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왼쪽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2017년 06월 12일(월) 09:43
고영자 박사 news@jejusori.net
[BOOK世通, 제주 읽기] (58) 자크 아탈리 『등대』/고영자 미학자·번역가 

bst-58.png
▲ 자크 아탈리(원서: 2010년)《등대》, 이효숙 옮김, 청림출판, 2013년.
사람이 산다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일 것이다. 너와 나 누구랄 것도 없이 타인의 운명이나 처지에 깊은 관심과 더불어 때로는 연민과 동정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어려서는 가족이나 이웃, 친구와 같은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던 것이, 차차 성장하면서부터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과 공감의 스펙트럼이 넓고도 깊어진다. 거기다 그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자신의 취향이나 추구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에 대한 열광과 찬사를 빠트리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 반대 부류일 경우에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그들로부터 그 처지에 놓이지 않으려는 가르침을 얻으려 할 것이다. 

일찍이 영국의 사상가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 썼듯이, 인간은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로 보인다 해도, 인간의 본성에는 분명 몇 가지 원리가 존재한다. 이 원리는 인간이 타인의 운이나 불운에 관심을 갖도록 해 주며, 타인의 행복을 빌게 해준다. 사실 인간은 타인의 행복에서 '그것을 보는 기쁨' 밖에 얻지 못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필요로 한다. 또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전염되어 같은 슬픔을 느끼곤 한다. 이 감정은 인간 본성의 다른 모든 근본적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에게 존재한다. 다시 말해 인도적이고 덕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천하의 악당에게도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 인물의 성공적 또는 비극적 삶을 담은 사극에 열광하거나 나라 안팎에서 전쟁이나 재난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는 비보에 귀를 쫑긋 세우는 것 또한 타인의 운이나 불운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증거이며, 이는 그들의 불행이나 행복을 통해 나의 불행이나 행복을 직감적으로 예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다양한 본질적 특성들을 알고 있다. 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야기 본능을 가진 동물(Homo Narrans)’이라는 점과 그 이야기에 ‘공감하는 동물(Homo Empaticus)’이라는 점이다. 러시아 철학자 미하일 바흐친이 인간의 삶 자체를 결국 나의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가 서로 섞여 가는 상호 교차적인 대화의 과정으로 본 것은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세계적인 비교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태초 이래 인간은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아왔음에 착목하여, 우리가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은 세계와 관계를 이루기 위해, 우리 삶을 현실과 조화시키기 위해서 라고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사람들에게 정서적 몰입과 공감을 끌어내는데 효과적인 이야기 형식의 책들의 인기가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의 생애보다는 타인들의 생애를 구체적으로 읽거나 듣고, 그의 삶을 통해서 배우고, 이를 누군가에게 전하면서 이야기를 생산하고 소비해왔다. 걔 중 어떤 시대들에는 비극적이지만 꼭 영광스럽지 않은 인물들의 운명을 더 잘 알고 싶어 할 때도 있었다. 힘들 거라고 예고되는 미래를 잘 넘기면서 살아남을 준비를 위한 방편으로 말이다. 

자신이 직접 쓴 자서전, 회상록, 고백론은 차치하고서라도 당대 또는 후대에 제3자가 한 인물에 대해 쓰고 다시 보태거나 빼면서 쓰고 재구성되며 전해지는 위인전, 열전, 평전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 전기(傳記)에 종종 수반되는 일체의 자료들(일기, 서간, 수첩, 사진, 소장품, 개인기록, 보도기사 등등) 또한 이들 이야기에 한층 더 집중하고 공감하게 한다. 

이번 ‘북세통’ 서평에서 소개할 책,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의《등대》(원서: 2010년, 번역서: 2013년) 또한 우리시대 버전으로 ‘이야기하는 인간’과 ‘공감하는 인간’이 상호교차하면서 펼쳐지는 23인의 이야기 무대다.

자크 아탈리(1943년~ )는 유럽 최고의 석학으로 정치, 경제, 문화, 역사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회 변화를 예리하게 전망하는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다. 컨설팅회사 '아탈리 & 아소시에'(1994년 설립)의 대표와 '플라넷 피낭스'(PlaNet Finance, 1998년 설립)라는 마이크로 파이낸스(무담보 소액대출) 전문 NGO 대표를 맡고 있는 한편, 수필과 소설을 포함하여 55권 이상의 책을 쓴 저술가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위의 자크 아탈리의 이력을 볼 때, 그는 전문적인 전기(傳記) 작가라기보다는 여전히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린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금까지 지그문트 바르부르크(1985년), 프랑스의 천재 블레즈 파스칼(2000년), 세계의 정신 카를 마르크스(2005년), 겸손의 화신 간디(2007년), 사유하는 행복 디드로(2012년) 평전을 출간한 바 있다. 

이 연장선에서 아탈리는 ‘공자에서 아리스토텔레스……호치민, 함파테 바’라는 역사적 위인들을 선정하여 이들의 삶을 전기(傳記) 형식으로 압축하여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학자 아탈리에게 전기(傳記)란 무엇일까? 아탈리는《등대》서문에서 말한다. 

“우선은 그 어떤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운명보다 더 광적이고, 더 강렬하고, 더 허구적이고, 우여곡절과 모순이 더 많은 운명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즐거움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그 어떤 이론도 예술가들과 발견가들, 모험가들과 크리에이터들, 반항하는 자들과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의 예상치 못한 일들로 풍요로운 인생 여정만큼 역사에 대해 잘 이야기해주지는 못하기 때문”(5쪽)이라고. 따라서 이 책에 등장한 인물들은 철학, 예술, 과학, 경제적 행위 또는 정치적 행동 등을 통해 세계의 변화에 의미를 주면서 역사 속에서 지속적인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반면, 아탈리는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시시하고 환영적인 형태인 유명세에 접근하기 위해 과다하게 출간되는 전기 형식의 출판물을 경계한다. 아탈리에게 전기(傳記)란 다름 아닌 미래를 예측하는 그릇이다. 그 그릇엔 앞으로 10년, 50년 뒤 세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50년 전, 100년 전, 1000년 전, 3000년 전 세계가 어떠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긍정적이고도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분명《등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터넷에서 그저 클릭 한 번이면 대체로 파악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기 작가들로서는 그들에 대한 새로운 정보나 강력한 문제의식이 없고서는 신선한 글쓰기가 여간해선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등대》의 저자는 다행히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저자는 이들 각자에 대한 기존 문헌들을 참고하면서도, 세계사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들 각자에게 더 특수한 것, 즉 동시대인 우리와는 확실히 다른 무언가를 부각시키며, 그 특수성이 이 시대는 물론 저자 자신이나 독자인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매 순간 성찰하도록 안내한다.

예를 들어 아탈리는 이탈리아 바로크 초기의 화가 카라바조(1571~1610)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그가 피렌체를 들를 때마다 메두사 얼굴 형태의 자화상을 그린 카라바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카라바조가 태어나기 직전에 죽은 또 다른 아주 위대한 화가인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만큼이나 카라바조라는 인물이 아탈리에겐 몹시 궁금하고 매혹적이다. 

“천재적인 불량배, 주먹다짐과 사회 밑바닥을 좋아하면서 거만 떨던 자, 정염의 불길과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더욱 잘 밝히기 위해 그림을 혁신시키던 궤적에 매혹되었다. 출자자들에게 감히 자신의 견해를 강요한 최초의 예술가, 삶이나 작품이나 죽음에서 신앙도 없고 법도 없는 최초의 예술가였던 그는 우리 시대의 다른 예술가,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1922~1975)를 예고하는 인물이다.”(272쪽) 우리는 여기서 죽을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면서 죽음과 맞서 싸운 사람, 마지막 숨결을 거둘 때까지 본질적인 것에 헌신하려는 결단을 가진 몇몇 예술가들을 떠올리게 된다.

58.jpg
▲ 피터르 브뤼헐 작 ‘소작농의 결혼식’(1566–69).
한편,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명을 한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1847~1931)에 대한 저자의 접근도 긴장감 넘친다. 아탈리는 에디슨이 독학자였고 그러면서도 그보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더 많은 영향을 끼진 개인은 아마 없을 것이라 강조한다. 이에 비해 저자 자신은 과도할 정도로 많은 선발시험을 통과해서 수많은 타이틀을 얻었지만, 그런 타이틀이 에디슨 같은 독학자 앞에선 한없이 덧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아탈리는 앞으로 오직 한 권의 전기(傳記)밖에 쓰지 못한다면 그 전기는 바로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발명을 많이 한 이 행상인에 대한 전기가 될 것이라며 에디슨을 극찬한다. 

“나는 내가 고찰한 많은 영역에서 그를 만났다. 음악, 시간, 건강, 에너지, 통신…그는 일종의 현대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경험과 이론을 혼합하면서 그 어디에나 있다.”(576쪽) 게다가 오늘날 주요 다국적기업들 중 하나이며, 비행기 모터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전자장비뿐 아니라 금융 서비스까지 팔고 있는 ‘제너럴 일렉트릭’이 130여 년 전 에디슨이 설립한 전기조명회사를 모태로 하고 있다고 서술하면서 오늘날 발명과 연구, 혁신, 창조 정신은 에디슨의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계속해서 독일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를 냉소적으로 소개하는 지면들도 보자. 아탈리가 보기에 슈트라우스는 독일 나치 정권 하 폭군이 휘두르는 야만성에 대해 반항하지 않고, 심지어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주기까지 하면서, 완벽하게 문명적인 태도로 처신한 음악가이다. “내가 슈트라우스의 인생에 특별히 흥미를 갖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그가 그만둬버린 오케스트라 지휘자라는 직업이 다른 그 어떤 일보다 나를 매혹시키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특히 그의 운명이 인간의 가장 큰 수수께끼들 중 하나에 대해 성찰해보게 하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651쪽) 

물론 역사를 통해서 보면 그처럼 폭군들이나 그들의 체제에 아무런 감정 없이 복무했던 아주 위대한 예술가들이 많다고 아탈리는 지적한다. 그 결과 “그들의 인생이 아름다움은 선함과 혼돈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진실과도 혼동되지 않고…”(651쪽)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에서는 한 노인이 죽으면, 그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버린 것이다”라고 말해 유명해진 이마두 함파테 바(1900~1991) 역시 특별히 우리의 눈길을 끈다. 그는 이야기꾼, 전통학자, 구도자로 아프리카의 현자로 불렸던 인물이다. 아탈리는 아프리카 역사가 지금까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운을 뗀다. 지금까지 아프리카 문화의 대부분이 구승적(口承的)이기 때문에, 그리고 노예매매를 하던 자들이던 아랍인 식민지 개척자들에 이어서 유럽 식민지 개척자들이, 그들의 신화, 전설, 제례의식, 아울러 유럽이나 아시아의 제국들만큼 복합적이고 찬란했던 그들의 제국들, 문명들까지 사라지게 만들면서 그들을 무자비하게 침묵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파테 바와 같은 한 위대한 작가가 “그 기억을 보전하고, 그 기억으로부터 대홍수 이전 노아의 방주를 구성해내기 위해 평생토록 투쟁했다. 정치적 독립을 획득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싸움이 아니었다. 한 대륙의 정체성과 그 대륙이 세계에 기여한 것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708~9쪽) 이런 노력의 점철 속에서 아프리카는 21세기 중후반에 들어 지정학적으로 주인공이 될 것이라 아탈리는 예측한다. 

이처럼 《등대》는 고대와 중세의 신학적 사고와 기독교 문명의 발흥, 그리고 18세기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19세기 근대 시장경제와 이데올로기적 사고, 20세기 제3세계 민족주의 전선과 홀로코스트라는 참극에 이르기까지 각 시기를 산 대표적인 인물들을 망라하고 있다. 저자는 《등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모두 나름대로 자신의 운명에 강박적으로 사로잡힌 자기중심주의의 괴물들이라 표현한다. 그렇다고 이들 모두가 우리의 본보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거기엔 그들의 실수을 통해서조차 우리가 배울 점들은 분명 숨어있을 것이다.

추기: 한국어판《등대》의 프랑스어 원서 “Phares”에 원래 24명의 인물들이 다뤄지고 있다(2010년 초판). 그러나 한국어 번역판에 한 인물이 누락되었다. 그는 다름 아닌 일본 근대화의 상징인물인 일왕 메이지(明治)이다. 한일양국의 정치적 갈등이 여전히 팽배한 상황이다 보니 번역본 출판사 측이 결정을 내렸다는 후문이다.

 ▷ 고영자(미학자·번역가)

KakaoTalk_20160214_091204364.jpg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및 재일제주인센터 특별연구원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에서 미학(예술학)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 취득.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소(EHESS) 연구원 역임.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대학원 강사(미학) 역임.

현재, 근·현대 문화매체론, 제주미학론, 제주 ‘이미지’ 생성 및 변천사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크리스틴 조디스 저《미얀마 산책》(2008년), 데이비드 네메스 저《제주 땅에 새겨진 신유가사상의 자취》(2012년),《서양인들이 남긴 제주견문록(1845~1926)》(2013년),《서양인들이 남긴 제주도 항해·탐사기(1787~1936)》(2014년), 《구한말 佛語·英語 문헌 속 제주도(1893~1913)》(2015년)가 있다.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X

카카오톡카카오스토리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