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의 또 다른 이야기> 그가 누구이든 지역주민은 공격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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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000여명의 공권력이…강제 진압하자 장장 15시간동안 마을 주민들은 울분을 토했다. 곳곳에 상처만 남았고 9년째 이어진 해군기지 건설 갈등은 여전히 분노와 아픔으로 치달았다. 맨손으로 맞선 주민들의 비명과 울음이 다시 마을을 뒤덮었고…사설용역까지 투입…무차별적인 진압에 강정마을 주민과…철조망이 처진 나무 방화벽에 기대 격렬히 저항했다. 연행과정에서 8명은 부상…이날 행정대집행과정에서 경찰에 연행된 인원은 모두 24명…”(‘제주의 소리’ 1월 31일자 보도 발췌)

답답하다. 언필칭 ‘평화의 섬’에서 이래도 되는 것인가. ‘전략기지가 어떻고 세계평화가 어떻고’하는 문제에 대해선 판단을 중지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 거 잘 모른다. 다만 이유가 어쨌든 한 마을의 평화를 깨뜨리는 위와 같은 ‘물리력 행사’가 무조건 싫다. 정녕 우리는 평화스러운가. 우리가 우리 고장을 ‘평화의 섬’으로 받아들인다는 이유로 진정 우리고장이 평화스러워졌는가.

아직도 답이 서지 않는다. 이래가지고도 ‘평화의 섬’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평화는 정의의 실현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조건들이 채워진 상태다. 그렇다면 차제에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평화의 섬’이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그리하여 우리의 징표로서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인지 냉철하게 따져야 한다.

보도를 위주로 한다면, 사설용역까지 동원한 공권력에 울분을 토하고, 비명과 울음이 마을을 뒤엎고, 그리고 다치고, 경찰에 연행되고,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이게 ‘평화의 섬’이란 곳에서 어디 있을 법한 일인가. 물음이 많은 건 무지 탓만이 아니다.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야 한다. 누가 ‘평화의 섬’을 욕되게 하는가. 이럴 바엔 차라리 ‘평화의 섬’ 간판을 내리는 것 낫지 않겠는가.

지역주민들의 삶의 다양한 맥락과 조건들을 무시한 평화는 이미 평화가 아니다. 그것이 삶의 고양을 위한 수단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지역주민들의 삶과 동떨어질 때, 그것은 지역주민들의 생활의 내용을 부정하는 허구적 평화일 뿐이다. 그건 이미 평화가 아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평화의 섬’에서의 그 ‘평화’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평화인가. 그리고 무엇을 위한 평화인가. ‘누구에 의한’ 그리고 ‘누구를 위한’ 주관적 조건에 의존하지 않고 곧바로 객관화될 수 있는 평화가 있을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분명하다. ‘평화의 섬’도 지역주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만일 그런 게 아니라면,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修辭)이거나, 지역주민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불순한 정치적 행정적 기획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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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주제넘게도 여기서 나의 경계심은 어김없이 발동한다. 단순한 지정학적 개념은 지역주민들의 삶의 고양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한낱 신화에 불과하다. 평화 그 자체가 삶의 조건에 의해 규제된다면, 그것 자체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툭하면 “논쟁과 반목과 갈등이 있어서는 안 되고” 억지로 화합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런 유위적 방편을 개발해야 한다는 논리 역시 마찬가지다. 갈등 또한 그것대로 인정돼야 한다. 지역사회에는 ‘확신에 대한 반대자’도 있어야 한다. 비록 비효율적이라도 그것을 평화로 풀어나가면 된다. 이런 사회적 구도를 외면한 평화는 한갓 허위의식일 따름이다. 그것은 늘 명분상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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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홍 언론인.
주민은 공격대상이 아니다. ‘일방적인 설득’의 대상도 아니다. 분명 대화와 ‘일방적인 설득’은 구별돼야 한다. 대화를 위장한 일방적인 설득은 문제를 키울 뿐이다. 그래서 더욱 막무가내 식 밀어붙이기는 무모하다. 혹 ‘정면 돌파’의 의지가 있었다면, 그 의지와 똑같은 비중으로 잊지 말아야 게 있다. ‘돌파’라는 것은 ‘경계 장벽’을 떼어버리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합하는 것까지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언제나 강한 인내와 노력 그리고 통찰이 필요하다. 이게 바로 평화의 본색이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역시 ‘평화의 섬’은 빛바랜 현수막에서만 존재하는가. / 강정홍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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