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정유년(丁酉年). 붉은 닭의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올 한해 도민들은 평안하게 지나가길 기원했지만 어김없이 한국사회와 제주사회엔 격랑이 일었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그 중에는 희소식도 있었지만, 갈등과 대립, 논란과 좌절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다가오는 황금개띠 무술년(戊戌年)은 무사안녕의 해가 되길 기원하면서 <제주의소리>가 2017년 제주사회를 관통한 ‘7대 키워드’를 인물 중심으로 정리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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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본 2017 키워드] ⑦ 고교생 희생 부른 현장실습제도, 故 이민호 군

학교에서는 모범적인 학생이었고 잘 웃는 친구였다. 부모님에겐 효심 깊은 아들이었고 일터에서는 누구보다 성실한 일꾼이었다. 사려가 깊었기에, 부지런했기에 먼저 세상을 떠나야 했던, 참으로 기 막힌 현실이었다.

<제주의소리>가 정유년 한 해를 정리하면서 기획한 '인물로 본 2017 키워드'의 마지막 인물은 현장실습 중 안전사고로 숨진 고(故) 이민호 군이다. 

민호의 희생은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청소년 노동인권에 경종을 울렸고, 더 나아가 현장실습 제도의 근간을 뜯어 고친 전환점을 마련했다.

가뜩이나 다사다난했던 2017년을 정리할 무렵, 18살 고교생이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등 진 비보는 제주사회를 숙연하게 했고, 또 분노하게 했다. 

지난 11월 9일 제주도내 음료제조공장에서 안전사고를 당한 민호 군은 열흘간의 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 우연히 발생한 사고가 아닌, 철저하게 어그러진 시스템이 빚은 비극이었다.

민호의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면 더욱 먹먹한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성실하게 업무에 임했던 민호는 함께 파견된 현장실습생 6명 중 가장 먼저 근로계약을 맺었다. 또래의 여느 학생들과는 달리 투정이나 불평 한 번 없이 묵묵히 업무에 임했고, 부당한 초과근무도 너끈히 해냈다. 누구에게나 인정 받는 일꾼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민호에게는 더욱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다. 민호는 음료병이 적재기에 쌓인 뒤 비닐 포장이 완료되면 지게차로 옮기는 일을 도맡았는데, 전임 직원은 민호에게 업무를 가르쳐주고 5일 후에 퇴사했다. 엉겁결에 민호가 공정의 책임자가 됐던 것이다. 

상식적이라면 전임 직원의 빈 자리는 새롭게 채용된 직원으로 충당해야 했지만, 회사는 민호에게 그 임무를 떠넘겨버렸다.

일찍이 능력을 인정 받은 것이 비수가 돼 돌아올 줄 그 누가 상상했을까. '성실하라, 부지런하라'고 가르친 이 사회는 민호를 지켜주지 못했다.

애초에 직업계 특성화고등학교 진학을 택했던 것도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서였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졌다. 민호를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고 빈소를 지킨 아버지는 아들의 빈자리를 회상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아이가 왜 산업고등학교를 갔는데. 고등학교 들어갈 때 내가 몸이 아파서 수익이 없었어요. 그래서 3년 동안 기숙사비 무료에다가 장학금 혜택까지 준다니까 본인이 선택해서 간 거에요." 무덤덤하게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부모님을 달랬던 민호. 장학금은 그대로 집안 살림에 보탠 의젓한 아들이었다. 

민호의 아버지는 떨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애끓는 부정(父情)은 괜히 자신에게 탓을 돌렸다.

무책임한 사회 구조로 인한 민호의 희생은 결코 무의미하진 않았다. '촛불'의 힘을 잊지 않은 시민들을 뭉치게 했고, 민호와 같은 처지에 있던 학생들을 일으켰다.

때늦은 감이 있었지만 제도권의 움직임도 구체화 됐다.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청소년들의 인권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고, 뒤늦게 문제가 발견된 현장실습 제도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적어도 앞으로 '제2의 민호'가 발생해선 안된다는 책임의식을 갖게 했다.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 놓일 청소년들에게 똑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이 사회와 남겨진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민호는 먼저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그의 희생은 또 다른 누군가의 버팀목이 될 것이다. 

"졸업후 앞길을 스스로 개척하여 부모님에게 효도하겠다고 다짐하던 내 친구 민호야.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미래를 꿈꿨던 내친구 민호야. 너에게 하고픈말 하고픈 약속들이 너무 많은데 너를 안타깝게 떠나보내야 하는 이 순간이 믿기지 않지만, 이제 너를 이 세상보다 더 따뜻하고 더 포근한 세상으로 보내려고 한다. 더 이상 슬프지 않고 차갑지 않은 세상에서 다시 볼 날을 기약하면서 내 사랑하는 친구, 민호야 잘가라"

-故 이민호 군 영결식, 친구 강진호 군의 고별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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