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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년 제주의병항쟁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김석윤의 손자인 김동호씨. 24일 제주의병항쟁기념탑이 세워진 사라봉 모충사 경내에서 그를 만났다. ⓒ제주의소리 좌용철 기자
[창간 15주년 기획-인터뷰] 제주의병 핵심참모 독립운동가 김석윤의 손자 김동호씨

“유대인들은 2천년 넘게 나라 없이 전세계를 떠돌았지만, 역사를 잊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건국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독립운동을 한 이름 없는 의병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제주 최초의 항일 독립운동으로 평가 받고 있는 ‘제주의병항쟁’. 3.1절을 앞둔 24일 제주의병항쟁의 주역 중 한 명인 김석윤 지사의 손자인 김동호씨를 모충사 의병항쟁기념탑에서 만났다.

그의 조부 김석윤은 근대 제주불교의 중흥에 앞장선 승려이자, 제주의병항쟁의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의병장 고사훈 등과 함께 제주성 밖 광양동에 대장간을 차려 무기를 제조하고, 황사평에서 비밀리에 군사 훈련을 추진했다.

특히 집안 재력이 좋아 의병활동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는데 큰 힘이 됐다. 경서에 능해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라 은혜에 대한 충정이요, 부모에 대한 효도이다”라고 시작되는 격문을 초안했다.

그가 초안한 격문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라 은혜에 대한 충정이요, 부모에 대한 효도이다.
만약 자식으로써 부모의 곤궁함을 구하지 못하면 불효요, 나라의 위급함을 걱정하여 나서지 않는다면 불충이 되는데, 이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지금 교활한 왜적이 병자년 이래 감언이설과 강압으로 침략의 마수를 뻗치더니, 을사조약으로 나라의 주권을 강탈하려 하고 있다.
이제 우리 눈앞에는 왜적의 무리가 강산을 짓밟고 있는데 그대로 두면 이 강토를 송두리째 삼킬 것이요.
우리들은 왜적의 노예가 될 터이니 이 어찌 앉아서 보고만 있으랴.
오호라 천도가 무심하리오 경향 각지의 충의로운 지사들은 국권 수호를 위해 궐기하였다.
우리 제주 백성들도 충성을 다하여 은혜에 보답하고 자손만대에 조상의 무덤을 지키게 할 때가 왔도다.
피끓는 충의로운 지사는 죽음으로써 왜적을 격퇴해 나라의 국운을 회복하고 성은에 도답할 자는 의성을 같이 불러 삼천리 금수강산을 지키는 데 삶과 죽음을 같이 한다면, 이보다 다행하고, 이보다 더한 충효가 어디 있으랴. 피끓는 충효지사들이여, 팔뚝을 걷어 붙이고 총궐기하라!

하지만 거사일(3월3일)을 앞두고 기밀이 누설돼 의병장 고사훈 등 2명이 일본경찰에 붙잡혀 총살되면서 거사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김석윤도 일경에 체포돼 내란죄로 기소돼 10년 유배형을 선고받지만, 각계의 구명 노력 등에 힘있어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게 된다.

항일운동의 공로로 1977년 독립유공 대통령 표창을,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씨는 먼저 일제의 침략에 대항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일어난 의병항쟁이 제주에서도 일어난 사실을 후대들이 잘 모르고 있는 점을 안타까워 했다.

초등교장 출신으로, 광복회가 하는 항일운동 교육을 위해 가끔 교단에 선다는 그는 “강사료며 교재를 광복회에서 전부 부담한다. 학교에서는 신청만 하면 되는데 1년에 많아야 7~8개교 정도만 신청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이 2천년간 나라 없이 떠돌다가 (이스라엘을) 건국할 수 있었던 건 역사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항일운동뿐 아니라 우리의 역사가 후세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역사교육은 더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병뿐 아니라 제주 항일운동 역사에 대한 학술연구가 너무 미진하다”며 “학술대회나 세미나, 논문발표대회를 활성화하는 등 연구활동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현재 그는 ‘석성사상실천연구회’라는 개인연구소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석성’은 조부 김석윤의 호다.

김씨는 “항일독립운동이 점점 빛을 바래는 것 같아 아쉽다”며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 개인 연구소를 만들었지만, 이 역시 재정문제로 어렵다. 보훈당국에서 연구활동 지원, 장학사업 등을 위한 기금 마련을 고민해봤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유공자 결정과 관련해서는 “창의자 10명 중 4명만 유공자로 선정됐다. 후손이 없어 신청 자체를 못하거나 공적이 있는데도 입증이 충분치 않아 공훈을 인정받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 고령이 된 후손 대신 보훈당국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유공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수권자 문제에 대해서도 “애국장은 손자, 애족장은 자식까지만 되는데, 결혼하지 않은 애국지사들은 후손 자체가 없다. 이 경우 수권자를 방계까지 확대하는 등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호적법이 폐지되면서 수권자 선정을 놓고 후손들 사이에 분란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독립유공자 예우를 위한 법률 정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령 유공자의 손자녀가 열명인 경우, 대표 수권자 한 명에게만 보상금이 지급되는 식이다. 국회에 수급권자를 확대하거나, 유공자후손 인정범위를 확대하는 등의 독립유공자 예우법안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됐지만, 임기만료와 함께 자동폐기를 반복하는 실정이다.

김씨는 3.1운동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추진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씨는 “지난해 모 학술대회에서 전반적인 항일운동과 관련해 3.1운동사를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국가보훈처가 올해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한 만큼 반드시 결실을 맺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건국절 논란과 관련해서는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해야한다는 것은 아무리 따져 봐도 아니다. 항일운동의 역사적 사실에 비춰 1919년 4월11일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봐야 하는 게 맞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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