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이어진 폭설로 주저앉은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의 한 비닐하우스. ⓒ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기고] 기록적인 걱정과 기록적인 폭설

“혹시, 눈 무게를 아세요?”

“네. 잘 알죠. 300평(900㎡)에 1cm가 쌓이면 3톤입니다.”

우리동네 비닐하우스가 무너진 날이었다. 전화로 물어보자 제주도 공무원이 알려줬다. 걱정이 됐다. 농장 비닐하우스에 올라가 눈 속에 발을 집어넣었다. 어림짐작으로도 40cm는 넘었다. 그 공무원이 알려준 공식으로 계산했다. 초등학교 4학년 올라가는 우리 조카도 금방 풀 정도로 쉬웠다. 공무원은 그렇게 잘 알고 있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농사 경력 40여년인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도 몰랐다. 둘이 합하면 80년 가까운 베테랑 농사꾼이었지만 눈 무게는 몰랐다.

감귤비닐하우스 온풍기 온도를 올려 눈을 녹이자고 아버지에게 얘기했다. 수학공식처럼 얘기하는 내 말이 못 미더웠던 모양이다.

“새 하우스여서 괜찮아.”

아버지는 손사래 쳤다. 어머니는 온도 올리면 기름 값 많이 나온다고 타박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스마트폰을 켜고 무너진 비닐하우스 사진을 보여줬다. 아버지도 아무 말 없이 비닐하우스로 걸어가더니 온도를 올렸다.

눈이 오면서 SNS에서 드럼통 사진이 화제가 됐다. 가온장비가 없는 비닐하우스 폭설대비용이었다. 장작 몇 개만 피워도 하우스지붕 눈이 녹으며 눈 무게가 내려간다고 했다. 드럼통은 한 개에 만원에 판다. 내가 고물상에서 사 본적이 있어서 시세를 잘 안다. 몇 만원이면 폭설대비용으로 든든하다고 평범한 농사꾼인 그가 알려줬다.

모두가 ‘기록적인 폭설’이라고 했다. 기록적이라는 말엔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면 안 된다. 인간의 힘으론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기 때문이다. 얘기 잘못 꺼냈다간 꼬인 사람이 되고 만다. 이렇게, 많이, 오랫동안, 갑자기 내린 눈은 제주에 ‘기록’을 남겼다.    

세월이 하 수상하다보니 제주도 재난문자와 친해진지 오래됐다. 주민센터에서 공무원 소개로 친구맺기를 했다. 일만 터질 것 같으면 나를 걱정한다. 아내보다도 더 극성이다. 문자 목록을 쭉 내려서 보니 출근은 아침 6시, 퇴근은 저녁 7시 정도인데, 가끔 밤늦은 시간인 10시까지도 일한다. 왜 새벽엔 일 안하냐고 시비 안 건다. 그럼 내가 악덕기업주와 똑같은 악덕도민이 된다. 어쨌든, 재난문자는 든든했다.

든든했지만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우리동네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기 전날, 재난문자는 비닐하우스 걱정을 한마디도 안했다. 무너진 날도 마찬가지였다. 하루가 지나자 바빠지기 시작했다. 비닐하우스 피해 예방 주의 문자가 하루 3건이나 나왔다. 이제까지 받은 문자를 쭉 살펴봤다. ‘기록적인 걱정’을 한 날이었다. 

피해라고 내세우기는 민망하지만 우리 농장에서도 창고로 쓰는 작은 하우스 하나도 눈에 내려 앉았다. 굳이 피해신고를 할 생각은 없다. 보상 내역을 보면 대개 융자인데, 결국은 몇 년 후 빚으로 돌아오는 걸 나는 잘 안다. 내가 고치는 게 마음도 편하고 빚도 늘지 않는다. 

재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뻔한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굳이 수십, 수백억원 예산을 쓰면서 거창한 조직과 새 건물을 지을 필요도 없다. 초등학생 수준의 산수 실력과 정보, 진정어린 걱정만 있으면 된다.

묻고 싶다. 발을 동동 구르며 속을 태워본 적이 있는가. 그런 게 진짜 걱정이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비닐하우스가 처음 무너진 5일 제주도청 탐라홀에서 춤추며 ‘I love Jeju’를 노래했다. 기록적인 폭설에 비상근무를 한 공무원들을 격려하는 자리였다. 이날 무너진 비닐하우스는 단 한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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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태 시민기자. ⓒ 제주의소리
시작에 불과했다. 이틀 후부터인 7일부터 비닐하우스 300여동이 우르르 무너진다. 눈은 녹지 못했는데 또 눈이 쌓이면서 생긴 비극이다. 꿀벌 600만 마리도 얼어 죽는다. 끝났나 했더니 끝이 아니었다. 하루 평균 방문객 6만여명, 전국 오일시장 방문객 1위인 제주시민속오일시장도 지붕과 함께 자존심이 무너졌다. 

오늘도 눈이 내린다. 걱정이 쌓인다.  / 강정태 시민기자·조아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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