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53) 나룩쌀이 물 지러 가며, 산도쌀이 나무를 지러 가랴

* 나룩쏠 : 벼에서 나올 쌀
* 지레 : 지러, (등짐으로) 지어 나르러
* 산뒤쏠 : 산도(山稻)쌀, 무논이 아닌 밭에서 난 쌀
* 낭 : (땔감으로 쓸) 나무

밥은 주식이니 곧 생명이다. 우리 삶에서 쌀이 갖는 힘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제주도 농사는 조, 보리, 콩 재배가 그 전부라 할 만큼 잡곡 위주다. 극심한 지표수의 부족으로 논이 거의 없는 탓에 쌀을 얻으려면 밭벼인 산도(山稻)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마저 넉넉한 게 아니었다. 그 산뒤밥도 없어 못 먹었다. 오죽 귀했으면 그 밥을 일러 ‘곤밥’이라 했을까. (서속밥도 없어 못 먹었으니.) 제사 명절날, 그것도 밥그릇 반에도 아주 못 미치게 떠 주던 곤밥을 맛보던 옛일이 떠오른다.

그러니 평소 쌀밥을 먹는다면 그야말로 풍요를 누리는 큰 부자였다. 그런 부자를 상징하는 나룩쌀과 산도쌀을 먹는 사람은 멀리 가 물을 길어 온다거나, 땔감 할 나무하러 산을 오르내리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함이다. 한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속담은 부귀의 상징인 쌀을 의인화해, 부자는 무거운 짐을 지어 나르는 노역을 하지 않고도 편히 지낼 수 있음을 에둘러 빗댔다.

‘나룩쏠이 낭 지레 가멍/ 산뒷쏠이 물 지레 가랴/ 그 밥 혼 술 주어시민/ 낭글 지나 물 지나 호컬’
(나룩쌀이 나무 지러 가며/ 산도쌀이 물 지러 가랴/ 그 밥 한 술 주었으면 나무를 지나 물을 지나 할 것을 : 맷돌‧방아 노래)

우리 노동요에 귀 기울이노라면, 쌀밥 한 술 먹어 보았으면 하는 서민의 탄식소리가 새어 나온다. 오늘의 풍요 속에 격세지감이 든다. 옛날, 참 못 살았다.

못 살던 시절에도 사람의 삶이 평등하지 않았다. 부자가 어찌 물 지러 가고 나무 하러 가겠느냐 하고 있지 않은가. 물과 나무를 지어 나르는 건 못 사는 사람의 몫일  뿐이라 하고 있은즉.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고르지 못한 건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한가, 공정한가, 그리하여 정의로운가. 

신부전증으로 혈액 투석을 받다 교도소에서 사망한 2명의 재소자가 있었다. 그들은 사망 전에 몇 차례 쓰러지며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다고 한다. 여러 번 외부 진료를 요청했으나 교도소 측이 그들의 의견을 묵살했단다. 죄인이라 하나 최소한의 인권마저 짓밟혔다.

한쪽에선 어느 재벌 총수가 수감 중 황제 대우를 받았다는 얘기가 스멀스멀 새어 나온다.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그대로 묻어 버리면 안된다. 올바른 나라를 세워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평등과 공정과 정의에 목마르다.

퍼뜩 ‘유전 무죄, 무전 유죄’란 말이 떠오른다.

돈이 있는 경우 무죄로 풀려나지만, 돈이 없으면 유죄 처벌 받는다는 것. 

법률소비자연대 조사에 따르면, 국민 80%가 이에 동의한다지 않는가. 사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과 연계돼 있다. 재벌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근거로 제시한다. 

1990년 이후, 10대 재벌 총수 중 7명, 모두 합쳐 23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으나 형이 확정된 후 평균 9개월 만에 사면을 받고 현직에 복귀했다는 것이다. 2016년에는 현직 부장판사가 유력 기업인으로부터 억대의 뒷돈을 받고 재판을 해 준 혐의로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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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도 안된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겠다. 돈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 지강헌이 남긴 말이다. 사진=오마이뉴스.

‘유전 무죄, 무전 유죄.’ 

탈주범 지강헌이 한 말이다. 

88올림픽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 그해 탈주한 그는 다른 탈주범 4명과 한 가족을 인질로 경찰과 대치하던 중 총을 맞고 죽었다. 그가 남긴 말 ‘유전 무죄~‘가 국민적 공감대를 타고 유행하더니, 머릿속 깊이 각인돼 있다. 왠지 오늘까지도 우리들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탈주 원인은 10~20년의 과중한 형량이었다고 한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형량을 대폭 강화하는 특별법을 양산했고, 그들의 탈주 계기가 된 게 형량의 불평등이었다.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도 안된다. 대한민국의 비리를 밝히겠다. 돈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 

그는 특혜 받는 형의 상대적 불평등에 분노했던 것이다.

지강헌은 동정 받을 수 없는 상습 강‧절도범이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한 시대가 낳은 비극이기도 했다. ‘5공비리’로 불리는 이 나라의 부정부패가 빈민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가속화한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니까.

그의 말이 꼭 맞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유전 무죄, 무전 유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결국 법조인들의 양심과 전문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이 더할 수 없이 중요하다.

우리 선인들이 오늘의 한국 사회의 병리를 예진했던 걸까. 

“나룩쏠이 물 지레 가멍, 산뒷쏠이 낭 지레 가랴.” 

절대로 안 간다. 두 무릎을 치며 공감한다. 제발 이만저만 했으면 좋겠다. 양심과 정의가 살아 있는 나라를 꿈꾼다. 양심과 정의의 최후의 보루가 판검사들이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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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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