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훈의 과학이야기] 2. 장수식품 (78) 인스턴트 라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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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라면. 시장할 때, 간단히 요기하고 싶을 때 야외에서 이용하는 간편식의 대명사다. 냄비에서 끓여 먹기도 하고, 끓은 물을 붓기만 해도 즉석에서 먹을 수 있고, 아이나 어른이나 누구라도 어디에서라도 쉽게 만들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 음식인가! 우리들의 식생활에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음식이다. 그러나 그 탄생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 라면이 등장한 것은 1963년이다. 당시 삼양식품공업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는데 이 때만 해도 쌀의 절대량이 부족해 배고파하는 사람이 많은 시절이었다. 정부에서는 식량증산이 주요정책의 하나였는데, 수확량이 많은 벼품종 개발을 독려하고 보리쌀 혼식 또는 분식을 권장하기도 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 부응해 나타난 것이 라면이다. 제품이 시장에 나오면서 지금까지 먹던 국수와는 다른 맛에 라면은 빠르게 팔려나갔다. 필자도 그 때 한 봉지에 30원하던 라면을 연탄위에서 끓여 먹었던 기억이 있다.

라면은 원래 중국음식이다. 한자로는 ‘拉麵(랍면)’이라고 쓴다. 만드는 방법은 국수와 비슷하지만 국물은 멸치를 쓰지 않고, 돼지뼈를 고아 양념과 고명을 얹어서 먹는다. 중국식 라면을 인스턴트 라면으로 개발한 이는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다. 그는 이전에 여러 가지 사업을 경영했지만 실패하다가 이전부터 생각해오던 밀가루식 개발에 손대게 되었다.

개발 연구를 시작할 때 목표는 △오래 먹어도 물리지 않을 것 △보존성이 있을 것 △조리에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값이 쌀 것 △안전하고 위생적일 것 등 다섯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제품이었다.

자택정원에 간이연구실을 만들어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1년간 고생한 끝에 성공해 ‘니신(日淸)라멘’이라는 상표로 판매를 개시했는데, 곧 물품이 모자라서 고민할 정도로 잘 팔렸다고 한다.

개발과정에서 제일 애를 먹었던 것은 밀가루 반죽을 제면기에 넣으면 면줄기가 부서져 나왔던 것이다. 면줄기가 적당한 강도와 점도가 되는 것은 수분량과 밀가루에 함유된 글루텐함량이 연관됐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또 어려웠던 점은 면줄기의 건조과정이다. 인스턴트화하기 위해서는 면줄기를 건조시켜야 하는데, 면줄기를 햇볕에 건조시킨 후 뜨거운 물을 부으면 면의 쫄깃함도 맛도 좋지 않았던 것이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면줄기를 증기로 찐 후(전분의 알파화), 기름에 튀긴 후 건조시켰더니 건조도 빠르고 맛도 개선됐다. 기름에 튀기면 면의 수분이 빠져나오기 때문에 빨리 건조된 것이다. 

현재 사용하는 인스턴트라면 제조공정은 다음과 같다. ①밀가루와 물, 간수를 섞어서 반죽을 만든다 ②반죽을 압연(壓延)롤(roll)에 넣어서 널빤지 모양을 만든다 ③제면기에 넣어서 면줄기를 만든다 ④면줄기를 증기로 찐다(이 과정에서 밀가루의 전분이 알파화한다) ⑤줄기면을 절단하고 둥근 금속용기에 넣어 성형(成型)한다 ⑥기름에 튀긴다 ⑦건조 ⑧냉각 ⑩조미료와 함께 포장 

일본에서 인스턴트 라면이 개발돼 잘 팔린다는 소식을 들은 삼양식품공업 사장 전인중 씨는 일본에 건너가 니신식품의 안도 모모후쿠 사장에게 우리나라의 식량사정을 설명하고 인스턴트 라면의 제조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 같으면 로열티를 내지 않으면 기술이전을 바랄 수 없지만, 그 때는 로열티 없이 기술이전을 해주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생산되는 수 많은 종류의 라면 뒤에 이런 역사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두면 좋겠다.

윤창훈 명예교수

1947년생인 윤 교수는 1969년 동국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일본 동경대학 대학원에서 농업생명과학전공으로 농학박사를 취득했다. 1982년부터 2012년 8월까지 제주대 식품영양학과에서 교수직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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