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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중학생의 피 묻은 발제문

2018년 02월 13일(화) 08:37
오승주 news@jejusori.net
언제부턴가 입시의 도구로 전락한 10대들의 글쓰기. 결국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도,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없는 글쓰기다. ‘글은 곧 자기 자신’이다. 자기 생각과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고, 일상적이고 소박한 삶의 결이 드러나는 10대들의 진짜 글쓰기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선명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10대들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최근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펴낸 오승주 작가가 지난해 제주도내 중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 교감했던 사례들을 접목시킨 귀 기울일만한 10대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싣는다.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연재다. 매주 1회, 총 30회 집필을 예정하고 있는 이 코너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세상을 바꾸는 10대들의 글쓰기] 6. 《집 잃은 개-논어 읽기 새로운 시선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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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는 스스로 미끼가 되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몸은 누더기가 될 정도로 버림받았고, 동네북이 될 정도로 조롱을 당하면서도 주유천하를 이어간 것은 ‘적(敵)’들이 누구인지 분명히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사진=오승주. ⓒ제주의소리

내가 겪는 폭력과 고통을 분명히 봐둬

공자는 실패 전문가였습니다. 

노나라의 개혁도 실패했고, 중국 여러 나라의 권력자를 설득해 나라를 변화시키는 기회를 얻는 데도 실패했습니다. 권력자들에게는 무시를 당했고, 은둔자들에게는 조롱을 당했습니다. 권력자를 만날 기회가 생기면 백성의 편에 서서 지도자의 게으름을 질타하니 권력자가 공자를 곱게 볼 리가 없었습니다. 세상이 더러워서 숨어 살던 은둔자의 입장에서는 되지도 않는 일에 애쓰면서 벼슬자리나 구걸하러 다니는 공자의 모습이 위선적이고 구차해 보였습니다. 

“천박하구나, 깽깽거리는 소리여!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두면 될 텐데.”(《논어》, 「헌문」)라며 공자의 석경 연주를 비난하던 삼태기 짊어진 사람의 말이 당시 분위기를 잘 말해줍니다. 

공자가 2018년 대한민국, 제주도에 산다면 좋은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요? <제주의소리>에 칼럼을 쓴다면 어떤 댓글이 달렸을까요? 물론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저는 비관적으로 전망합니다. 공자가 역사상 어느 시대에 태어나건 환영을 받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공자는 왜 그런 삶을 택했을까요? 오랫동안 저를 사로잡는 고민이었습니다. 욕먹고 마음 편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공자는 이런 처지에 대해서 별 반응을 남기지 않았지만, 공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은 있습니다.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은 의를 무시하는 것이다. 장유(長幼)의 예절은 폐지할 수 없으면서 군신(君臣)의 의는 왜 없애려고 하는가? 자기 몸을 깨끗이 하고자 하면서 중대한 인륜을 어지럽혔다. 군자가 벼슬하는 것은 그러한 의를 실행하기 위함이다. 도가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논어》, 「미자」 편)

물론 나만의 상상이겠지만, 공자는 스스로 미끼가 되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몸은 누더기가 될 정도로 버림받았고, 동네북이 될 정도로 조롱을 당하면서도 주유천하를 이어간 것은 ‘적(敵)’들이 누구인지 분명히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언론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대한민국의 여론을 1% 정도 바꿔보려고 애썼던 적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2010년 서울 중앙지검 앞에서 동료들과 ‘떡검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입니다. ‘삼성 장학생’으로 불리던 법조인들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사건을 풍자했었죠. 그때 느낀 점은 일상에서 느낀 불합리한 일은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움직이면, 가만히 있던 주변의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 나를 향해 공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활동하던 단체는 종로경찰서에서 요주의 단체로 지목되었다고 시민단체 선배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리고 국정원은 조계사에서 사랑의 라면탑 쌓기 행사를 무산시키기 위해서 주지스님에게 압력을 넣었다가 들통이 나 연일 언론의 비판을 받은 끝에 국정원 직원 조계사 출입 금지 조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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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서울 중앙지검 앞에서 동료들과 ‘떡검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입니다. ‘삼성 장학생’으로 불리던 법조인들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사건을 풍자했습니다. 사진=오승주. ⓒ제주의소리

영화배우 주드 로가 주인공을 맡아 스나이퍼로 출연한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츠(Enemy At The Gates, 2001)>가 있습니다. 주인공의 동료는 적의 좌표를 알려주기 위해서 목표물이 되어 죽습니다. 저는 공자가 목표물이 되어서 제자들과 후세의 뜻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 좌표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중학생들이 보여준 발제문을 헛되이 하지 않아야 한다

“오빠가 갑자기 내 얼굴을 베개로 때려서 내가 욕쓰니까 나보고 넌 이제 나한테 뒤졌다고 했다. 
“내가 내 양말 신었는데 자기 양말이라고 벗겼다. 오빠가 내 병아리 양말을 신어서 늘어났다. 
"내가 자고 있는데 이불을 뺏고 자기가 덮었다. 오빠가 내 옷을 입었다.”
“내가 예전부터 만든 장난감들을 모두 한번에 상자에 넣어서 모두 부서져버렸다. 아주 슬펐다.” 
“내가 부모님께 혼날 때 부모님은 엄청 뭐라 하시는데 가끔은 내 생각에 부모님이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서 설득하려 하면 잘 듣지도 않고 말대답이라고 했다.” - 어느 중학생의 글

저는 학생들에게 ‘기록’을 권하고 싶습니다. 자신들이 당했던 것을 블로그든, 일기장이든 미래의 역사가들이 발굴할 수 있는 형태로 남기는 건, 미래를 확실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물론 그런 기록이 당장의 현실을 바꿀 수는 없을지도 몰라요. 진정한 변화는 ‘다음 판’에 반영됩니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말과 행동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했다가 공자 사후에 모은 기록입니다. 이름이 논어(論語)인 까닭은 ‘공 선생님 기록편찬위원회’(가칭)에서 공자의 제자들이 모아 놓은 기록을 책에 담을지 여부를 갑론을박하면서 기록했다는 의미입니다. 공자의 제자들이 증자(曾子), 유자(有子)라고 표현하고 그들의 임종시 발언까지 수록된 것으로 보아 공자가 가르쳤던 제자가 아니라 제자의 제자, 즉 공자의 손제자(孫弟子)에 의해서 완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아주 많은 뜻 있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될까’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피를 안 흘릴 순 없겠지만, 피 한 방울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제주에서도 많은 피가 쏟아졌죠. 

역사를 공부하면서 피를 좀 덜 흘리면서 민주주의를 견인하고 미래를 잡아당기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그건 비명을 크게 외치는 것입니다. 많은 피를 흘리면서도 침묵하면 상대방은 내가 괜찮은지 알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가 아프다고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면 움찔합니다. 학생들은 자신을 아프게 하는 사람 얼굴에다 대고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그랬다가는 더 맞는다고요? 그럼 친구에게 카톡, 페이스북 메시지, 아니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대로 ‘담벼락에다 대고라도 욕하기’를 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일상에서 부모, 선생님, 어른들에게 당한 것들 가운데는 분명 ‘폭력’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없어져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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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 26일 부산 문현로터리 집회. 6월 항쟁 거리 행진 중에 한 시민이 '최루탄을 쏘지 말라'며 웃옷을 벗고 뛰쳐 나가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문제가 자연스레 사라지는 날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뒤’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당당히 밝히는 건 공자처럼 스스로 좌표가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우리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좌표를 명확히 할 수는 있습니다.

경기도의 한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공간이 좁아서 옆자리의 이야기가 다 들릴 정도였습니다. 한 엄마가 아이를 몹시 구박하면서 밥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볼 때는 학대에 가까웠어요. 엄마에게 시달리던 아이와 우연찮게 마주보게 되었는지, 그 아이가 나를 쳐다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렇게 당하고 있다는 걸 똑바로 봐둬’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 아이와 마주친 후부터 저는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당하는 폭력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 여러분의 아프다는 외침을 들어줄 사람이 분명 사회 곳곳에 있습니다. 그들이 외침 소리를 듣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외치고, 기록하세요. 그것이 부당한 폭력에 복수하는 방법입니다. 

#  필자 오승주는?

1978년 제주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1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입시컨설팅, 논구술 특강 등의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입시구조와 사교육 시스템에 환멸감을 느꼈다. 

이후 언론운동과 시민정치운동, 출판문화운동, 도서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변화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의 끈이 이어지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다. 소홀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직전, 아이의 간절한 외침 소리를 들었기 때문. 

2013년 《책 놀이 책》을 써 아이와 부모를 놀이로 이어 주었고, 3년간의 공부방 운영 경험과 두 아들과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를 썼다. 아빠 육아, 인문고전으로 아이 깊이 읽기로 가족 소통을 꾀했다. 

현재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의 논어》,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사마천의 사기》를 집필 중이며 아주머니와 청소년을 작가로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책쓰기 강사로서 지역 도서관과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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