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5주년 기획-특구전성시대 허와 실] ⓵ 관광-특별도-역외금융-말-전기차-블록체인
 
제주는 가히 특구(特區) 세상이다.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로 특구가 난무한다. 마치 특구로 지정만 되면 제주가 확 달라질 것이라는 착각 마저 들게한다. 물론 인프라가 빈약한 제주에서 특구는 미래를 향한 일종의 몸부림일 수 있다. 하지만 대개는 용두사미로 끝나기 일쑤였다. [제주의소리]가 창간 15주년을 맞아 각종 특구의 허와 실을 점검해 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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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해 가장 입에 자주 올린 단어 중 하나는 '블록체인'이었다.

자신의 공약에 '블록체인 특구'가 있었지만 당시엔 선거 쟁점도 되지 않았고, 언론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원 지사는 당선 이후 꾸준하게 블록체인을 이슈화했다. 지난해 8월 정부 혁신성장 장관회의에선 블록체인 특구 지정을 공식 건의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과 시도지사 간담회에서도 원 지사는 문 대통령에게 블록체인 특구 지정을 요청했다.
 
원 지사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이른바 원맨쇼를 하면서 블록체인 특구 지정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2019년 들어 원 지사의 입에서 블록체인 특구 얘기는 듣기 힘들어졌다. 대신 경기가 어려워진 탓인지 '민생경제' 얘기가 부쩍 늘었다.
 
물론, 제주도를 전기차와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하는 내용의 제4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은 지난 1월29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특구 제도는 정부나 자치단체가 특정 분야의 산업을 집중 육성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려는 것이다.
 
1990년대부터 제주에서는 수많은 특구 또는 테스트베드화(化)가 시도됐다. 지금은 그 수를 헤아리기 조차 어렵다. 가히 '특구 전성시대'다. 
 
가장 먼저 정부에서 지정한 것은 관광특구. 정부는 1994년 8월31일자로 제주도와 경주, 설악산, 유성구, 해운대 등 5개 지역을 관광특구로 지정.고시했다.
 
관광특구는, 1992년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이후 3개 단지 20개 관광지구가 지정되는 등 제주도 개발에 대한 제도적 토대가 마련되자 부속 도서를 제외한 제주도 전 지역을 망라하게 됐다. 
 
폐해도 많았지만, 제주도개발특별법과 관광특구는 제주를 '국내 관광 1번지'로 성장시키는데 일정한 역할을 한 게 사실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사람.상품.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꾀한다며 국제자유도시를 추진했다. 이 때 제주도개발특별법을 대체하는 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 제정됐다. 
 
정부에선 2001년 11월 제주국제자유도시기본계획을 확정했다. 2003년 제주도는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소위 '홍가포르'(홍콩+싱가포르)를 롤모델로 한 국제자유도시 추진계획이다. 
 
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에 따라 제주도는 한동안 금융특구라고 할 수 있는 '역외금융센터'를 추진했다. 
 
관련 용역에서는 제주가 역외금융센터의 최적지로 제시됐지만, 서울과 부산에 밀리면서 은근슬쩍 사라졌다. 애초부터 꿈 같은 얘기였다는 평가가 뒤늦게 나왔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지방분권을 선도한다며 '제주특별자치도'를 추진했다. 
 
2005년 국무총리 산하에 특별자치도추진단을 두고, 2006년 7월 자치입법, 조직, 인사, 재정 등 전 분야에서 제주도가 획기적인 자치권을 갖는 특별자치도를 출범시켰다.
 
여기에 관광과 교육, 의료, 1차산업에 첨단산업을 4+1 핵심산업으로 집중 육성하는 전략을 세웠다.
 
연방제 수준의 자치가 실현되는 국제자유도시를 비전으로 내세웠지만,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풀뿌리 기초자치단체가 폐지되고, 모든 권한이 도지사에게 집중되면서 '제왕적 도지사'라는 말이 나왔다.
 
핵심 산업 분야에선 영어교육도시가 탄생했지만,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이 따라붙었고, 의료 분야에서는 영리병원 논란이 13년째 지속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의 테스트베드로 제주가 선택됐다.
 
스마트그리드는 기존의 전력망에 ICT 첨단기술을 접목해 공급자와 소비자가 양방향으로 실시간 전력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 차세대 전력망이다.
 
당시 정부와 제주도는 스마트그리드가 조선과 휴대폰, 반도체에 이은 우리나라 차세대 먹거리 산업이 될 녹색성장시대의 신성장동력이라고 떠들었다.
 
실제로 정부는 제주시 구좌읍 일대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로 지정했고, 여기에 SK, KT, LG전자, 현대중공업, 한전, 포스코 등 국내 유수 대기업들이 뛰어들었다.
 
세계 최대, 최첨단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를 구축하고, 관련기술의 상용화.수출산업화를 촉진한다며 실증단지 홍보관까지 마련하며 열을 올렸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스마트그리드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2010년 이후 각종 특구는 도지사들의 단골 공약이었다. 우근민 도정에선 크루즈특구, 말산업특구에 관심을 쏟았다.  
 
말산업특구는 약 100km의 에코힐링 마로를 조성해 말(馬)과 체험을 연계한 테마마을을 운영하고, 말 전문 동물병원 운영, 사육기반 확충 등으로 생산·육성의 거점기지화하는 내용이다.
 
'국내 1호'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박근혜 정부가 무너지면서 있는 듯 없는 듯 도민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참굴비 특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2014년 원희룡 도정에서는 '2030 카본 프리 아일랜드'(탄소없는 섬)를 위한 전기차 특구 조성을 4년 내내 주창했다.
 
민선 7기 들어서는 블록체인 특구로 중심이 이동했다.  
 
전기차 특구도 여전히 유효한 과업이었지만, 원 도정 들어 적극 추진한 것은 사실상 전기차 보급 뿐이었다. 
 
산업적인 접근은 '폐 배터리 재활용센터' 유치, KAIST와 전기차 자율주행 연구 등 미미했다. 
 
블록체인 특구는 뜬금없이 등장했다. 블록체인이 제주의 미래 유망산업이 맞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도민사회 공론화가 부족했다. 
 
블록체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공무원은 1명 뿐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고태호 제주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제주에서 수많은 특구나 특례, 테스트베드가 추진됐지만 일회성 지원 밖에 없었다"며 "결국 시범사업으로 그치면서 어느것 하나 산업화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지원이나 제도개선도 필요하지만, 제주도가 지속적으로 이끌어나갈 역량이 있는 분야의 특구나 특례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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