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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1968년 반공법 위반 사건 51년만에 무죄 선고...김 회장, 재심 앞두고 심장마비 작고

일명 만년필 사건으로 간첩에 내몰린 제주 1세대 농업경영인이 51년 만에 억울함을 풀었다. 재심 신청 4년만에 무죄 선고가 났지만 당사자는 선고 19일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제주지방법원 형사2단독 황미정 판사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故 김태주(1938~2019) 제주특산 회장의 재심사건에서 18일 무죄를 선고했다.

김 회장은 제주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 제대후 고향에서 전공인 농업에 집중했다. 1967년에는 농업기술연수생으로 선발 돼 일본에서 선진 농업기술을 배웠다.

현지 친척의 도움을 받고 교육을 마친 김 회장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사촌 형제들은 수고했다며 일본국 대판시 학견교 역전에서 만년필 세 자루를 건넸다.

김 회장은 귀국후 만년필이 고장나자 이를 수리소에 맡겼다. 문제는 여기서 터졌다. 만년필 안쪽에 적힌 ‘CHULLIMA’(천리마)와 ‘조선 청진’ 글을 보고 수리공이 경찰에 신고했다.

천리마는 1950년대 북한에서 일어난 노력 동원과 사상 개조 운동이다. 조선 청진은 북한 함경북도의 지명이다.

당시 경찰은 김 회장이 북한이 천리마운동의 성공을 찬양하기 위해 제작한 선전용 만년필을 수수했다며 반공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했다.

김 회장은 1968년 7월31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 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출소 이후에는 농사에 전념하며 지역 농업발전에 힘써왔다. 생전 마지막 한으로 남은 간첩 혐의를 벗기 위해 김 회장은 2015년 2월26일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2018년 9월17일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졌지만 검찰이 즉시항고하면서 재심 첫 재판은 그해 12월21일에야 열렸다.

해를 넘겨 법원은 1월18일 무죄를 선고했지만 김 회장은 이미 고인이 된 뒤였다. 김 회장은 1심 선고를 앞두고 2018년 12월30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사촌형제가 재일조총련계 대판부원이라는 점을 알지 못했고 반국가단체나 공산계열의 이익을 위해 만연필을 받았다는 점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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