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16) 패터슨(Paterson), 짐 자무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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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패터슨’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어렸을 때 꿈 중 하나는 버스 기사였다. 버스를 타고 먼 곳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노선을 상상했다. 사람들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다. 각자의 목적지에 가기까지 사람들은 차창 밖을 보거나 생각에 잠긴다. 옆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얘기를 듣기도 한다. 나는 버스에 탄 사람들의 분위기를 보고서 음악을 선곡해 튼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라디오를 틀기 위해 주파수를 맞춘다. 

지금은 버스 기사는 되지 못했지만 버스 기사가 같은 노선을 운행하듯 나 역시 아침부터 밤까지 거의 매일 같은 길을 다닌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을 먹고, 양치질을 한다. 집에서 나와 사무실까지 걸어간다. 컴퓨터를 켜고, 음악 사이트를 로그인한다. 내가 듣고 싶은 음악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은 거의 일치할 때가 많다. 일주일에 한 편 정도 시를 쓴다. 월요일엔 메모를 하고, 화요일엔 한 문장 쓰고, 수요일엔 잊어버리고, 목요일에 다시 생각해 초고를 완성한다. 금요일에 잃어버리거나 폐지함에 집어넣는다. 토요일엔 노트를 하나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일요일엔 늦잠을 잔다. 

맥주병을 깨는 일은 이제 아주 드물다. 맥주병을 깨는 사람 옆에 있다가 그 파편이 손등에 튀었던 것도 스무 해 전이다. 시인 정지용의 두 번째 시집 제목은 ‘백록담’이다. 시인 정지용은 어느 해에 제주도에 왔을까. 정지용은 이제 시집 책 속에만 머문다. 나 역시 제주도에서 제주도를 쓴다. 오늘은 금요일. 폐지함에 구겨진 종이가 있으면 다행이다. 집에 개가 없으니 시를 쓴 노트가 갈기갈기 찢길 일은 없으니 다행인 걸까.

어쩌면 패터슨은 시인이 아니라 시적화자일 수 있다. 시 속에서 시를 쓰고 있지만 시인이라고 할 수 없는 말하는이. 화자는 오늘도 시 속에서 산다. 오랫동안 시인의 페르소나가 되어 살아간다. 그러면서 내가 시인인가, 하는 생각에 빠진다. 누군가 시를 발표하라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시인이 죽으면 시인이 아니라 화자가 된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도 그렇고, 패터슨도 그렇다. 시인은 이 화자를 쌍둥이로 여긴다. 어느 날 화자는 시인에게 물을 것이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죠?

‘영화적 인간’은 보통의 영화 리뷰와는 다르게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바탕으로 영화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코너입니다. 
이 코너를 맡은 현택훈 시인은 지금까지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등의 시집을 냈습니다. 심야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며, 복권에 당첨되면 극장을 지을 계획입니다. 아직 복권에 당첨되지 않았기에 영화를 보기 위해 번호표를 뽑아 줄을 서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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