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oTalk_20180206_141222046.jpg
▲ 이천순 할머니가 15년 넘게 살고 있는 집. 제주시가 주거취약가구로 선정, 거주자에 대해 보호체계를 가동 중인 곳이다. 외부 단열이나 변변한 마감도 없이 시멘트 블럭으로만 허름하게 지어진 집이 눈 속에 고립(?)되어 있다. ⓒ제주의소리

[현장] 폭설 나흘째 오름 중턱 독거노인 찾아가보니...장애로 요리도 못해 지원물품 의존 

나흘째 폭설과 한파가 닥친 6일. 너무 외져서 제설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삿갓오름(입산봉) 중턱에 쓰러질 것만 같은 허름한 집에서 간간이 기침소리가 흘러 나온다. TV를 보던 이천순(75) 할머니가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신다. 새해 들어 할머니를 찾은 사람은 사회복지 공무원을 제외하고, 기자가 처음이라고 했다.

뇌병변장애,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 각각의 단어가 사람들의 가슴을 아리게 하지만, 이 할머니는 이 모두를 한꺼번에 달고 산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식구같은 백구 두마리가 눈밭에서 뒹굴 뿐이었다.

한라산 어리목에 100cm가 넘는 눈이 쌓인 정도로 폭설이 내린 이날, 고립무원(孤立無援)의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사실상 TV를 보는 일 밖에 없었다. 

그것도 송신기 문제 탓인지 TV에서 나오는 채널은 지상파 단 두 개. 그래도 혼자 지내는 할머니에겐 유일한 벗(?)이다.    

KakaoTalk_20180206_141220141.jpg
▲ 이천순 할머니의 집으로 가는 삿갓오름 주변 돌담길. 너무 외진데다, 길도 좁아 제설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대문엔 각종 고시서와 행정기관에서 보내온 우편물들이 제법 쌓였지만, 몸이 불편하거니와 폭설까지 내려 대문까지 나올 엄두를 못낸듯 했다. 아닌게 아니라 새해 들어 대문 밖으로 나간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약 20년 전에 제주에 왔다. 장애를 앓고 있는 할머니는 자신이 언제 제주에 왔는지 정확한 시기를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과거를 떠올리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독거노인.jpg
▲ 이천순 할머니가 "겨울 폭설보다 더 추운건 외로움"이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제주의소리
제주에 와서 김녕에 집을 빌려 살았다. 식당에서 설거지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그렇게 5년을 지내다 지금의 삿갓오름 중턱으로 집을 옮겼다. 제주에서 만난 어떤 할아버지의 집이었다. 당시 할아버지도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지금의 집이 누구의 집인지도 알지 못한다. 지난해 할아버지가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흘려듣기로 일본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의 농장이고, 할아버지가 농장 관리를 위해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는 것 정도다. 할아버지까지 세상을 뜨면서 갈 수 있는 곳이 없어 계속 머물고 있다. 그렇게 15년 넘게 둥지를 틀었다.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할머니는 갑자기 몸에 이상을 느꼈다. 관절 곳곳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돈이 없어 병원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스스로도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뇌병변장애 4급. 그렇게 10년째 병원을 다니고 있다.

이 할머니에게 삼시세끼는 다른 사람 얘기다. 대부분 하루 한 끼로 버틴다. 

매주 월, 수, 금요일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독거노인 도시락이 배달된다. 플라스틱 통 5개에 담긴 밥과 국, 세가지 반찬.

전날(5일)에도 도시락이 와야 했지만, 폭설로 배달이 이뤄지지 않았다. 

제주도는 폭설이나 집중호우 등으로 도시락을 제때 배달하지 못한 경우 나중에 유통기한이 넉넉한 제품으로 대체해 공급한다. 공백이 발생할 경우에는 끼니를 자체 해결할 수 밖에 없다.   

사회복지 공무원은 매주 2차례 할머니를 찾는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전화로 필요한 것들을 요청한다. 공무원이 해당 물품을 구입해오면 할머니가 돈을 내는 식이다. 

할머니는 몸의 이곳저곳이 굳어 제대로 요리도 할 수 없다. 만들어진 음식을 먹을 뿐이다. 오래전 선물 받은 유자차 뚜껑을 열지 못해 기자에게 부탁할 정도였다.

▲ 이천순 할머니는 하루 한끼로 보내는 날이 대부분이다. 밥상도 펴지 못한채 할머니가 오늘(6일) 드시던 식사를 남겨둔 쟁반 위의 냄비와 김치 반찬통이 쓸쓸하게 방 한쪽에 놓여 있다. ⓒ제주의소리

할머니의 창고(?)같은 집은 예상대로 열악했다. 단열 시설이 되지 않은 것은 당연하고, 차디찬 방바닥에 오직 전기장판과 담요에 의지한채 이 겨울을 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미각이 약해져 점점 단 음식을 찾기 마련이다. 할머니도 단 것이 먹고 싶지만, 자신에게는 사치라고 생각한다. 그 돈을 아끼고 아껴, 믹스 커피를 사서 끼니처럼 마신다.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시냐' 묻자, "삶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반복해서 '그래도 꼭 필요한게 있으실 것 아니냐"고 집요하게 묻자 할머니는 교통비 얘기를 꺼냈다.

독거노인부엌.jpg
▲ 살림살이가 길게 늘어져 있는 할머니의 부엌. 홀로사는 어르신의 고단한 삶이 엿보인다. ⓒ제주의소리

“노인들에게 지원되는 교통비가 있는데, 그거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어디 갈 데도 없고, 몸이 불편해 집에만 있는데 어디에 쓰겠어. 차라리 돈으로 주면 밥이라도 사먹지”

노인에게 지원되는 교통비는 다른 목적으로는 쓸 수 없게 돼 있다. 

그냥 나오면 실례라는 생각에 할머니가 버리려고 놔둔 쓰레기를 가는 길에 버리겠다며, 억지로 가져 나왔다. 할머니는 극구 만류하다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마지막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인근 가게에서 단 맛이 나는 빵과 과자, 커피, 반찬 등을 사서 다시 찾아가자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내가, 내가 이걸 어떻게 받나. 손이나 한 번 잡아보자. 잘 먹을게. 운전 조심히 해서 가”

제주도에 따르면 제주시 지역 독거노인은 7249명, 서귀포시는 3425명이다.

또 이 할머니처럼 '주거취약가구 SOS 긴급지원단' 명단에 오른 가구는 제주시 20가구, 서귀포시 14가구다. 이들은 특별관리 대상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매일매일 안부전화와 함께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구호물품 제공과 병원 이송 등이 진행된다. 

올 겨울 유난히 폭설이 잦은데도 이들이 잘못됐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은 다행중 다행이다.  
▲ 기자가 쓰레기를 대신 버리겠다고 하자 막아선 할머니.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