 되는 업종에 쏠렸다. 스토리텔링 없이 수많은 민박과 카페 등이 들어섰다”고 꼬집었다. 

제주관광에 종사하는 수많은 업체들의 비슷비슷한 이야기, 차별성 없는 같은 먹거리와 같은 볼거리 등은 당연히 과당 경쟁에 갇힌다.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제주를 '지루하다'고 느끼게 한다. 스토리텔링이 없다보니 가격 경쟁을 하고, 새로움을 주기 위해 잦은 리모델링 등 소모적 비용이 새어나가고 있다. 

김 대표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몇 개의 밥그릇에 경쟁하지 말고 무한한 밥그릇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질적 성장을 말로만 외치는 제주관광에 던진 현장의 쓴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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