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98) 일과리 장수원산물

일과리는 제주에서 유일하게 우마로 갯벌을 갈아 소금을 만든 곳이다. 여기서 생산된 일염(日鹽)은 뜻 그대로 건조 응결된 태양의 열매이다. 마을사람들은 '鹽'자를 열매를 뜻하는 '외, 웨'로 부르고 있으며, 마을 이름도 열매 '果'를 붙여서 일과리인 것이다.

일과리의 염전은 장수원늪, 큰늪, 쇠늪 등 해안가의 모래가 섞인 뻘밭에서 생산되었다. 조금(조석 간만의 차가 가장 적을 때)에 ‘검은 모래’를 긁어모아 바닷물을 뿌리고 써레(흙덩이를 잘게 부수고 바닥을 판판하게 고르는 농기구)로 염전을 갈아 말린 후, 다시 염전갈이를 반복하여 소금모래를 모아 통에 넣고 바닷물을 부어 곤물(간물의 제주어로 소금기가 썩인 물을 의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곤물을 허벅에 담아 집으로 운반해 헛간 속 가마에 붓고 불을 지펴 소금을 만든다. 끝으로 ‘불치통’(재거름을 보관하는 공간)에 올려 간수를 제거하는 과정을 거쳐 일염이라는 태양의 열매를 얻었다고 한다.

일과리 장수원 바닷가는 목욕탕을 연상시키는 움푹 팬 물웅덩이가 있고 이 웅덩이 안에는 항상 맑은 물이 고여 옛부터 구늪통이라 할 정도로 용암빌레(너럭바위의 제주어)로 형성된 곳이다. 대표적인 소금산지로 여기에는 소금을 만들 때 긴요하게 사용한 산물이 여러 군데서 솟고 있어 이들 산물을 장수원물이라 통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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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원 산물(앞 가메물1, 중간 가메물2, 뒤 윗동당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장수원은 생수가 나오는 곳이 수십 군데가 되어서 장수원이라 칭하고 상측에는 웃동당물, 하측에는 알아기물 등 여러 가지 명칭이 있다. 이 산물들은 간조에서 만조로 변할 때 담수가 풍부하게 솟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밀물 때는 웃동당물만 남게 되어 주민들이 식수는 물론 제사 때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장수원에 가서 물을 떠다가 제사를 지내던 물이다.

지금 장수원에는 일부 파손된 콘크리트 사각형태의 건물에 장수원물을 대표하는 웃동당물이 있다. 이 산물에서 직선거리 50m 정도 떨어진 바다 쪽에 물이 솟는 양이 작다고 해서 알아기물이 있다. 알아기물은 아무런 꾸밈없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용출하고 있다. 아쉽게도 윗동당물의 물통에는 산물 대신 돌만 가득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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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동당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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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로 채워진 윗동당물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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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아기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웃동당물에서 서측 하부 70m 지점에 가매물이 두 군데서 솟고 있는데, 가매물은 원래 자연상태의 구늪통이다. 최근에 원형의 돌담 형태의 물통으로 만들어 졌다. 그러나 산물 터 돌담 일부가 파도의 영향으로 허물어져 있다. 

마을사람들은 가매물이라 부르는 의미는 정확히 모르지만 ‘가매’는 ‘가메’의 변음으로 머리의 쌍가마와 같이 산물이 나란히 있어서 가매물이라 부른다고도 하고, 구늪통이 가마솥과 같이 둥글다고 하여 가매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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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매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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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매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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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매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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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매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예전에 인근 전분공장에서도 장수원 윗동당물을 사용했을 정도로 많은 량의 물이 솟구쳤었는데, 지금은 물은 사라졌다고 할 만큼 수세가 좋지 않다. 이유는 인근 상부지역의 지하수 개발과 해안도로 개설 등이라고 주민들은 말한다. 산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윗동당물 보호시설이 방치되다 시피하고 바다 경관에 어울리지 않은 채 흉물화 되고 있어서 몹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내버려두지 말고 산물을 상징할 수 있는 벽화를 그리거나 여기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자그마한 배려의 쉼팡 등으로 재구성하여 하는 노력으로 제주를 살리는 생명수로써 거듭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바닷가에 있는 산물들은 파도의 영향으로 돌담이 허물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선조들은 바닷가의 물을 자연 그대로 이용하든지 아니면 돌로 물통을 만들 경우 가급적 산물터를 적게 하고 돌담을 낮게 만드는 제주식 돌담쌓기 방식으로 만들었다. 공기가 잘 빠져 나가듯 듬성듬성 쌓아 물 빠짐을 좋게 하여 담이 허물어지는 것을 최대한 억제 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백중을 전후 하여 목욕을 할 수 있도록 한시적인 기간 동안 돌담을 쌓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파도로 허물어져 훼손된 돌담은 주기적으로 보수하였다.

바다와 태양이 해변에서 만나 소금 알갱이라는 곡식 알곡과 같은 태양의 열매가 맺는 장수원 조간대. 여기저기서 솟는 산물들은 염전의 물뿐만 아니라 조간대 습지를 만드는 물로써 사람들만이 독차지했던 물이 아닌 습지의 모든 생명들이 생명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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