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우의 일요편지] 노숙인이 파는 대중문화잡지 ‘빅이슈’

  <제주의소리>가 ‘강종우의 일요일에 띠우는 편지’ 연재를 시작합니다. 강종우의 일요일 편지는 제주참여환경연대 회원들에게 매주 일요일마다 자신의 생각의 속자락을 보여온 편지입니다. 지난 1월부터 시작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강종우님은 10년동안 제주수눌음지역자활센터 실장을 맡아 일하고 있습니다. 로컬푸드와 지역통화, 그리고 지역재단을 통한 ‘서로 나누고 함께 보살피는’ 지역공동체의 재조직화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가 보는 세상, 그의 눈으로 보는 우리주변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바랍니다. /편집자주

   
  빅이슈(Big Issue)라는 잡지를 아시나요?
 이 잡지는 특별합니다. 거리의 노숙인들이 직접 들고 다니면서 판매합니다. 과연 노숙인에게 잡지를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의문이 앞섭니다. 하지만 빅이슈는 단순히 노숙인들의 일상을 소개하는 게 아닙니다. 소셜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는 대중문화 잡지입니다. 현재 데이비드 베컴과 폴 메카트니, 비욘세 같은 유명인들이 무료로 표지 모델을 하기도 하고, 해리포터의 작가 K. 롤링이 자신의 글을 무료로 기부하는 등 저명인사들의 재능기부로 주목받는 있는 잡지가 바로 빅이슈입니다. 1991년 영국 런던에서 창간된 이래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등 세계 28개국에서 100만 독자를 확보하였으며, 주간 발행부수가 약 16만부에 달합니다.

  "Working, Not Begging." - 구걸이 아닙니다. 일하는 중입니다.
 빅이슈는 노숙인들이 거리에서 구걸(Begging)을 하지 않고 노동(Working)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자 만들었습니다. 노숙인들의 자활에는 사회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스스로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구걸이 아니라 잡지판매라는 일을 통해서 노동의 가치를 깨닫고, 경제적인 마인드를 심고, 사회적 훈련도 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 중 하나인 빅이슈는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이런 빅이슈의 활동으로 지금까지 약 5천여 명의 노숙인들이 자활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노숙인이 파는 잡지, 스트리트 페이퍼(street paper). 이거야말로 말 그대로 ‘빅 이슈’ 아닙니까?

 반가운 소식이 들립니다. 노숙인이 판매하는 대중문화잡지 '빅이슈'가 마침내 한국에도 선보입니다. ‘빅이슈 코리아’. 지난 4월 서울시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받아 7월 창간을 앞두고 있답니다. 빅이슈코리아는 일하기를 희망하는 재능 있는 청년들이 만들고 노숙인들에게 잡지 판매권을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빅이슈처럼 노숙인 잡지가 우리나라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아직도 헤쳐 나가야 할 길은 많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소녀시대나 비, 아니면 김연아나 박지성 같은 아이돌 스타가 표지 모델을 장식하고, 이외수나 공지영 같은 작가들이 글을 쓰는 빅이슈코리아를 거리에서 만나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것도 노숙인한테서요. 그 날이 기다려집니다.
 
 '공원에서 뒹굴던 노숙인'에서 '공원관리자'로...

   
  가마가사키(釜ケ崎) 아이린 지구 - 오사카 니시나리(西成) 총인구 15만명 가운데 1/3이상이 보호대상자이거나 노숙인인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슬럼가. 여기엔 '일자리 찾기의 another way‘를 표방하는 사회적 기업 ’나이스(NICE)‘가 있습니다.

 나이스의 일자리 만들기 프로젝트, '엘 챌린지'. 2002년 도시공원 지정관리제 시행에 따라 조인트벤처 공원협동관리공동체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곤 공원 두 곳에서 대담하게 노숙인을 고용했습니다. 엊그제만 해도 공원에서 어슬렁거리던 바로 그 노숙인들을 말입니다. 욕이나 먹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 일텐데... 아무 소용없는 짓을 굳이 왜?

 하지만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원에서 뒹굴며 잠에 취해 시민들마저 꺼려했던 바로 그 노숙인들이, 도심공원을 생태적으로 관리하며 어린이체험학습도 진행하는 교육강사로 탈바꿈했습니다. 시민들도 자연스레 가족을 데리고 공원으로 산책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나이스의 바람대로 사람에게, 자연에게 부드럽고 친숙한 공원으로 다시 태어난 겁니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대안으로, 공원에서 시민들이 불결함과 위협을 느끼는 노숙인을 고용해서 오히려 노숙인의 일자리를 만들고 안심하고 안전한 공원을 가꾼다는 생각은 성패를 떠나 그 자체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발상의 전환이며, 말 그대로 another way라 할 만합니다.
 그리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슬럼가에 마을꽃집(花屋さん Bon)을 열기도 합니다. 거기에다 노숙인이 득실대는 사방 곳곳을 ‘꽃이 가득한 거리’로 만들겠다는 공공디자인프로젝트 지역화단(Community Garden)까지. 기발한 착상과 상상력이 넘쳐납니다.
 
 자활(自活)을 화두로 가난한 사람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보겠다며 동분서주하던 제게, 사회적 起業 나이스의 커뮤니티비지니스 사업 하나하나가 해를 넘긴 지금도 가슴속에 또렷합니다.
 
노숙인 마이크로크레딧, 단 한 건의 신용사고도 없다?!

   
 벌써 2년이 지나갑니다. 원주 ‘갈거리사랑촌’을 찾았던 때가. 
 갈거리사랑촌. 무료급식을 하고, 노숙인들로 구성된 고물상조합도 있고, 공동거주을 생각하는 그야말로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의 힘을 십시일반 모아 공동체를 이룬 곳입니다. 거기서 저를 온통 사로잡았던 건 다름 아닌, 노숙인협동조합!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마이크로크레딧(소액대출)사업을 펼쳐 왔습니다. 더구나 놀라운 건 그동안 대출사고가 단 한 번도 없었답니다?! 노숙인들이 협동조합을 만들다니, 게다가 단 한건의 신용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니, 이게 믿겨지십니까?

 미심쩍은 생각에 이래저래 꼬치꼬치 묻던 제게, 당일치기 일당에서 하루 먹고 지낼 것만 빼고 다 협동조합에 맡긴다는 사무국장의 목소리엔 뿌듯함이 묻어납니다. 덕분에 노숙생활을 벗고 3천만원이 넘는 전세를 얻은 사람도 생겨나고, 누구는 노숙생활을 접은 뒤 대학을 나와 지역사회단체의 실무자로 일하기도 한답니다.

 노숙인협동조합. 우리에겐 이미 잃어버린 지 오래인, 그래서 더욱 애타게 그리워하던 신뢰의 공동체를 끄트머리나마 붙들 수 있었습니다. 바로 원주 갈거리에서 말입니다. 무엇보다 공동체야말로 가장 강력한 사회안전망이자, 자립과 자치, 자활의 유일한 길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노숙인 …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막장’

   
 20대 80의 사회. ‘우리 안의 또 하나의 분단’이 걱정스럽습니다. 무한경쟁의 정글에선 낙오된 이들이 생겨납니다. 자꾸만 그들을 길거리로 내몹니다. 그리곤 꼴보기 싫다며 '미화'하려만 듭니다. 사실 빈곤은 개인의 윤리나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 아니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마찬가지로 노숙인 역시 사회적 빈곤의 상징으로, 더 이상 눈감고 외면할 순 없습니다. 몇 해 전 제주에서 노숙인이 ‘있다’ ‘없다’는 진실게임을 보면서 씁쓸함을 감출 길 없었습니다. 행정당국만 나무란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노숙인… 그들은 그 누구에게도 기댈 곳 없이 Houseless(집 없는)에서 Homeless(가족 없는)로, 그리고 결국은 Hopeless(희망 없는)로 내몰린 정글의 낙오자들입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발톱에 상처 입은 사람들입니다. 사회적 빈곤의 막장에서, 아닌 말로 ‘버려진 이웃’이나 마찬가집니다.

 한 친구의 전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펀드매니저로 잘 나가다 어쩐 일인지 타지에서 PC방을 전전한다던... 걱정 말라며 새롭게 잘 살아보겠노라던 녀석. 어쩌면 알콜중독이던 저 또한 주위의 배려와 도움으로 10년 전 단주(斷酒)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여느 노숙인들처럼 거리를 떠돌아 다녔을지 모를 일입니다. 거리에서 삶을 이어가는 노숙인들도 얼마 전엔 바로 우리의 이웃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두가 부정하고 싶겠지만, ‘노숙’이란 부지불식간에 닥칠지 모르는 운명처럼 바로 자신 혹은 가까이 있는 이웃의 문제입니다.

 "오늘 보기에 두려워 보이고, 험상궂고, 지저분하고, 냄새난다는 이유로 멀리하면 우리 사회 한 쪽에 병든 자들이 늘 자리할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안전하다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열린 마음으로 대한다면 그들에게 돌파구가 생길 겁니다." 노숙인 문제를 바로보자던 구세군사관님... 그들이 비바람 걱정 없이, 눈치 안보고, 한 끼나마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따스한 공간 하나 바라던 당신의 간절한 소망,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그런 소박한 행복을 누릴 자격이 마땅히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역광장에선 길거리급식을 실내급식으로 바꾼 지 한 달이 넘었답니다. 아마 ‘따스한 채움터’라지요. 하지만 이 곳 제주 탑동에선, '버려진 이웃’들이 오늘도 여전히 길거리 한 귀퉁이에서 우리를 등진 채 ‘그들만의 만찬’으로 한 끼를 떼웁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네가 있기에 가능하다.
내가 너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밤마다
똑같은 별빛을 바라보고 느끼는
가슴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해 ‘나’를 내어 줄 수 있을 때,
인간은 아름다웠으며 여전히 아름답다.
                                                                         - 체게바라

      2010년 6월 13일 한낮에, 연동집에서 보냅니다.

                                                                                     강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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