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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위 날, 휘영청 밝은 달을 보노라면 인생의 길목에서 나를 스쳐지나갔던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르고 그 맨 앞자리에 내 유년의 우상이었던 석우 삼촌이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장일홍의 세상사는 이야기] (59) 보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나 마음 속 깊은 곳에 그리운 추억과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내게는 석우 삼촌이 그런 사람이다.

유신 말기, 권력의 하수인들이 미친 년 널뛰듯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를 때, ‘부랑자 일제 단속령’이 떨어지고 제주시내 거리를 배회하던 내 작은 아버지(우린 석우 삼촌이라고 불렀다)도 그 검속에 걸려 육지로 추방되었다.

그런데 추방이라는 건 순전히 추정에 불과하고 실종이라고 하는 편이 더 사실에 가깝다. 어쨌거나 벙어리 삼촌이 증발해 버리자 할머니는 망연자실한 채 평소 아들이 잘 다니는 극장가를 헤맸지만 허사였다.

삼촌에 대한 내 기억은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머니가 계신 용담동 속칭 ‘한두기’로 놀러 가면 삼촌은 우리 형제를 바닷가로 끌고 가서 깅이(게)와 보말(고둥)을 잡게 해 주었다. 우리 힘으론 어림도 없는 바위를 ‘끄응’ 기합을 넣어 뒤집으면 게와 고둥이 보글보글했다. 큰 비가 내리고난 뒤엔 다리에 털이 무성한 산깅이도 있었다. 썰물이 빠질 때 쯤 더 멀리 나가면 성게와 문어를 잡는 경우도 있는데, 환호하는 우리를 삼촌은 먹먹한 시선으로 쳐다만 볼 뿐이었지만 그는 우리에게 임꺽정이었고 헤라클래스였다. 이 세상에서 삼촌을 이길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해 초가을(내가 초등학교 2학년?), 추석을 며칠 앞두고 바닷가 할머니 집에서 혼례식이 열렸다. 아무도 벙어리한테 시집 올 여자가 없어서 가난한 시골 처녀를 사오다시피 데려온 것이다. 그 날 하객들은 입이 함지박만큼 찢어진 삼촌을 보았다.

아마도 그 날은 삼촌의 생애에 있어 최고의 날이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첫 날 밤을 보내고 난 신부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으니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신부의 반항을 보나마다 뻔한 일이다. 

삼촌은 밤일을 치를 줄 몰랐던 것이다. 아무튼 신부는 떠났고 또 다시 삼촌은 외톨이가 되었다.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오래토록 슬픔은 강물처럼 삼촌의 덮었다.

삼촌은 이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영화광이었다. 매일 밤 서문통 제주극장이나 칠성통 중앙극장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삼촌은 기도(문지기)가 입장시켜 줄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다. 몽니 나쁜 기도를 만나면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밖에서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배우들의 대사나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 때도 삼촌은 극장 앞에서 운명의 손짓 같은 기도의 손짓을 기다렸다.

영화는 삼촌에게 만화경(萬華鏡)이었고 축제였다. 삼촌은 영화가 보여주는 상상의 세계에 공기처럼 조용히 침잠하여 의식을 투과하는 자유와 해방, 투쟁과 멸망, 카타르시스를 만끽했을 것이다. (삼촌의 영향 때문인지 나도 헐리웃 키드가 되었다. 나중에)

언젠가 아버지는 이런 삼촌을 두고 자신의 얼굴에 똥칠을 하고 다니는 놈이라고 미친 듯 화를 내며 혁대로 두들겨 팼다.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흠씬 두들겨 맞고도 다음 날 삼촌은 어김없이 극장 앞에 서 있었다. 삼촌이 영화에 미친 게 아니라 영화가 삼촌에게 미쳐 있었던 것이다. 

삼촌의 총각(결혼 전) 시절, 동네 조무래기들은 삼촌을 보고 놀렸다.

‘석우 코 말고 똥 말고 XX가 커서 좋겠네’

삼촌의 코는 아라비아인을 연상케 하는 매부리코인데 한라산처럼 우뚝 돌출돼 있었다. 아이들의 놀림은 남자의 코가 크면 거기가 크다는 유감주술적 사고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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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평소에는 부처처럼 너그럽고 온순한 삼촌이지만 코가 어쩌니 하며 놀릴 때는 사나운 맹수처럼 포효해서 꼬마들은 사색이 되어 달아나곤 했다. 그러니까 삼촌에게도 콤플렉스(?)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한가위 날, 휘영청 밝은 달을 보노라면 인생의 길목에서 나를 스쳐지나갔던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르고 그 맨 앞자리에 내 유년의 우상이었던 석우 삼촌이 있다.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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