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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신 위해사 잘뒌다

2018년 09월 22일(토) 01:25
김길웅 kimku918@naver.com
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85) 귀신을 위해야 잘된다

* 구신 : 귀신, 조상신(祖上神)
* 잘뒌다 : 잘된다

민족의 큰 명절, 추석이 눈앞이다. 명절을 쇠기 위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민족이 대이동한다. 3000만 명이 넘는다. 추원보본(追遠報本)하려는 것이다.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제사 지내고, 자기의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자 함이다.

공가(公家, 유가)에서는 선진들의 인품과 공덕을 추모하고 기리며 그 근본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보은하는 것이고, 원불교 교단에서 육일대재나 명절대재를 모시는 것도 앞서간 선진들의 추원보본 정신을 기리고 새롭게 하려는 데 있다.

여름 농사일은 끝났고, 가을 추수를 앞두고 날씨도 청명해 성묘도 할 뿐 아니라 놀면서 즐기는 명절이 추석이다. 우리말로 한가위라 하는데, 가배(嘉俳)에 온 것. ‘가배→가외→가위→한가위’로 변천해 온 말이다. 8월의 가운데, 대보름이라는 뜻으로 보면 좋다.

유래가 있다. 삼국사기 권1, 유리왕 9년 <신라본기>에 나온다.

“왕은 여섯 부를 정한 후, 이를 두 패로 나누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를 거느려 편을 짜고 패를 나눠 추7월 16일부터 날마다 일찍이 큰 부의 마당에 모여 길쌈을 시각, 을야(乙夜, 밤 10시경)에 끝내게 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의 다소를 심사하여 지는 편은 술과 밥을 장만해 이긴 편에게 사례한다. 이어서 가무(歌舞)와 백희(百戱)가 벌어졌으니 이를 가배(嘉俳)라고 한다. 이때, 진 편의 한 여인이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되, “회소, 회소(會蘇, 會蘇)라 하니,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답거늘, 후세 사람들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이라 했다.”
  
실제, 천년 고도 경주에서는 ‘두레 길쌈’이라는 풍습이 조선 후기까지 전해졌다.

추수를 마치기 전이나, 막 거둬들인 농작물을 조상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올리는 추원보본의 의미를 지닌다. 햅쌀로 빚은 송편은 추석을 상징하는 떡으로 전해 온다.

추석 명절에는 집집마다 차례를 지낸다. 명절날 낮에 간단히 지내는 제사가 차례(茶禮)다. 정월 초하룻날과 추석에 한하여 지내는 것이 관례로 돼 있다.

추석 차례 상에는 송편을 기본으로 하고, 과일, 포, 탕, 식혜, 어적, 산적, 나물, 전, 편 그리고 메(밥)와 갱(국)을 올린다.

차례는 먼저 제물의 진설이 끝나는 대로 장자가 재배하고 헌작한 다음 메를 올린다. 메를 수저로 자의 자국을 낸 뒤 45도 각도로 꽂고(揷匙, 삽시) 일동이 재배한다. 갱을 내리고 숭늉을 올린 다음, 숭늉에 메 세 숟가락을 떠서 만다. 메 뚜껑을 덮은 다음 차남이 아헌관, 3남이 첨작(添酌)한 후 재배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제를 지내는 방식과 절차는 지역마다, 집안마다 제각각으로 다르다. 장가  들어 처가에 가 제를 지낼 때 사위가 집사를 보는 관례에 따라 집례하다 순서를 몰라 당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정의례준칙이 나와 있지만 집안 어르신들의 고집이 있어, 제식을 통일하기란 쉽지 않다. 하기는 제사는 정성이니 제식에 얽매일 일은 아닐 것이다.

추수 전이라 곡식과 과일이 덜 익은 때라는 것도 옛말. 오늘날에는 농사 기술의 놀라운 발달과 종자가 개량되면서 추석에는 풍성한 곡식과 과일을 맛볼 수 있게 됐다. 비닐하우스에서 모판을 뜨고 조생모를 심을 뿐 아니라, 과일에는 성장촉진제를 사용하는 시대다. 구차한 살림 형편에도 추석 차례상은 그나마 풍성하다.

‘구신 위해사 잘 뒌다’

구신이라 함은 악귀가 아니다. 산신, 토신, 당신, 칠성신, 조왕신, 조상신 등 토속신앙의 대상인 모든 신을 망라한 것으로 봐도 좋다. 이들 신을 신성시해 잘 위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제마초복(除魔招福, 마귀를 내쫓고 복을 불러들임)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만일 이들 귀신을 무시하거나 외면했을 때는 재앙이 오므로, 정해진 일정한 시기나 수시로 제를 지내고 위해야 가정이 편안하고 발복하는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특히 조상신에 대한 기제사를 잘 모시지 않으면 가문이 기울어 형편이 순탄치 못하는 것으로 여겼다.

신에 대한 숭배의식을 고취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추석에 고향을 방문하는 풍습이 오래전부터 이어 내려온다. 귀성이다. 매년 수천만 단위로 민족 대이동이 이뤄진다. 인구 밀집이 극심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내려올 때 또 명절을 지내고 올라갈 때, 상상을 넘는 교통 정체에 시달린다. 해마다 겪는 현상이다. 고속도로, 여객선, 비행기 할 것 없다. 그러니 육로, 해로, 공로가 활짝 열려 사방이 시끌벅적하다. 그야말로 서울에서 지방을 향해 땅과 바다와 하늘길이 탁 트인다. 귀성길 고행길이라면서도 너나없이 그 길에 나서므로 연휴 기간 동안 대도시 서울이 공동화되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대한민국은 유교의 나라이고, 국민에게는 조상을 숭배하며 양속을 받드는 DNA가 있다. 추석 명절 때의 독특한 풍경을 바라보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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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신 위해사 잘뒌다. 추석을 맞아 비행기를 타고 내려온 아이들을 표현한 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과거에 비해 지방에 계신 부모님들이 역상경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게다가 명절을 쇠자마자 해외로 나가는 관광객들로 인천국제공항이 어지간히 붐비는 신풍속도가 연출되는 요즈음이다. 올해만 해도 추석연휴가 토요일과 대체휴일을 포함해 6~7일이다. 대부분 귀성길에 서겠지만, 더러는 그 길에서 벗어나 이곳저곳 관광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제주도에서, 설악산에서, 지리산에서 발길이 닿는 어디서든 간소하게 차례를 지내기도 하는 모양새다. 

추석 명절 본래의 전통적 세시풍속으로서 추석이 퇴색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미풍양속은 본래대로 지니는 것이 본연의 삶을 이어 가는 소중한 일이 아닌가. 자신의 근본을 돌아보지 않고 일시적인 향락에 탐닉하는 세태가 마뜩치 않다.

추석이 설날과 함께 젊은 며느리들이 사장 기피하거나 두려워하는 날이 되고 있음도 간과하지 못한다. 차례상 차릴 음식 장만하랴. 끝나고 난 뒤 설거지며 이런저런 뒤치다꺼리가 장난이 아니다. 거기다 친척들을 만나서 받는 스트레스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다. 명절 증후군이라는 것이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덕담도 주고받지만, 뜻밖의 얘깃거리들이 터져 나와 심난하게 되기도 한다. 동서 형제간의 연봉이며 자녀의 수준 비교, 주변에 나돌던 뒷담화(뒤꼍 이야기)에다 과거에 묻어 뒀던 상처까지 들춰 내 극단적으로 흐르는 경우도 있다. 모처럼 즐거워야 할 추석 분위기를 망치고 마는 것이다. 삼가고 절제할 일이다.

‘구신 위해사 잘 뒌다’ 

추석에 가족이 한데 모였으면 추석 본래의 명절을 즐길 수 있는 가족 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다치지 않아야 한다. ‘식깻날 도투는 집 안된다’고 했다. 모처럼 만난 일가친척들 간에 시비가 벌어져 불목 짓는다면 맹질 먹으레 온(명절 먹으러 온) 조상들이 노여워한 나머지 자손을 저주할지도 모른다. 가화만사성이라 했다. 화목과 화평이 제일이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 김길웅 시인. ⓒ제주의소리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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