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미사일 중단하면 한미 군사훈련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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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을 방문 중인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사가 16일(현지시간) 두 가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첫째, 북한 핵과 미사일 행위 동결을 전제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는 점과 둘째,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가 한미 동맹의 변수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북핵과 사드 등으로 얽힌 한반도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구상과 해법을 미국과 북한에 제안한 격이어서 의미가 적지 않다는 관측이다.

문 특보는 우선 동아시아재단과 우드로윌슨센터가 공동주최한 '한미 신행정부 출범과 한미동맹' 세미나 기조연설과 문답을 통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두 가지를 제안했다고 전했다.

그는 "첫째는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한다면 미국과 논의를 통해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염두에 두는 것은 한반도에 있는 미국의 전략무기 배치를 축소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지난 15일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기념식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과 조건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했던 발언을 보다 구체화시킨 제안이다.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대화의 조건으로 내건 소위 '선(先) 핵폐기론'에서 벗어나 북핵의 '동결'을 전제로 협상의 물꼬를 튼 뒤 비핵화 수순으로 나아가겠다는 접근법의 전환이다.

한미의 과거 정부, 즉 버락 오바마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 북한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면 핵실험을 중단할 준비가 돼 있다'고 여러 차례 밝혔으나 한미 양국은 한반도 긴장을 떠넘기기 위한 여론전이라며 일축했다. 북한은 또한 지난해엔 비핵화 협상의 조건으로 한반도에 미국의 전략무기 전진 배치를 중단을 내걸기도 했으나, 이 역시 한미 정부는 기만적 제안이라며 거절했다. 

북한이 지난 14일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강조하며 "조선 반도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들부터 시급히 취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밝힌 대목도 민간단체 교류보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중단 등 실질적인 조치가 대화의 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문 특보는 이어 "문 대통령의 또 다른 제안은 북한의 비핵화를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에 연계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 핵과 미사일 동결조치가 이뤄질 경우 평화체제 구축 방안을 당사국들이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즉 문 특보가 전한 문재인 대통령의 '두 가지 제안'은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이 진전되는 '상황 악화' 방지를 1차적인 목표로 삼아 북한의 요구사항을 재검토해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한 뒤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미이다.

이 같은 문재인 정부의 북핵 접근법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측이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 4월, 미국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대응 방안으로 미 전략자산의 정례적인 한반도 배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로 한 바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홍석현 대미 특사단과 만나 자신의 대북 정책으로 '최고의 압박과 관여'를 표방하며 "현재는 압박과 제재 단계에 있지만 어떤 조건이 되면 관여 정책으로 평화를 만들 의향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드 때문에 깨지는 한미 동맹이라면…"

문정인 특보는 한편 사드배치와 관련해 "사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 동맹이 깨진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고 말했다. 

그는 이날 특파원 간담회를 통해 "사드가 동맹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면서 "방어용 무기체계인 사드 때문에 동맹이 깨진다면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온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그는 이 같은 발언을 대통령 특보 자격이 아닌 학자로서의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맹목적 한미 동맹론'으로 비판받았던 정책이 새 정부에서 변화될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문 특보는 사드 배치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환경영향평가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문 특보는 사드 환경영향평가 논란과 관련해 "주한미군도 한국법 위에 있을 수 없고 우리 대통령도 한국법 위에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정부가 법을 건너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며 "법적 절차를 보다 신속히 진행할 수는 있겠지만, 환경영향평가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절에 걸쳐 어떤 영향이 있는지 측정돼야 한다. 아무도, 심지어 신(神)조차도 그 규정을 건너뛸 수 없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 부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키로 한 뒤 국내는 물론 미국 조야에서 의심어린 시선을 보내는 데 대해 국내법에 따른 적법한 절차 진행이 한미 동맹 훼손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문 특보는 이 같은 법적 절차를 따르더라도 한미 간의 사드 배치 합의를 취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의 협약에 의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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