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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땅에 일군 농원, 사람들 관계를 기름지게 하다

2017년 08월 01일(화) 07:30
문준영 기자 moonsoyo@jejusori.net

[연속기획-제주형 도시재생, 길을 묻다] (5) 코토하나, 마을의 위기를 기회로

도시재생, 마을만들기, 커뮤니티 비즈니스. 최근 화두인 새로운 지역 활성화 방식은 하드웨어 중심 개발에 대한 염증에서 비롯됐다. 단순히 예산을 쏟아붓고 각종 시설을 짓는 것만으로는 어떤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없다는 것을 행정당국도 깨닫게 된 것이다. 일본은 1990년대 장기불황 이후 수많은 지역들이 위기에 몰리면서 이런 새로운 지역 활성화 모델이 자리를 잡았다. <제주의소리>가 최근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살펴본 그들의 삶의 모습은 제주가 추진 중인 도시재생과 마을만들기 사업 등에 주는 시사점이 분명했다. 장기 연속기획으로 국내외의 다양한 도시재생 성패 사례들을 현장 취재해 소개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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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를 바꾸는 디자인 사무소 코토하나가 오사카 키타카가야 지역에 조성한 '모두의 농원'. ⓒ 제주의소리

한 지역의 경제를 책임지던 기간산업이 쇠퇴하면 마을에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오사카 시에서도 남서쪽, 바다 가까이 위치한 키타카가야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조선업이 성행했으나 대형 조선사가 타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인구는 줄어들고 빈 공터는 늘어났다. 고령화 현상이 심각해졌고 주민들 간의 교류도 뜸해졌다.

좀처럼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오사카 시에서는 예술을 통한 지역활성화 ‘키타카가야 크리에이티브 빌리지’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폐쇄된 조선소 내부를 복합예술공간으로 재탄생했고 물품 보관용 창고는 장인이나 젊은 아티스트들의 작업실로 변신했다.

이 지역에서 창업해 100년의 역사를 지닌 치시마 토지 주식회사(Chishima Real Estate)가 함게 팔을 걷어붙였다. 이 회사는 지역 토지의 상당 부분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인구 유출이 극심해지니 땅값도 떨어졌고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이 때문에 예술가, 건축가, 디자이너들을 이 지역으로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낮은 가격으로 임대를 해주기 시작했다.

고베예술공과대학에서 환경건축디자인을 전공한 1986년생 카네다 야스타카가 동료들과 함께 ‘사회를 바꾸는 디자인 사무소’인 ‘코토하나’를 만든 것도 이 때 쯤이다.

‘주민들이 정말 간절히 바라는 게 무엇인지’ 나름대로 파악한 결과는 의외였다. 그들의 내린 사람들의 욕구는 ‘사람이 그리웠다’는 쪽이었다.

이 대목에서 그들이 선택한 아이템은 ‘농원’이었다. 치사마는 저렴한 가격으로 땅을 임대해줬고, 농사에 필요한 흙도 제공해줬다. 판을 깔고 기다렸다. 처음엔 ‘젊은 사람들이 와서 뭘 하나’ 정도로 바라봤던 사람들이 서서히 다가왔다. 하나 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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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 키타카가야 지역에 들어선 '모두의 농원'.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다양한 농작물을 생산해낸다. 초점은 이익 극대화가 아닌 '즐겁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 맞춰져 있다. ⓒ NPO法人Co.to.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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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 키타카가야 지역에 들어선 '모두의 농원'.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다양한 농작물을 생산해낸다. 초점은 이익 극대화가 아닌 '즐겁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 맞춰져 있다. ⓒ NPO法人Co.to.hana

코토하나의 ‘모두의 농원’은 주말농장, 도심농원과는 다르다. 대략 10명 정도가 18㎡ 정도 되는 정말 작은 농장을 운영한다. 터를 함께 파고, 무엇을 심을지 회의를 한다. 실제 농민들의 지도를 받기도 하고, 견학을 가기도 한다. 30대부터 70대까지 마을 주민들이 프로젝트 멤버로 함께 한다. 팀 코스의 경우 야채를 많이 생산해내는 게 목적이 아니다. 그 과정 자체를 즐긴다. 평생 농기구 한 번 만져본 적 없는 이들이 대부분인 만큼 좌충우돌의 연속이다.

아주 단순한 아이템으로 벌인 도전이었지만, 곳곳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작은 파티와 이벤트들이 벌어졌다. 이웃 간의 관계가 돈독해지게 됐다. “간장을 만들어보자”, “무농약 농원으로 성공한 곳이 있다는 데 한 번 가보자”, “요리교실을 하자”는 식의 제의들도 이어졌다. 그렇게 이 곳을 거쳐간 이들이 500여명. 지역이 조금씩 조금씩, 서서히 활력을 되찾기 지가했다. 행정의 골칫거리가 의외의 방법으로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왜 커뮤니티가 필요할까요? 바로 안심할 수 있고, 서로 부족한 점들을 커뮤니티가 채워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토하나의 목표는 ‘땅을 기름지게 하듯 사람 간 관계도 기름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함께 성장해가는 사회를 만들려 합니다. 일본사회는 고독사가 많은데, 서로 지지하면서 사는 사회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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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토하나 창립 멤버인 카네다 야스타카가 농기구 창고를 소개하고 있다. 그가 앉은 미니 수레바퀴 의자는 높이가 낮은 농작물을 이동하면서 수확할 때 사용된다. ⓒ 제주의소리

모두의 농원에 참가하는 멤버들은 서로가 영업맨이기도 하고 기획자이기도 하고 서로의 팬이자 디자이너기도 하다. 서로가 삶을 디자인하는 주인이다. 그래서 실제 코토하나가 만드는 기획은 10%도 안되고 멤버들이 대부분을 기획한다. 그래서 종종 참가자들이 ‘너희들이 뭐하고 있느냐!’고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 카네다 씨와 동료들은 ‘열심히 합시다, 할 수 있습니다’라고 응원하는 일을 한다고 답한다.

주민들의 ‘관계’에 집중한 이들의 방식은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일으켰다. 자녀 교육 말고는 대화 거리가 없었던 엄마들이 ‘자신의 꿈’과 ‘취미’를 이야기 하고 공유하기 시작했다.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살던 샐러리맨은 모두의 농원에 참가한 이후 키타카가야에 정착하기로 결정했다.

“소소한 개인들의 얘기와 변화입니다. 처음부터 사회 전체의 행복을 바라는 게 아니라 개인들의 행복 하나하나가 모이면 사회가 행복해질 거라고 봅니다. 이런 사례들을 공유하고, 이런 변화가 늘어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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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토하나(cotohana.jp) 홈페이지 메인 화면. 주민들이 '모두의 농원'을 거점으로 진행하는 다양한 이벤트들이 등록돼있다. 요리교실부터 옷 수선 워크숍, DIY 교실, 명상 수업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치시마가 보여주는 기업과 지역의 상생 모델

모두의 농원을 취재하면서 이익 극대화가 목적인 사기업이 마을 활성화의 결실을 독점하면 어떡하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불거지면 어쩌나, 애당초 부동산회사가 땅값을 올리기 위한 취지가 아니었는가 하는 의문과 염려가 자연스레 생겨났다. 코토하나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요. 왜냐면, 치시마는... 사실 좀 이상한 회사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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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시마 토지 주식회사는 마을의 현대사를 함께한 옛 주택을 재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오래된 한 다방이 되도록 원형을 유지한 채 리모델링이 진행 중이다. 치시마 측은 이 프로젝트를 '잇는 모습'이라고 이름 붙이고, 외관이나 건물이 가지는 공간의 독특함은 남기면서 이 지역에 새로운 일자리와 자원의 순환을 낳는 창조적인 거점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 제주의소리

1912년 오사카에서 무역회사로 탄생한 치시마 토지 주식회사는 현재 부동산과 항공기 대여 사업을 벌인다. 슬로건이 ‘100년 앞도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다.

코토하나의 농원 바로 옆에는 낡은 일본 전통식 건물이 한창 리모델링 중이었다. 치시마 소유의 땅과 건물이었다. 사실 다 부수고 새로 건물을 올리는 게 비용면에서 훨씬 효율적이었지만 치시마는 마을의 옛 풍광을 그대로 보존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2014년 서울 석촌호수에 전시되면서 화제를 불러모았던 대형 오리 인형 ‘러버덕’의 2009년 오사카 전시를 후원했던 곳도 치사마다. 4만2000㎡ 규모의 나무라 조선소 오사카 공장 부지를 ‘나무라 아트 미팅’이라는 예술문화활동 거점으로 변신시키고 옛 건물, 거리, 유산과 생활문화들을 보존하는 데 끊임없이 힘을 쏟는다.

치사마가 없었더라면 키타카가야에서 현재 벌어지는 실험들은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판을 깔아 준 치사마의 사례는 기업과 지역이 상생하는 좋은 방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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