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101) 추위에 떠는 놈 곁에선 옷 장사 마라

* 언 놈 : 추위에 떠는 놈, 헐벗고 사는 사람
* 조꼿듸선 : 곁에서는, 가까이서는
* 옷 장시 : 옷 장사

한겨울 혹한에 길바닥에 나앉아 허름한 옷가지 하나 걸치고 벌벌 떠는 사람을 상상해 볼 일이다. 아무리 옷을 파는 장수라 해도 무심할 순 없을 테다. 제 옆에서 추위에 시달리고 있는 헐벗은 사람이 있으면 그냥 못 본 체하고 눈을 돌릴 수 없는 게 인심이고 인정이다. 아무리 쌀쌀맞은 사람도 눈앞에 그런 사람을 대하면 마음이 움직일 것 아닌가. 지나치려니 속이 편안할 리 없는 일이다. 
  
제 아무리 저 혼자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일지언정 사람은 자그마치 사람으로 행세할 수 있어야 사람이다. 그러지 못할 바엔, 돈 한 푼 없어 추위에 떨면서 배고파 움츠리고 있는 사람 앞에선 장사를 않는 게 낫다 함이다.

무슨 일에나 알맞은 때와 곳, 적시(適時) 적소(適所)가 있는 법이다.

원래 사람은 이기적이다. 자기 위주로 모든 것을 조장하려 든다. 그런 성향이 항상 주위와 갈등을 빚는 원인을 제공한다.

이기적, 그것은 생존본능이기도 하다. 도덕이란 이름 아래 제어되고 있을 뿐, 눈앞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면 자신도 모르게 살려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 긴박하면 자신밖에 보이지 않는 법, 옆 사람을 볼 여유가 없다.

세상에 이기적인 사람은 얼마나 될까?

99%다. 이기적이란 기득권이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더 갖고 싶어 하며, 기득권 성향이 더 짙게 나타나게 마련이다.

비근한 예로, 당장 난민 노동자를 받아들인다고 하자. 가장 손해 보는 쪽은 어디겠는가? 당연히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쓰는 도시 서민들이다. 소시민들이 난민 수용을 반대하게끔 돼 있다.

종교를 떠나 마음에 와 닿기에 글 한 편 소개하려 한다. ‘적선 좀 하게나’라는 친구에게 속삭이듯 다가가는 육성 너머 따스한 마음이 가슴으로 스미는 글이다.
  
“여보게, 친구, 돈 많이 벌었거든 목마른 중생 위해 적선 좀 하게나. 몇 백 년 살 것처럼 큰소리치지마는 죽음의 그림자는 너나없이 다가와서 아차하면 아뿔싸, 아차하면 아뿔싸. 대문 밖이 저승일세. 눈물의 저승길은 황금도 검불 같아 탐욕의 때 묻은 돈 쓸 곳이 없다 하네. 오면 가는 것이 인간의 사바세계, 욕먹고 제 물 먹어 배부르다 투정 말고 불심으로 도 닦고, 불심으로 도 닦고 극락왕생하세나, 극락왕생하세나.”

또 <주역> 문언전(文言傳)에선,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 했다.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는 뜻이다. 좋은 일을 하면 필시 후손들에게까지 복이 미친다는 말이다. (줄여서 ‘積善餘慶’)

속담에 ‘남향집에 살려면 삼대가 적선해야 한다.’고 했다.

현대문화는 모름지기 이기심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기적인 태도는 죄악이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태도가 도덕적이라는 입장이다. 실은, 이런 가르침은 현대사회의 실제적 모습과는 완전히 모순이다 인간에게 가장 강력하고 적법한 욕망을 이기심이 억누를 수 없게 함으로써 우리는 공동의 이익에 한 발 다가설 수 있다는 주장이 현대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이기심은 최대의 악이고,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람은 가장 위대한 도덕심이라는 주장의 위세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아니, 강력하다. 여기에 이기심은 자기애(self-love)와 거의 동일하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도덕적으로 행동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사랑하며 죄를 범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양자택일은 모순이다. 역시 양자가 대립하면서 모순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돈이란 쓰기 위해 버는 것이다. 재산을 집 안 곳간에 잔뜩 쌓아 두기만 하려면 무엇 때문에 돈을 벌겠는가? 그래서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한 것이다. 자기가 번 돈이라 해서 호화, 사치, 향락에 쏟아 붓지 말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 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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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 놈 조꼿듸선 옷 장시 말라.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말이다. 돈이란 쓰기 위해 버는 것이다. 재산을 집 안 곳간에 잔뜩 쌓아 두기만 하려면 무엇 때문에 돈을 벌겠는가? 그래서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한 것이다.
사진은 최저임금, 비정규직 등을 문제 삼으면서 수 백 조원이 넘는 사내유보금을 보유한 국내 재벌들을 비판하는 삽화. [편집자] 출처=오마이뉴스,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운동본부.

‘언 놈 조꼿듸선 옷 장시 말라.’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말이다. 가난하려고 작정해 가난한 것인가. 아니다. 한겨울 추위에 남루를 걸치고 허덕이는 사람에게 팔던 옷가지 하나 내어 주는 게 사람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가. 헐벗은 사람을 피해 장사 하라는 말로 읽어선 안된다. 
  
하긴 ‘옷 장시 조꼿듸 언 놈’도 사람 나름이긴 하다. 젊은이라면 탈탈 털고 일어나 막노동판에 라도 뛰어들어야 한다. 일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한 땀을 흘려야 한다. 무위도식으로 빈둥거리는 자에게 베푸는 온정은 안된다. 쇼펜하우어도 그래서 한마디 했지 않은가. 

“거지에게 시선(施善)하지 마라.”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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