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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개가 가배우민 세감이 돈다"

2017년 06월 12일(월) 10:01
김길웅 kimku918@naver.com
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22) 방망이가 가벼우면, 주름이 잡힌다

* 막개 : ‘방망이’의 제주방언 
세감 : 무엇을 물릴 때에 그 사이에 물리는 나뭇조각·천·짚 따위를 말하는데 주로 제주지역에서 쓰이던 말이다. ‘주름’의 뜻으로도 쓰인다. 예컨대, 큰 바위나 나무토막을 쪼갤 때 틈을 내고 사이에 끼워 넣는 산도(山稻) 짚 같은 것인데, 물에 흠뻑 적셔 넣고 망치로 몇 번 되게 치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

통솔과 감독이 엄중하지 않으면 위반자가 생기게 마련임을 빗대어 이름이다.

방죽 벽에 구멍이 났다고 상상해 보라. 물이 샐 것은 불 보듯 빤한 일이다. 물도 물 나름, 심하면 엄청난 물을 가둬 놓은 봇물(湺의 물)이 터진다는 바로 그 말이다. 비근한 예로, 땅속 깊이 묻은 수도관이 터지면 길바닥이 갈라지며 물이 위로 솟구쳐 물난리가 나는 법이다. 길 가다 한두 번 보는 일인가.

이를테면 학교 수업에서 교사의 수업장악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교수 능력인 만큼 절대적이다. 잡담하며 떠들거나 돌아앉아 장난치는 학생들을 그냥 두면 교실이 무너진다. 이 점, 감독자로서 교사의 기능은 막중하다.
  
체벌과는 별개로, 교사가 든 ‘방망이’는 가르치려는 사명감 혹은 교육적 열정이라 할 수 있다. 너무 가벼우면 방임(放任)하는 것이라, 수업이나 생활지도에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방망이’가 가벼워서 안되는 현상은 여러 조직, 단체, 기관에 이르러 더욱 여실해진다. 특히 공직자들이 저지르는 불법·비리 행태야말로 청산돼야 할 오래된 우리 사회의 적폐다. 청렴을 내세우며 공직 기강을 바로 잡는다고 매양 목소리는 드높지만, 자신의 본분을 저버린 채 관리 감독이 소홀한 틈을 노리는 자들이 끊이지 않으니 통탄할 일이다.

‘대검 돈봉투 만찬’ 사건만 하더라도 그렇다. 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은 세상이 다 아는 ‘검찰 조직의 빅2’다. 막강한 권력을 주무르던 그들이 아리송한 만찬 자리에서, 법무·검찰 간부들에게 돈 봉투를 돌리다니. 돈의 출처가 소위 특수 활동비라는데, 100만원이 들어 있는 봉투를 돌리고 1인당 95,000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했다니, 이게 될 법이나 한 일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적절하지 못한 행위인데다 청탁금지법까지 위반한 게 명백해졌다. 

라면 반쪽으로 주린 배를 달래는 사람도 있는 세상 아닌가. 
  
그 돈이 어떤 돈인가. 국민 혈세 아닌가. 법을 집행해야 할 막중한 지위에 있는 자들이 보란 듯이 법을 어겼으니,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세상에 이런 모순 어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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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봉투 만찬 의혹에 연루된 이영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이 지난 5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김수남 검찰총장 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그들은 조직 속에서 감독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제, 불명예 면직에 수사 대상으로 신분이 바뀐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 만무하다. 속 터질 일이다. 다들 분노하고 있을 것이다. 

그중 한 사람은 김영란법에 의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게 된다 한다. 감독권을 갖고 있던 자가 한없이 추락했다. 더욱이 볼썽사나운 것이 후배 검사에게 조사를 받게 되는 일이다. 자업자득으로, 인과응보라 함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테다.
  
왜 이 나라에 이런 권력형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관행, 타성 운운하며 두루뭉수리 관용으로 감싸 온 감독 시스템의 허술함을 탓할 수밖에 없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막개가 가배우민 세감이 돈다.’ 오늘의 세태를 앞에다 놓고 의표(意表)를 지른 말로 들린다. 한 방 제대로 놓았다.

제 본분을 모르는 염치없는 자들을 덮어 두어선 안된다. ‘방망이’를 높이 들어야 함에도 그렇기는커녕 관리 감독에 소홀해서야 되는가. 

다시는 고개를 쳐들지 못하게 일벌백계로 다스려 마땅하거늘.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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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길웅 시인. ⓒ제주의소리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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