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43) 오메기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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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메기떡. ⓒ 김정숙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 더운 계절에 오메기떡을 먹는단 말인가. 그것도 시원하고 쫄깃한 떡을 말이다. 오메기떡은 변했다. 변신이 무죄라는 말은 오메기떡을 두고 하는 말 같다. 변했기에 다시 살아나 명물이 될 수 있었다.

먹으려고 오메기떡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술을 담그려면 오메기떡을 만들어야 했다. 할머니는 술을 만드셨다. 60년대 말쯤 ‘아무라도 집에 술 있느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답하라던 말을 기억한다. 그리고 70년대 들어서면서는 술을 담그지 않으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이기도 하고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서였을 것이다. 소주를 내리기 위한 술을 담그지는 않으셨지만 약술은 가끔 담그셨다. 더운 때를 피해 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차좁쌀을 물에 불려 가루를 내린다. 뜨거운 물로 익반죽하여 동그랗게 떡을 빚고 가운데 구멍을 낸다. 둥근 도넛모양이다. 구멍을 내는 것은 떡이 고루 잘 익게 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팔팔 끓는 물에 가지 달린 댓잎을 담그고 떡을 조심조심 넣는다. 떡이 눌어붙지 않도록 솥 바닥에 댓잎을 까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익으면 댓잎가지를 휘이 두르면 떡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뜨면 익은 것이다. 떡을 건져 함지박 같은 그릇에 담고 뜨거울 때 으깬다.

멍울이 지지 않게 떡 삶은 물을 넣으면서 죽처럼 잘 풀어 놓는다. 여기에 약초가루, 누룩가루를 잘 섞어 항아리에 담아 앉힌다. 항아리는 따뜻하게 이불로 감싸고 아랫목에 모신다. 며칠 후 다시 떡을 만들어 덧술을 해 놓는다. 오메기떡 얻어먹을 계산으로 신나던 시절이었다.

어금니 사이에서 떡은 더 달콤해지고 차좁쌀 특유의 향이 살아난다. 그런 오메기떡을 누구나 좋아했다. 곁으로 얻어먹는 맛이니 더 좋았을 것이다. 오메기떡은 식으면 딱딱해 진다. 그랬던 떡이 냉동실에서 나온다. 얼음이 풀리면서 쫄깃한 맛으로 돌아오는 마술을 부리는 것이다. 아쉽게도 차좁쌀은 이런 재주를 부리지 못한다.

재주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찹쌀 덕이다. 그래서 차좁쌀은 제 분량을 덜어내고 찹쌀을 받아들인 것이다. 속도 채우고 고물도 묻힌다. 이름만 두고 다 바뀐 셈이다. 술 만들 일이 없어졌다고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고소리, 항아리처럼 용도폐기된 것들과는 달리 오메기떡은 홀로 승승장구 하고 있는 중이다. 까다로운 입맛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무한변신이었을 것이다.

오메기떡이 변신의 귀재라 해도 사람마음 만큼 할까. 언제 또 변할지 모르는 게 사람 마음이다. 변하기 전의 옛날 오메기떡을 찾지 말라고 누가 장담하랴. 변하고 또 변하더라도 태초의 모습은 간직하고 있어야 할 거 같다. 절망에 맞닥뜨렸을 때 돌아 갈 기점은 있어야 하니까.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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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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