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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샤먼의 고향, 어머니의 바다를 가다

2017년 08월 30일(수) 09:42
문무병 mmb5056@gmail.com

제주신화연구소는 지난 7월말 6박 7일 일정으로 몽골 북부 홉스굴 호로 향했다. 너비 36.5km, 길이 136km, 면적 2,760km²에 이르는 이 거대한 호수는 몽골에서는 샤먼의 성지로 불린다. 주민들은 이 호수를 어머니의 바다로 섬기며 살아간다. 이 곳에 얽힌 신화들은 몽골인들의 정체성과도 밀접하다.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의 생생한 홉스굴 호 방문기를 세 차례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문무병의 몽골신화기행] (1) 홉스굴 별밭에 뿌린 샤먼 축제

▲ 홉스굴 호수.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몽골 울루스(Mongol Ulus)

푸른 늑대와 흰 사슴 사이에서 태어난 몽골 사람들은 텡기스라는 호수를 건너 오논 강가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바타치칸이며, 몽골은 바타치칸의 계보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늑대처럼 용맹스럽고 흰 사슴처럼 아름다운 부족이다.

몽골이란 말은 ‘용감하다’라는 뜻이다. 서쪽으로 알타이 산맥과 동쪽으로 흥안령 사이에 자리 잡은 몽골고원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80만 년 전. 유목을 하며 이리저리 바람처럼 떠돌던 부족들을 모아 묵선특우가 흉노를 세운 것은 기원전 209년. 이후 몽골고원의 주인은 선비, 유연, 돌궐, 위그르, 거란족으로 이어지다가 금나라에 정벌된다.

이후 칭기스칸이 흩어진 부족들을 모아 1206년 몽골제국, 몽골 울루스를 세웠다. 흔히 몽골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18개의 부족이 합쳐진 연합체였다. 그래서 몽골이라는 나라를 ‘몽골 울루스(Mongol Ulus)’라 한다. 그 가운데 79%를 차지하는 종족이 할하족이다. 그 밖에도 여러 부족이 몽골에 살고 있다.

홉스굴 부근에서 순록을 키우고 살고 있는 차탕족을 비롯해, 다르하드족, 수흐바타르 아이막의 다리강가족, 알타이 서단의 카자흐족, 드르브드족, 읍스 아이막의 바야드족, 도르노드 아이막의 바르가족, 헨티 아이막의 브리야트족 들이 공존하고 있다.

몽골 사람들은 강하다. 몽골 사람들은 신명을 낼 줄 안다.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음주가무에 능하다. 감성이 풍부해, 가슴에 맺힌 슬픔의 정서가 깊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신명도 넘쳐난다. ‘신들렸다’는 말이야말로 몽골 사람의 집단적인 정서인 것 같다.

▲ 오시깅 으브르의 사슴돌.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사슴돌의 사연

몽골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사슴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몽골사람들은 도끼나 창에 사슴의 문양을 새겨 사후의 저승길을 지켜주는 무기로 삼았다. 사슴은 인간과 신을 연결해 주는 영적인 존재,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데려다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냥꾼에 쫓긴 사슴은 자신을 살려준 나무꾼에게 선녀를 아내로 얻게 해 준다는 설화는 몽골 브리야트 족 신화에도 그대로 전해온다. 알타이 산맥 부근에서부터 나타나는 사슴돌은 중부 평원을 지나 홉스굴 방면으로 이어진다.

초기에는 자연석에 사슴의 전신을 사실적으로 새겼으나, 이후에는 상징적인 사슴의 문양을 새기다가 홉스굴 일대에 이르러서는 사슴의 문양 위에 사람의 얼굴을 새겨 넣었다. 홉스굴 가는 길목의 무릉에서 동북 방향으로 20킬로미터 떨어진 오시깅 으브르(Uushgiin Uwur)에는 14개의 사슴돌이 있었다.         

몽골 전역에서 발견되는 사슴돌은 일종의 종교적 또는 영적인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전 세계에 700개의 사슴돌이 있고 그중 500개가 몽골에 있는데, 오시깅 으브르 사슴돌 중 가장 독특한 14번 사슴돌은 머리 부분에 여자 모양이 새겨져 있다. 이 사슴돌들은 2500~4000년 정도 되었으며, 인근 산맥에는 약 1400기의 무덤이 남아있다.

▲ 홉스굴 호수.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홉스굴 호 앞에서 나는 아팠다

#1. 하트칼, 하늘 올레에서

이곳은 태초의 옛 선생, 심방 중의 큰 심방, 홉스굴 하트갈(Khatgal) 마을에서 순록지기 차탕족의 샤먼이, 제주의 큰 심방보다 크고 오랜 태초의 큰 심방 몽골의 심방, 보우(Buu)가 제주에서 찾아온 소무(小巫)들을 기다리는 하늘올레였다.

나도 몽골에 가면서 샤먼의 본산인 몽골에 가면 무엇을 얻을 수 있으리라 꿈을 꾸었다. 그런데 나는 홉스굴이 가까워 오자 거꾸로 가는 시간의 버스를 탄 것 같아 놀랐고 주위에 소리치며 반은 미쳐버렸다. 신병이었다. 뒷날 16시간의 지옥여행이 없었다면 미친 게 분명했다.

하늘가는 길, 홉스굴 입구 샤먼의 땅 하트갈에는 순록지기 차탕족의 샤먼이 순록과 함께 우리들의 적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작은 시장에서는 순록의 뿔로 만든 원시의 공예품들을 팔고, 관광객에게서 생필품을 구하는 시간과 공간이 한꺼번에 옛날로 와버린 신과 인간과 샤먼이 만나는 하늘올레, 홉스굴 차탕족의 샤먼이 우리를 기다리는 하트갈은 신시(神市)가 서고 있었다. 

▲ 하트갈에서 살고 있는 차탕족.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 하트갈의 순록.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2. 차탕족과 순록

홉스굴 호 하트갈 마을에는 ‘차탕족’이라는 순록치는 샤먼들이 살고 있었다. 고대부터 홉스굴 산속 타이거 지대에 살면서 홉스굴의 남쪽 끝 하트칼 마을에 내려와 사람을 만나 굿도 하고 병도 고치는 차탕족의 샤먼은 오로지 순록을 길러서 생계를 이어왔다 한다.

순록의 젖을 짜서 치즈를 만들고 뿔은 조각품을 만들거나 약용으로 썼다. 순록 수컷은 90kg까지 짐을 실을 수 있으며, 매우 드물긴 하지만 그 고기를 먹기도 한다. 차탕족은 현재 230명, 몽골에서 가장 적게 남아있는 순록과 함께 사는 슬픈 민족이었다.

그들은 진정한 유목민으로서 순록이 좋아하는 특별한 풀과 이끼를 찾아 작은 야영지 ‘아일’을 자주 옮겨 다닌다. 차탕족은 게르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티피와 비슷한 오르츠(orts)에 산다. 오르츠는 전통적으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지만 이제는 상점에서 캔버스 천을 사서 만들고 있었다.

샤머니즘은 차탕족에게 중요한 삶의 일부다. 샤먼은 질병을 전통적 방식으로 고치는 치유의 역할도 하는데 차탕족은 가구마다 충분한 순록을 보유하며 완전한 자급자족 생활을 한다. 가을이 되면 딸기류, 잣, 야생감자를 따고, 생계수단으로 가능할 때 낚시와 사냥을 한다. 

홉스굴이란 ‘푸른 물’이란 뜻이다. 푸른 물의 홉스골을 그냥 ‘달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달라이’는 ‘바다’라는 뜻의 몽골말이다. 길이가 134km나 되고, 폭이 39km에 수심이 238m나 되며 면적이 2612㎢나 되는 홉스굴은 제주도가 풍덩 잠길 만한 면적이다.

과연 어머니의 바다라 불릴만 한 홉스굴은 99개의 강이 흘러들어와 고인 호수로 에끄인 골(Egiin go)이라는 강만이 빠져나가 바이칼로 흘러간다. 세상의 모든 물들을 받아들인 바이칼은 다시 하나의 강으로 흘러나가 바다로 향한다. 여기 홉스굴에 사는 차탕족은 고비의 유목민들과 달리 양 대신에 순록을 기른다.

순록은 양들과 달리 타이거 삼림 지대의 추운 지역에서 살며 이끼를 먹고 사는 순록들을 따라 이동하며 사는 차탕족은 현재 230명 정도 남아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부족이다. 시골의 작은 학교 운동장마저 채우지 못할 종족의 현실이 너무 슬펐다.

그들은 어째서 따뜻한 초원에서 양을 기르지 않고, 살기 힘든 곳에서 고생을 사서 할까. 그것은 순록 때문이다. 차탕족이 순록을 길들인 것은 소금이었고 염분이 부족한 순록들은 차탕족이 주는 소금을 얻어먹기 위해 그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홉스굴에 가면 더 이상 유목을 하지 않고, 한 자리에 정주해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며 살아가는 차탕족들도 있다.

차탕족의 생활은 몽골의 다른 유목민들에 비해 훨씬 원시적이다. 나무를 얽어서 지은 오르츠며, 땅바닥에 피운 모닥불은 고대의 생활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순록을 타고 다니며, 순록의 고기와 가죽으로 생활해 나가는 그들은 순록의 곁을 떠날 수 없다.

홉스굴에 사는 차탕족은 아이가 태어나면 홉스굴 호수의 물부터 떠 먹였다. 그리하면 아이들은 모친을 기억하는 연어처럼 평생 홉스굴을 잊지 않는다. 그것이 순록이나 차탕족이나 홉스굴을 떠날 수 없는 운명이다.

▲ 하트갈의 시장.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 홉스굴 호수의 성황당.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3. 몽골의 굿

몽골 심방(보우)이 약풀의 연기향으로 정화의식을 하더니 밖으로 나가 고수레를 하고 들어와 옷을 무복으로 갈아입었다. 벽에는 두 종류의 옹고드를 설치했는데 왼쪽 것이 차탕족 것이고, 오른쪽 것이 탈하드족 것이었다. 탈하드의 옹고드에는 구리 명두, 북, 토끼가죽, 담비가죽, 야크, 염소, 매의 날개쭉지, 푸른색 비단, 푸른 매듭끈 등 각종 무구, 신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탈하드족의 옹고드는 다채롭고 복잡했으며 차탕족의 것은 단순하게 3인의 형상을 한 신인(神人)을 천으로 만든 벽화였다. 이 3인은 가족지킴이, 부족지킴이, 이웃지킴이로 세 신인은 푸른 천으로 연결돼 있어 정기가 서로 통한다는 의미를 띈다.

신을 부르는 심방(보우)은 말을 타고 하늘에서 신이 내려오도록 옹고트 악기를 연주했다. 말이 하늘에서 하강하는 듯, 바람결을 타고 말 달리는 듯한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심방은 처음에 사방으로 춤을 뿌리는 동작을 하다가 북을 점점 빠르게 치면서 높이 하늘로 손을 번쩍 치켜 올리며 도약하는 춤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데 이것은 하늘의 천신과 접신하는 것이라고 했다. 움추렸다가 활갯짓을 하고 북에 얼굴을 묻고 북을 두드리며 빙빙도는 춤을 반복했다.

북으로 얼굴을 가리고 주문을 외는데 여기 모인 사람들의 안녕을 빌고 복을 주는 주문이란다. 심방은 원래 복을 주고 액을 막는 기능을 가진 자라며 굿이 끝나고도 자이랑(남자심방)은 그것을 강조했다.

더 큰 초능력이 있는 심방은 자연의 재해까지 막아주고, 날씨도 변화를 일으킨다고 한다. 몽골의 굿을 보면서 그들이 숭배하는 탱그리, 하늘신에 대한 이해할 필요했다. 몽골은 하늘신이 종류도 많고, 신화도 많은데 굿의 신화는 창세신화, 토템신화, 인류탄생신화이며 천지인의 신화였다.

▲ 홉스굴 호수 인근에 있는 게르. /사진 제공=문무병 ⓒ 제주의소리

#4. 몽골의 샤먼 보우

샤먼의 본산은 몽골로 알려져 있다. 몽골어로 ‘보우(Buu)’라 불리는 샤먼은 흉노시대 이전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 몽고 전역에 퍼져 있다. 주로 조상신을 불러 빙의하는 샤먼의 의식은 우리의 굿과 다르지 않았다. 남자 보우를 자이랑(Zairan)이라 부르고, 여자 보우를 오뜨강(Udgan)이라 불렀다.

예로부터 몽골인은 ‘하늘(Tenger)을 섬기는 민족’이라고 불러 왔다. 몽골 샤먼이 섬기는 하늘은 주로 ‘하르방’이나 ‘할망’으로 불리는데, 그들이 섬기는 하늘의 신 55가지의 ‘하얀 하늘’과 44가지의 ‘검은 하늘’로 나뉜다. ‘하얀 하늘’은 소원을 들어주는 착한 신이고, ‘검은 하늘’은 악령을 쫓거나 저주와 병마를 주관하는 나쁜 힘을 다스리는 신으로 구별된다.

대체로 남성을 ‘검은 사람’이라 하고, 여성을 ‘하얀 사람’이라 하는데 대체로 몽골 샤먼 보우는 짐승들의 이빨이나 발톱, 가죽, 깃털 등으로 장식한 복식에 눈이 그려진 모자를 쓰는데, 모자의 앞면에는 가느다란 끈 장식이 늘어져 있어 얼굴이 내보이지 않는 가면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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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
무구로는 북과 ‘타야크트’라 불리는 지팡이, 호르트라 불리는 악기가 있다. ‘헹그렉트’라 불리는 북은 천마를 상징하고, 북채는 채찍을 상징한다. 한쪽에만 가죽을 씌운 북은 손잡이가 달려 있으며, 원시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북은 하늘의 신에게 서원을 전달하는 도구로 털로 감싼 북채로 두드리며 주문을 왼다. ‘호르트’는 입에 물고 튕겨서 소리를 내는 무구다. 몽골 샤먼 보우의 본산은 몽골 북부의 홉스굴 주변으로 알려져 있다.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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