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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2017년 12월 11일(월) 08:41
이유선 교수 news@jejusori.net

[BOOK世通, 제주 읽기] (77) 로버트 노직『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이유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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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노직『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김한영 번역.김영사. 2014년.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

철학에 입문하는 사람이 제일 처음 접하는 이야기는 철학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관련된 것이다. 철학(philosophy)이란 희랍어로 사랑을 뜻하는 philos와 지혜를 뜻하는 sophia가 결합된 단어로서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는 것이다. 지혜를 사랑함으로써 철학을 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가 될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럼에도 오늘날 현실적으로 철학을 공부해서 지혜로운 자가 된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다. 물론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 먼저 해명되어야 하겠지만, 적어도 그런 말 속에는 바람직한 삶의 유형에 대한 평가가 내재되어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적어도 고대 희랍인들의 머릿속에서는 철학을 한다는 것과 바람직한 삶을 산다는 것이 분리되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오늘날 철학자들은 바람직한 삶을 살기 위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어떤 분야의 논제를 가지고 다투는 논쟁적인 전문가로서 키워진다. 철학의 여러 분야에서 다루는 문제들을 대충 훑어보더라도 당장 나의 삶을 의미 있는 삶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는 동떨어진 문제들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인식론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진리를 알 수 있는가? 진리란 존재하는가? 하는 등의 문제, 사회철학에서는 자유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하는 등의 문제, 과학철학에서는 과학적 지식은 실재를 향해 접근해 가는가? 과학적 설명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등의 문제, 그리고 언어철학에서는 언어가 실재를 지시하는가? 하는 등의 문제, 윤리학에서는 도덕성이란 존재하는가? 도덕적 판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하는 등의 문제를 다룬다. 이런 물음들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질 수 있고 또 그것을 옹호할 논변을 전개할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다고 해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는 그저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서 논쟁을 잘 하는 사람일 것이다. 

만약에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란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철학적인 물음들은 우리의 현실적인 삶의 맥락 속에서 좀 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삶에 대한 더 직접적인 성찰의 전통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나 몽테뉴의 『수상록』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오늘날 철학자들은 그런 저작들을 철학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삶에 대한 성찰과 철학적 논제를 다루는 것이 서로 다른 것이라면 도대체 철학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성찰하는 삶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를 주장한 철학자로 잘 알려진 로버트 노직의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원제는 성찰된 삶(The Examined Life))는 삶에 대한 직접적인 성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노직은 1970년대 존 롤즈의 『정의론』에서 주장된 재분배론에 반대해서 자유롭게 형성된 시장 질서만이 유일하게 정당하다고 주장함으로써 하이에크와 더불어 보수주의적 자유주의자로 꼽혔다. 그런데 노직은 이 책에서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자유지상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의 주저 Anarchy, State and Utopia(우리말 제목은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 왜 번역본은 원래의 책 제목을 모두 바꾸는지 이해할 수 없다)가 체계적이고 논증적인 방식으로 서술된 이론서라면 The Examined Life는 좀 더 자유로운 형식의 에세이집이라고 할 수 있다. 서문에서 노직은 한 사람의 삶이 미성숙한 청소년기에 형성된 불완전한 세계관에 의해 일평생 영향을 받고 그것에 의해 좌우된다면 얼마나 부적절한 일이겠느냐고 묻는다. 우리의 삶을 끊임없는 성장의 과정이라고 보았던 철학자 존 듀이와 마찬가지로 노직 역시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삶을 단지 숙고하고 그것에 대한 이론을 만드는 것 이상의 것이라고 지적한다. 삶에 대한 성찰은 어떤 지점에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삶에 관한 철학적 명상은 이론이 아니라 초상화를 보여준다”(5쪽)라고 말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로버트 노직의 자화상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이 자화상 속에는 그의 정체성을 형성했다고 할 만한 자유지상주의를 부정하는 대목이 포함되어 있다.

“자유롭고 자발적 교환, 시장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생산자의 경쟁, 외부의 위압적 간섭이 없는 상황에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 거래 당사자로서 기능하는 국가, 각 개인이 서비스에 대한 보상으로 타인이 정한 것을 받는 방식,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원리. 이 자본주의적 이상은 다음의 측면들과 짝을 이루는 동시에 그것들을 은폐한다. 국제적 약탈, 기업들이 외국이나 국내 정부에게 뇌물을 주고 특권을 얻어 경쟁을 피하고 특별한 지위를 이용하는 형태, 한정된 사적 시장을 묵인하는 (종종 고문에 의존하는)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경향, 자원이나 시장을 얻기 위한 전쟁, 감독자나 고용주가 노동자를 지배하는 경향, 기업이 제품이나 제조 공정의 유해한 영향을 은폐하는 경향 등. 이는 자본주의적 이상이 실제로 작동할 때 나타나는 어두운 측면이다.”(398쪽)

물론 자본주의에 대한 이런 비판은 공산주의, 기독교, 민족주의 등의 다른 이상들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될 수 있는지에 대한 비판과 병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시장질서에 입각한 자유지상주의만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자신이 “예전에 옳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독특한 견해를 담은 정치철학 책을 발표한 적이 있다”(13쪽)라고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 Anarchy, State and Utopia에서 개진된 관점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노직은 이 책에서 행복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지, 부와 권력에 대한 집착이 왜 문제가 되는지, 사랑의 가치는 무엇인지, 지혜란 무엇인지, 진실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신이 왜 악을 허락했는지, 우리가 더 진실한 삶을 살 수 있는지 등을 묻는다. 물론 이 물음들은 논증을 통해 다루어지기보다는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이 서술된다. 독자는 노직의 초상화를 감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노직은 성찰되지 않은 삶은 무가치하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평가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반드시 성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성찰이란 이론적인 숙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삶에 대해 내린 결론을 이해함으로써 그 개인들을 평가하고 고찰하는 것을 뜻한다. 노직의 이 책은 소크라테스, 예수, 몽테뉴, 소로, 부처 등의 삶에 대한 결론에 대해 노직 자신이 평가하고 고찰한 결과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다시 노직의 삶에 대한 결론을 이해함으로써 노직이라는 개인을 만나고 그를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노직 자신이 Anarchy, State and Utopia라는 책의 저자로 그치지 않고 이 책의 저자로 평가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가 얼마나 성찰된 삶을 산 철학자인지 드러낸다. 고대 희랍인들이 생각했던 지혜에 대한 사랑은 때때로 철학자의 잘 알려지지 않은 책에서 은연중에 발견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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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선 교수

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 철학박사
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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