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의 또 다른 이야기> 그가 누구이든 지역주민은 공격대상이 아니다
답답하다. 언필칭 ‘평화의 섬’에서 이래도 되는 것인가. ‘전략기지가 어떻고 세계평화가 어떻고’하는 문제에 대해선 판단을 중지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 거 잘 모른다. 다만 이유가 어쨌든 한 마을의 평화를 깨뜨리는 위와 같은 ‘물리력 행사’가 무조건 싫다. 정녕 우리는 평화스러운가. 우리가 우리 고장을 ‘평화의 섬’으로 받아들인다는 이유로 진정 우리고장이 평화스러워졌는가.
아직도 답이 서지 않는다. 이래가지고도 ‘평화의 섬’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평화는 정의의 실현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조건들이 채워진 상태다. 그렇다면 차제에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평화의 섬’이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그리하여 우리의 징표로서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인지 냉철하게 따져야 한다.
보도를 위주로 한다면, 사설용역까지 동원한 공권력에 울분을 토하고, 비명과 울음이 마을을 뒤엎고, 그리고 다치고, 경찰에 연행되고,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이게 ‘평화의 섬’이란 곳에서 어디 있을 법한 일인가. 물음이 많은 건 무지 탓만이 아니다.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야 한다. 누가 ‘평화의 섬’을 욕되게 하는가. 이럴 바엔 차라리 ‘평화의 섬’ 간판을 내리는 것 낫지 않겠는가.
지역주민들의 삶의 다양한 맥락과 조건들을 무시한 평화는 이미 평화가 아니다. 그것이 삶의 고양을 위한 수단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지역주민들의 삶과 동떨어질 때, 그것은 지역주민들의 생활의 내용을 부정하는 허구적 평화일 뿐이다. 그건 이미 평화가 아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평화의 섬’에서의 그 ‘평화’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평화인가. 그리고 무엇을 위한 평화인가. ‘누구에 의한’ 그리고 ‘누구를 위한’ 주관적 조건에 의존하지 않고 곧바로 객관화될 수 있는 평화가 있을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분명하다. ‘평화의 섬’도 지역주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만일 그런 게 아니라면,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修辭)이거나, 지역주민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불순한 정치적 행정적 기획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역시 ‘평화의 섬’은 빛바랜 현수막에서만 존재하는가. / 강정홍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