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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투어리즘, '다크' 혹은 '투어리즘'만 남아선 안돼"

2017년 12월 29일(금) 15:47
한형진 기자 cooldead@naver.com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최근 관광, 역사, 사회학계 모두에서 주목받는 개념이다. 과거 국가 권력이 저지른 폭력의 기억, 현장을 돌이켜보면서 오늘 날 반성과 깨달음을 얻는다. 제주의 경우 4.3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진지동굴, 알뜨르비행장 등 다크 투어리즘으로 활용할 다양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 공습이 벌어진 하와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제주도 다크 투어리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세 차례에 걸쳐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하와이와 제주, 그리고 다크 투어리즘] ③ 결국은 콘텐츠...한·일·대만 연계 네트워크 주목

다크 투어리즘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몇 년 전 야간관광에 대한 사업 제안서가 제주도청 모 부서에 제출됐다. 제안서에는 다크 투어리즘이란 용어가 등장했는데, ‘Dark Tourism’을 야간관광으로 오해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건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지금도 다크 투어리즘은 제주에서 일반적인 개념은 아니다. 다만 관련한 논문·저서 등의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내년 4.3 70주년을 앞두면서 주목할 만 한 움직임들이 눈에 띄고 있다. 4.3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제주다크투어’라는 비영리 단체도 최근 출범할 정도다.

다크 투어리즘의 정의에 대해 문순덕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재난, 재해, 역사적 참상 등 암울하고 비극적인 현장을 둘러보고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이라고 보고서 ‘제주지역의 다크 투어리즘 현황과 활성화 방안’(2013)에서 규정했다.

그 중에서도 역사적 참상의 비중이 높은데, 제1~2차 세계대전, 동서냉전을 거치면서 벌어진 전쟁, 학살 등의 참사가 주로 해당된다. 때문에 다크 투어리즘의 용어와 개념이 보다 구체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시기 역시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제주에서 다크 투어리즘이 처음 등장한 건 2006년 11월 (사)제주민예총이 개최한 정책심포지엄 ‘4.3문화예술운동의 과제와 60주년’으로 알려졌다. 당시 발표자였던 정근식 교수(서울대 사회학과)는 “4․3유적지를 중심으로 4․3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이에 기초해 한국의 평화통일이나 동아시아 평화를 기원하는 다크 투어리즘의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4.3을 겪은 생존자 세대가 점차 사라지고 동시에 4.3에 대한 기억이 점차 박제화 되는 흐름에 맞서, 기억을 남겨서 보존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역사 투쟁'의 또 다른 방식인 셈이다.

제주에서 다크 투어리즘의 가능성을 내포한 자원은 섬 전역에서 비극이 벌어진 4.3을 비롯해 일제 군사시설(알뜨르비행장, 진지동굴, 비행기 격납고), 6.25전쟁 군사시설(육군 제1훈련소, 해병대 훈련 시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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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뜨르비행장과 비행기 격납고.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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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에서 제작한 제주4.3 유적지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그러나 이것들을 자신 있게 다크 투어리즘이라고 부를 만한 구체적인 형태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걷고 둘러보면서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설명을 듣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평화대공원 같은 정책적인 시도 역시 여러 차례 있어왔지만 흐지부지 됐고, 시설 개·보수나 기념비 설치 같은 파편적인 수준에 그친다. 최근 알뜨르비행장의 경우, 제주도립미술관의 국제미술행사 ‘제주비엔날레’ 무대로 활용되면서 올해 포함 3년간 사용하기로 국방부와 합의해 향후 가능성을 열어놨다.

전문가들은 다크 투어리즘의 성공을 위해서는 ▲지나친 관광화 경계 ▲2차, 3차 콘텐츠와 연계 등을 강조한다.

2008년 발표한 논문 ‘제주4․3의 기억과 다크 투어리즘-사회운동으로의 전망’에서 현혜경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위원은 “4.3관련 다크 투어리즘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따라 ‘다크’만 남을 수도 있고, ‘투어리즘’만 남을 수도 있다”고 일종의 경고음을 울렸다.

현 위원은 “다크 투어리즘의 출발은 사회문화운동 영역으로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다크 투어리즘이 4‧3의 참배객을 확대시켜 4‧3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고 지속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러한 힘은 사회문화운동 속에 내재해 있다”고 밝혔다. '역사'라는 중심을 흔들리지 않게 잡고 '관광'을 실현시키는 제도적, 산업적 보완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21세기 다크 투어리즘》(도서출판 누리)을 펴낸 김석윤 관광학 박사는 최근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다크 투어리즘은 어떤 형태로든 콘텐츠화 하는 단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콘텐츠에 대해 잘못 오해하면 조형물, 기념비 같은 시설물만 세우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것은 일종의 사실을 표시하기 위한 이정표 역할일 뿐”이라고 콘텐츠 연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회적기업으로 최저 생계를 보장하며 원도심 투어, 해설사 양성 등을 진행하는 광주5.18민주화운동 사례를 들었다. 김 박사는 “광주의 경우, 5.18과 관련한 공간과 시설을 한 바퀴 둘러보고 마지막에 연극 공연을 관람한다. 이렇게 다크 투어리즘에 콘텐츠를 도입하면 공감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견해를 성찰의 과정에서 모아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 거리를 묶어내는 스토리텔링 작업, 역사를 바탕으로 2차·3차로 가공하는 콘텐츠를 다크 투어리즘의 필수 요소로 강조했다.

앞서 살펴본 미국 하와이 진주만의 경우,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엄숙한 추모공원이라는 기본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방문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USS 애리조나 기념관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진주만 공습 당시 촬영한 실제 영상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반드시 시청해야 한다. 공식 기념품 판매소에는 진주만을 소재로 한 영화, 영상, 문학 등의 작품이 대거 진열돼 있다. 1940년대 음악을 묶은 앨범, 공습 당시 신문, 군번줄과 기념메달, 3D VR 프로그램 등 여러 아이디어 상품도 함께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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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SS 애리조나 기념관을 방문하기 전에 반드시 시청해야 하는 영상. 진주만 공습 당시 실제 촬영한 영상을 묶은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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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만 관련 영상, 음반들이 대거 진열돼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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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품 판매점. ⓒ제주의소리

이와 별도로, 유사한 역사를 공유한 국가들이 함께 다크 투어리즘을 고민하는 연대 역시 내년부터 본격화 될 예정이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가칭 ‘동아시아 평화관광연구 네트워크’에는 제주(4.3), 일본 히로시마(원폭), 홋카이도(결1호 작전), 대만(2.28) 등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따로 떨어뜨려 놓으면 각자의 아픈 역사지만, 하나로 묶어낼 경우 역사의 흐름이란 힘을 가지는 만큼 향후 제주 다크 투어리즘 발전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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